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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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의 연경서원을 노래한 이황의 한시에 1591년 대구 출신 의병장이며 학자인 서사원이 차운하여 지은 한시. 「경차퇴계선생화암운(敬次退溪先生畫巖韻)」의 배경 지역인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 지역에 최초로 지어진 서원이다. 이황(李滉)[1501~1570]·정구(鄭逑)[1543~1620]·정경세(鄭經世)[1563~1633] 3인과 함께 별도로 향현사(鄕賢祠)를 세워 전경창(全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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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연경서원을 노래한 퇴계 이황의 한시에 차운하여 조선 전기 학자인 이주가 지은 한시. 「경차퇴계이선생화암운(敬次退溪李先生畫巖韻)」의 배경 지역인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 지역에 최초로 지어진 서원으로, 이황(李滉)[1501~1570]·정구(鄭逑)[1543~1620]·정경세(鄭經世)[1563~1633] 3인과 함께 별도로 향현사(鄕賢祠)를 세워 전경창(全慶昌)[153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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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유학자인 채병달이 대구광역시 화암산에 올라 연경서원의 유허지를 바라보고 지은 한시. 「등연경화암(登硏經畫巖)」의 저자 채병달(蔡炳達)[1879~1957]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중삼(仲三)이고, 호는 우당(愚堂)이다.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美垈洞) 출신이며, 곽종석(郭鍾錫)[1846~1919]의 문인이다.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광역시에 최초로 지어진 서원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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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 문인 학자인 이익룡이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화암에 올라 연경서원을 바라보고 지은 한시. 「등화암(登畫巖)」의 저자 이익룡(李翼龍)[1732~1794]의 본관은 영천(永川)이며, 자는 이오(而五)이고, 호는 요산당(樂山堂)이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대암리(臺巖里)에서 태어났다. 이익룡은 만년에 요산당(樂山堂)을 지어 학문 연마에 매진하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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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 있던 연경서원에 정구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1622년 학자 장현광이 지은 고유문. 「봉안한강연경시 고퇴계선생문(奉安寒岡硏經時 告退溪先生文)」을 쓴 장현광(張顯光)[1554~1637]은 본관이 인동(仁同)이며, 자는 덕회(德晦)이고, 호는 여헌(旅軒)이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아버지는 장열(張烈)이고, 어머니는 경산이씨(京山李氏) 이팽석(李彭錫)의 딸이다. 여러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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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과 동구 지묘동 사이에 있었던 연경서원을 퇴계 이황이 읊은 한시. 「서원십영 화암서원 대구(書院十詠 畫巖書院 大丘)」를 쓴 이황(李滉)[1501~1570]은 본관이 진성(眞城)이며, 자(字)는 경호(景浩)이고, 호(號)는 퇴계(退溪)이다. 시호(諡號)는 문순(文純)이다. 우리나라 성리학을 집대성하였다. 「서원십영 화암서원 대구」의 배경이 되는 연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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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대구 지역의 연경서원을 채영걸이 방문하고 이황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알연경서원 용퇴계선생화암운(謁硏經書院 用退溪先生畵巖韻)」를 쓴 채영걸(蔡瀛傑)[1611~1649]은 본관이 인천(仁川)이고, 자는 백등(伯登)이며, 호는 시산(是山)이다. 아버지는 채무(蔡楙), 어머니는 안동김씨 김경건(金慶建)의 딸이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다. 1632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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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연경서원을 노래한 퇴계 이황의 한시를 조선 후기 학자 송명기가 차운하여 지은 한시. 「연경서원 경차퇴계선생운(硏經書院 敬次退溪先生韻)」의 배경 지역인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 지역에 최초로 지어진 서원으로, 이황(李滉)[1501~1570]·정구(鄭逑)[1543~1620]·정경세(鄭經世)[1563~1633] 3인과 함께 별도로 향현사(鄕賢祠)를 세워 전경창(全慶昌)[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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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연경서원을 노래한 퇴계 이황의 한시를 1621년 조선 후기 학자 김지남이 차운하여 지은 한시. 「연경서원 차퇴계기후 절구운 시제생(硏經書院 次退溪記後 絶句韻 示諸生)」을 쓴 김지남(金止男)[1559~1631]은 본관이 광산(光山)이며, 호는 용계(龍溪)이고 자는 자정(子定)이다. 1591년 별시(別試) 대과(大科)에 합격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호남으로 내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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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의 연경서원을 조선 후기 학자 도성유가 참배하고 이황의 한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연원첨배후 경차노선생화암운(硏院瞻拜後 敬次老先生畵巖韻)」를 쓴 도성유(都聖兪)[1571~1649]는 본관이 성주(星州)이고, 자는 정언(廷彦)이며, 호는 양직자(養直子)이다.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과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이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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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 학자인 최흥립이 윤광안의 「차퇴도선생연경서원운」에 화답하여 지은 한시. 「윤방백 광안 차퇴도선생연경서원운 여급추 화(尹方伯光顔次退陶先生硏經書院韻余及追和)」의 저자 최흥립(崔興岦)[1736~1809]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흥교(興敎), 자는 산보(山甫), 호는 천옹(喘翁)이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출신이다.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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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학자인 구연간이 대구의 연경서원과 화암을 유람하고 지은 한시. 「화암(畵巖)」의 저자 구연간(具然侃)[1844~1917]의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자는 성강(聖剛)이며, 호는 근와이다. 아버지는 구택조(具宅祖)이고, 어머니는 부림홍씨(缶林洪氏) 홍익대(洪益大)의 딸이다. 친모는 단양우씨(丹陽禹氏) 우형간(禹衡幹)의 딸이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1836~1905]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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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대구 출신의 학자인 채성원이 연경서원과 화암을 노래한 이황의 한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화암경차노선생운(畵巖敬次老先生韻)」은 연경서원과 화암을 노래한 이황의 한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이다. 저자 채성원(蔡星源)[1870~1932]의 본관은 인천(仁川)이고, 자는 사규(士奎), 호는 공산(公山)이다. 아버지는 채세동(蔡世東)이고, 어머니는 부림홍씨(缶林洪氏) 홍우찬(洪禹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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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유학자인 우하구가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의 화암과 연경서원을 둘러보고 지은 한시. 「화암 경차퇴도선생운(畫巖 敬次退陶先生韻)」의 저자 우하구(禹夏九)[1871~1948]의 본관은 단양(丹陽)이고, 자는 영서(永敍)이며, 호는 백괴(百愧)이다. 대구부 월배면 상인리(上仁里)[현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우우동(禹友東)이고, 어머니는 달성서씨(達城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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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의 유학자인 채귀해가 늦봄에 대구의 연경서원 유허지를 둘러보고 지은 한시. 「화암모춘(畵巖暮春)」의 저자 채귀해(蔡龜海)[1850~1905]의 본관은 인천(仁川)이고, 자는 낙응(洛應)이며, 호는 치헌(痴軒)이다. 아버지는 채석범(蔡錫範)이고,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 조택승(曺宅承)의 딸이다. 집안이 대대로 대구부 해북촌면(海北村面) 미대리(美岱里)[현 대구광역시 동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