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5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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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玄風 布敎堂 碑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현풍동로27길 54-6[부리 3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동락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부리 현풍 포교당 내에 있는 조선 후기의 공덕비.
현풍 포교당은 1908년 해인사의 승려 변설호가 유가사와 도성암을 오가면서 포교 목적으로 현 위치에 창건하였다. 6·25 전쟁 때 피해를 입지 않은 현풍읍의 유일한 사찰로 1958년 7월에 승려 김해운이 대웅전과 요사를 중수하였다.
현풍 포교당 대웅전 우측에 소각로가 있는데, 이 소각로 좌측에 현풍 포교당 비가 위치한다. 비석은 현풍 포교당 창건 이후 이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의 위치는 알 수 없다.
비는 상광하협의 형태이며, 비신과 개석(蓋石)이 하나의 돌이다. 하부는 일부 매몰되어 있다. 개석은 사각형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비신보다 폭이 약간 넓다. 개석에는 독특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총높이 162㎝이고 비신 높이 110㎝, 너비 52~47㎝, 두께 22~18.5㎝이며, 개석 높이 52㎝, 너비 60㎝, 두께 26㎝이다.
비문은 마모가 심한 편으로 전면에 시주물들과 시주자들 이름이 새겨져 있고, 우측 면에 '강희 십이년 십이월 일(康熙十二年十二月日)이라고 새겨져 있어 1673년 12월에 비가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양대시주 동지 배원중 동지 황득남 보시대시주 김면삼 첨지 조차석 동지 해담 철물대시주 이□칠 □개 식염대시주 김□□ 매탄시주 김수세 김덕봉 첨지 서득부 방금수 식정시주 곽매생 김계립 첨지 노충신 첨지 현말생 곽영생 주□금 박말금 김승□ 최춘□ 이세영 구의인 김명덕 김수□[供養大施主 同知, 裵元仲, 同知 黃得男 布施大施主 金勉三, 僉知 曺次石, 同知 海淡 鐵物大施主 李□七, □介 食鹽大施主 金□□ 埋炭施主 金守世, 金德奉, 僉知 徐得夫, 方今守 食鼎施主 郭每生, 金繼立, 僉知 盧充信, 僉知 玄唜生, 廓永生, 朱□金, 朴唜金, 金承□, 崔春□, 李世英, 具義仁, 金明德, 金守□]"우측 면에는 “계 화수원비구 강희 십이년 십이월 일 축 주곽문성[癸 化守元比丘 康熙十二年十二月日 丑 主郭文誠]"이라 써 있다. 위 내용은 『달성의 금석문』에서 전재한 것이다.
비의 형태는 온전하나 비문은 마멸이 심하여 우측 면을 제외하고는 육안 판독이 쉽지 않다. 또한 담장과 너무 붙어 있어 후면의 비문은 확인하기 어렵다.
현풍 포교당 비는 조선 후기의 사찰 공덕비로 그 독특한 형태는 조선 후기의 비석 연구에 있어 기초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