항목 ID | GC068010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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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改新敎 |
영어공식명칭 | Protestantism |
이칭/별칭 | 프로테스탄트,신교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엄진성 |
[정의]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의 한 분파.
[개설]
개신교는 가톨릭을 구교(舊敎)라고 하는 데 대해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를 일컫는 말로 신교(新敎)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개신교는 1885년(고종 22)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1859~1916] 목사와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1858~1902] 목사에 의해 정식으로 선교 사업이 시작됨으로써 전래되었다.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 목사와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 목사는 서울에서 선교를 시작, 1887년에 최초로 장로교의 새문안교회를 설립하였다. 그 뒤 10월에는 감리교의 정동교회가 세워졌다. 그 후 개신교 교회는 부산·대구·평양·의주 등지로 확대되어 전국에 교회가 세워졌다.
[청송 지역 개신교의 역사]
청송 지역의 개신교는 대구광역시·경상북도 지역의 개신교 전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당시 대구·경상북도의 개신교는 선교사들이 주로 왕래하던 노선을 따라 전파되었다. 그 시작은 부산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윌리엄 베어드(Rev. William M. Baird)[한국 이름 배위량]의 대구 방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893년 4월 22일 팔조령을 넘어 대구로 들어온 베어드 선교사는 3일간의 대구 방문을 통하여 많은 서적을 배포하는 등 포교 활동을 하였다. 대구가 인구가 많고 경상도 교통의 요충지임을 파악한 베어드는 선교 기지로서 대구를 주목하였다. 이후 1896년 1월에 대구를 방문한 베어드는 남문안에 있는 정완식의 집을 사들이고 이를 수리한 후 4월에 가족과 함께 이사 왔다. 그러나 1896년 10월에 베어드 목사는 서울 지역 교육 담당 고문이 되어 대구를 떠나게 되었고, 대구의 선교는 처남인 애덤스(Rev. James. E Adams)[한국 이름 안의와] 선교사가 대신 맡게 되었다.
1897년 11월에 대구로 부임해 온 애덤스 선교사에 의해 비로소 대구·경상북도 지역 최초의 교회가 모습을 갖추어 갔다. 처음 교회 이름은 대구읍교회, 성내교회, 남문내교회[현 제일교회]로 불렸다. 그리고 1897년 성탄절에 의료 선교사인 존슨(Dr. W. O. Johnson)과 그의 부인 파커(Edith Parker)가 애덤스 가족과 합류하였다. 그리고 2년 뒤인 1899년 5월 1일에 미국인 선교사 브루엔(Henry Munro Bruen)[한국 이름 부해리]이 대구 선교사로 임명받게 됨으로써 대구에 공식적인 선교 지부가 설립되었다. 1899년 11월에는 선교사 사이드보텀(R. Sidebotham)[한국 이름 사보담] 부부가 대구로 와서 선교 활동에 동참하였고, 1899년 대구 선교 지부가 공식적으로 개설되어 본격적인 전도 활동을 시작하였다.
애덤스 선교사와 더불어 활발한 활동을 한 선교사는 부해리와 그의 부인 부마태[Martha Scott Bruen]였다. 애덤스 선교사의 후임으로 활동한 부해리는 부마태와 함께 신명여자소학교와 신명학교를 설립하였다. 부해리 선교사는 1899~1941년까지 42년간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펼쳤다. 당시 애덤스 선교사는 경상북도의 동쪽 지방을 맡아 활동하였고, 부해리 선교사는 김기원·김영채·이희봉·김호준 조사와 함께 경상북도의 서북부 지역을 담당하였다. 부해리는 주로 선산, 김천, 칠곡, 달성, 고령, 상주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선교 활동을 전개하여 이 지역의 교회 설립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들 외에 맥파랜드(Rev. E. F. McFarland)[한국 이름 맹의와] 선교사와 블레어(Herbert E. Blair)[한국 이름 방혜법] 선교사도 활발한 활동을 하였는데, 맹의와 선교사는 김호준·서성오 조사와 함께 고령, 경주, 영일 등지를 담당하였고, 방혜법 선교사는 윤병혁, 서상룡, 박문찬, 김충한, 김해천, 박영수, 김병규, 박창호, 박제화, 곽혜민, 이사윤, 허일, 박영화 조사와 함께 경산, 칠곡, 의성, 연일, 영천, 청송, 선산 지방 등을 순회하면서 교회를 세웠다. 이러한 과정 속에 청송 지역에도 개항기 개신교가 확산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청송 지역의 개신교]
1911년 12월에 작성된 제1회 「경상노회록」에 따르면, 당시 보고된 선교사들의 선교 구역은 브루엔[부해리]이 대구·선산·개령·지례·상주·비안·군위·인동·칠곡·성주·고령·현풍, 맥파랜드[맹의와]는 경산·경주 안강·의성·신령·흥해·영천·자인·청도·경주·장기·연일 및 대구 동남편, 위철지는 창원·양산·초개·합천 및 김해 서남편 등지로 나타난다. 또 1912년 3월에 작성된 제2회 「경상노회록」에는 웰번[오월번]의 선교 구역이 안동 서북편·영양 서편·봉화·순흥·풍기·예천·문경·함양·상주 북편·영천, 크로더스[권찬영]는 안동 동편·영양·영해·영덕·진보, 레니크[연위득]는 청하 서편·청송·안동 남편·의성 북편, 그린필드[권필두]는 대구 북편·칠곡·인동 동편·선산 동편·의성 남편·의흥·신령·청송 남편을 각각 선교 구역으로 맡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들 가운데 크로더스, 레니크, 그린필드가 지금의 청송 지역을 선교 구역으로 맡고 있었지만, 다른 지역을 맡은 선교사들도 청송 지역에 영향을 끼쳤다.
개항기~일제강점기 동안 청송 지역에 설립된 대표적인 개신교 교회로는 맥파랜드가 1907년 세운 구산교회, 애덤스가 1920년 세운 개일교회, 1921년 세운 복동교회·도동교회 등이 있다. 그런데 청송 지역에서도 교회 설립에 앞서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예배 모임이 형성되거나, 예배당이 건립되었고, 이를 모체로 해서 개신교 교회가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어 개일교회와 도동교회는 아담스가 파송한 박낙현의 전도 활동 등으로 각각 1920년과 1921년에 교회의 모습을 갖추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개일교회 측은 1918년 11월, 도동교회 측은 1916년 3월 1일을 설립 시기로 삼고 있는데, 이 시기는 실제로는 교회의 모체가 되는 예배 모임으로 추정된다. 한편, 청송 지역 개신교가 자리매김하는 데에는 조사들의 역할도 컸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성삼, 곽혜민, 강만호, 강백원, 박영수, 박낙현, 김기수 등이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 청송 지역의 각 교회와 개신교 신자들은 근대식 학교를 건립하는 데 앞장섰는데, 1918년에 수락교회가 설립한 영흥의숙, 1919년 구산교회가 설립한 여자영신학원이 대표적이다. 그 외 1920년 송서교회가 설립한 일신학원은 신도들이 기부한 적지 않은 자금으로 운영되기도 했다.
한편, 일제강점기 때 청송군에는 특수한 개신교 계열 단체로 시온산제국이 있었다. 특히, 이 종교 단체는 항일 운동인 시온산제국사건을 일으켰다. 시온산제국사건은 태평양전쟁 수행 과정에서 일제의 강제 동원과 종교 탄압에 직면했던 신자들이 전개한 반일 반전 운동이다. 이에 1944년에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수락리 출신의 박동기 목사가 시온산제국의 건국을 선포하고 일제에 저항하던 중 경찰에 지도부가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광복 이후 청송 지역 개신교의 변천]
1945년 광복 이후 청송 지역에는 개신교가 퍼져 나갔고, 1951년 6.25전쟁 중에는 청송 화목교회에서 새벽기도 중인 엄주선 강도사가 인민군에게 복음을 전하려다 순교한 사건이 있었다. 이후 많은 개신교 교회가 점진적으로 세워졌고, 여러 개신교 단체가 결성되었다.
그러나 청송 지역의 개신교는 저출산과 인구 고령화로 인해 점차 교인 수가 감소하고 있다. 1990년에 간행된 『청송군지』와 비교할 때 대부분 교회의 교인 수는 절반 내지 1/3 수준에 그치고 있다. 몇몇 교회는 교인의 감소로 인해 더 이상 신앙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이에 청송 지역의 개신교는 청송군기독교연합회의 조직 등을 통한 연합·합동 예배 등으로 자구책을 마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노인대학 및 교회 텃밭 대여, 그리고 아동반의 개설들이 그 사례이다. 또 일본, 베트남, 필리핀에서 청송 지역으로 시집온 외국인 며느리에 대한 선교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지역의 저출산과 인구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추세이지만, 청송 지역의 개신교는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청송 지역의 개신교 현황]
2016년을 기준으로 개신교 계열은 신종교를 포함해 모두 79개로, 장로교 65개, 구세군 3개, 안식교 2개, 침례교 2개, 대한예수교 침례회 1개, 순복음교 1개, 여호와의증인 1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1개, 통일교 1개, 하나님의성회 1개, 한농복구회 1개가 확인된다. 이 가운데 장로교는 대부분 경안노회 소속이다. 신도 수는 4,200여 명으로 집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