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15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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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聲振 |
영어공식명칭 | Kim sung jin |
이칭/별칭 | 대명(大鳴),두와(杜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출생 시기/일시 | 1558년 - 김성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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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34년 - 김성진 사망 |
출생지 | 경상도 청송도호부 안덕현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도리 |
거주|이주지 | 침류정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 |
수학|강학지 | 침류정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 |
묘소|단소 | 가부실골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천천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의성 |
대표 관직|경력 | 가선대부 |
[정의]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개설]
김성진(金聲振)[1558~1634]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노모를 피난시키기 위하여 부득이 두 동생들만 권응수(權應銖) 의병진에 참전하도록 보내었다. 전란 이후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에 침류정(枕流亭)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당시 문인들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향나무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가계]
자는 대명(大鳴), 호는 두와(杜窩). 증조할아버지는 도곡(道谷) 김한경(金漢卿)이며, 할아버지는 김한경의 셋째아들 율헌(栗軒) 김종(金淙)으로 창릉참봉(昌陵參奉)을 지냈다. 아버지는 매암(梅菴) 김세준(金世俊)으로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군자감참봉(軍資監參奉)을 지냈다. 어머니는 습독(習讀) 이창화(李昌花)의 딸 성주이씨(星州李氏)이다.
김성진은 큰아들이며, 동생으로 김성원(金聲遠)과 김성달(金聲達)이 있다. 부인은 통정(通政) 이수겸(李守謙)의 딸 정부인(貞夫人) 벽진이씨(碧珍李氏)이다. 아들 회은(檜隱) 김지서(金之瑞)는 율봉찰방(栗峯察訪)을 지냈으며, 동와(東窩) 김흥서(金興瑞)는 장사랑(將仕郎)을 지내고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활동 사항]
김성진은 임진왜란 당시 노모를 피난시키기 위하여 남고, 두 동생 김성원과 김성달을 권응수에게 보내어 영천성 수복 전투[영천복성 전투(永川復城戰鬪)]에서 공을 세우도록 하였다. 후에 두로동(杜老洞)[청송군 현서면 월정리]에 은거하여 침류정을 짓고 학문에 매진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학문과 저술]
두로동에 은거하여 침류정을 짓고 학문에 매진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묘소]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천천리 가부실골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수직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의 품계를 받았다. 19세기 말 척암(拓菴) 김도화(金道和)가 묘갈명(墓碣銘)을 지었고, 후손 김태진(金泰鎭)이 묘지명(墓誌銘)을 지었다. 후손 김숭진(金崧鎭)이 유사(遺事)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