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는 김문기와 김귀송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 경의재(景毅齋)는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순절한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1399~1456]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재실이다. 김문기는 1456년(세조 2) 단종 복위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하위지(河緯地)·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유응부(兪應孚) 등과 함께 처형되었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 금회영각에 영정이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김녕(金寧). 초명은 효기(孝起), 자는 여공(汝恭), 호는 백촌(白村).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 대사헌을 지낸 김광저(金光儲)이고, 할아버지는 호조 판서를 지낸 김순(金順)이다. 아버지는 호분시위사 좌령 사직(虎賁侍衛司左領司直)을 지낸 김관(金觀)이고, 어머니는 옥천 육씨(沃川陸氏)이다. 부인...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문기를 기리는 비각. 김문기 태충각은 조선 전기의 문신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1399~1456]를 기리고자 김노연(金路淵)과 김서연(金書淵)이 1900년에 건립한 비각이다. 김문기는 1439년(세종 21) 경상도아사(慶尙道亞使)로 대구에 부임하면서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지역과 인연을 맺었다. 재임 중에는 금호강 변인...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문기를 기리는 비각. 김문기 태충각은 조선 전기의 문신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1399~1456]를 기리고자 김노연(金路淵)과 김서연(金書淵)이 1900년에 건립한 비각이다. 김문기는 1439년(세종 21) 경상도아사(慶尙道亞使)로 대구에 부임하면서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지역과 인연을 맺었다. 재임 중에는 금호강 변인...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본리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형규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각. 김형규 정효각(金炯奎旌孝閣)은 김형규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비 오른쪽 면 "전몽대연헌 모춘 상한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안동 김병억 찬(旃蒙大淵獻暮春上澣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安東金炳億撰)"이라는 기록을 통해 을해년 음력 3월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안동김병억(金炳億)[1858~?]이...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서원. 낙빈서원(洛濱書院)은 단종의 복위에 목숨을 바친 하위지(河緯地), 박팽년(朴彭年), 이개(李塏), 성삼문(成三問), 유성원(柳誠源), 유응부(兪應孚)를 배향한 서원이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삼리1리에 있는 광주이씨 동성 마을.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삼리1리 씩실마을은 광주이씨(光州李氏) 집성촌이다. 이 마을은 약 380년 전에 광주이씨, 이난미(李蘭美)라는 선비가 인근에 있는 현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고탄리에서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다.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고탄리는 광산 이씨 한림공파(翰林公派) 후손으로 회령 판관을 지낸 이림의 차...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서원. 덕산서원(德山書院)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절개를 지켰던 남은(南隱) 서섭(徐涉)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서섭은 달성서씨 판서공파(判書公派)의 파조(派組)로 세종 때 대과에 급제하였다. 문종을 거쳐 단종 때에 이르러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까지 지냈다. 1924년 서섭이 살던 집 천장에서 발견된 집필 뭉치...
-
대구광역시 북구 태전동에 있는 달성서씨 감찰공파의 재사. 매강정사는 직장공(直長公) 서진손(徐震孫)[1426~1493]과 서진손의 아들인 성균 생원 서미수(徐眉壽)[1453~1516]의 추모 재사이다. 달성서씨 감찰공파는 구계 서침의 둘째 아들 서문간의 아들인 서근중(徐近中)을 파조로 하는 문중이다. 서진손은 서근중의 아들이며 관직이 직장에 이르렀다. 하지만 세조에 의하여 단종이...
-
대구광역시 북구 태전동에 있는 달성서씨 감찰공파의 재사. 매강정사는 직장공(直長公) 서진손(徐震孫)[1426~1493]과 서진손의 아들인 성균 생원 서미수(徐眉壽)[1453~1516]의 추모 재사이다. 달성서씨 감찰공파는 구계 서침의 둘째 아들 서문간의 아들인 서근중(徐近中)을 파조로 하는 문중이다. 서진손은 서근중의 아들이며 관직이 직장에 이르렀다. 하지만 세조에 의하여 단종이...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묘골의 순천 박씨들에 얽힌 이야기. 묘골[竗谷]로 불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묘동은 조선단종 때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인 박팽년(朴彭年)[1417~1456]의 후손들이 540년간 대를 이어 살아온 영남의 대표적인 양반 마을이다. 묘골은 세 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때는 70여 호나 되는 큰 집성촌이었다. 지금은 후손들이 도시와...
-
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일여(一如), 호는 벽오(碧梧). 증조할아버지는 사복시 정(司僕寺正)을 지낸 박명정(朴命鼎)이고, 할아버지는 증이조 참의(贈吏曹參議) 박성원(朴聖源)이다. 아버지는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를 지낸 박광주(朴光冑)이며, 어머니는 감찰(監察)을 지낸 정운채(丁運采)의 딸 정부인(貞夫人) 해주 정씨(海州丁氏)이다. 부인은 민효석(...
-
조선 전기 대구부사를 역임한 문관. 박응천(朴應川)[?~1581]의 본관은 반남(潘南)이며, 자는 혼중(渾仲)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상주목사 박임종(朴林宗)이고, 할아버지는 이조정랑 박조년(朴兆年)이다. 아버지는 지제교 박소(朴紹)이며, 어머니는 홍사부(洪士俯)의 딸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부인은 김희려(金希呂)의 딸 순천박씨(順天朴氏)이며, 아들은 박동현(朴東賢)·박동호(朴東豪)...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충의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호는 한석당(閑碩堂). 증조할아버지는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지낸 박숙정(朴淑貞)이고, 증조할머니는 대언(代言)을 지낸 민시(閔蒔)의 딸 여흥 민씨(驪興閔氏)이다. 할아버지는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지낸 박원상(朴元象)이며, 할머니는 판밀직부사(判密直副使) 홍언유(洪彦猷)의 딸 남양 홍씨(...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육신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인수(仁叟), 호는 취금헌(醉琴軒). 증조할아버지는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지낸 박원상(朴元象)이고, 증조할머니는 판밀직부사(判密直副使) 홍언유(洪彦猷)의 딸 남양 홍씨(南陽洪氏)이다. 할아버지는 목사를 지낸 박안생(朴安生)이며, 할머니는 한성부 윤(漢城府尹) 김휴(金休)의 딸 정부인(貞夫人...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있는 박팽년·박순·박일산 3대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선 후기의 비각. 삼충각(三忠閣)은 1755년(영조 31) 정려(旌閭)된 박팽년(朴彭年)과 1831년(순조 31)에 정려된 아들 박순(朴珣), 손자 박일산(朴一珊)의 3대에 걸친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각이다. 1833년(순조 33) 경상도 관찰사 김양순[1832. 3~1833. 4]이...
-
조선 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서감원(徐坎元)[?~?]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서침(徐忱)이고, 할아버지는 광흥창부승(廣興倉副承) 서문한(徐文翰)이다.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서섭(徐燮)이고, 어머니는 채윤(蔡崙)의 딸 인천채씨(仁川蔡氏)이다. 형은 서진원(徐震元)이고, 동생은 서간원(徐艮元)이다....
-
조선 전기 대구 출신의 문신. 서섭(徐涉)[?~?]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호는 남은(南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서균형(徐均衡)이고, 할아버지는 서침(徐忱)이다. 아버지는 광흥창부승(廣興倉副承) 서문한(徐文翰)이다. 부인은 예조참의 채윤(蔡崙)의 딸 인천채씨(仁川蔡氏)이고, 아들은 서진원(徐震元)·서감원(徐坎元)·서간원(徐艮元)이다. 형은 서제(徐濟)·서도(...
-
조선 전기 문신이며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덕산서원에 제향된 서섭이 지은 한시. 「서섭 한시(徐涉 漢詩)」의 저자 서섭(徐涉)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호는 남은(南隱)이다. 할아버지는 구계(龜溪) 서침(徐沈)이며, 아버지는 광흥창부승(廣興倉副承) 쌍죽당(雙竹堂) 서문한(徐文翰)이고 어머니는 군자감(軍資監) 직강(直長) 창원황씨(昌原黃氏) 황봉조(黃鳳朝)의 딸이다. 세종조(世宗...
-
조선 전기 대구 출신의 문관. 서제(徐濟)[?~?]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서균형(徐均衡)이고, 할아버지는 서침(徐忱)이다. 아버지는 광흥창부승(廣興倉副承) 서문한(徐文翰)이다. 동생은 서도(徐渡)·서섭(徐涉)이다....
-
조선 전기 대구 청호서원에 배향된 문관. 손조서(孫祖瑞)[1412~1473]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인보(引甫), 호는 격재(格齋) 또는 면재(勉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고려 때 좌부대언을 지낸 손득수(孫得壽)이고, 할아버지는 한성부판윤 손영유(孫永裕)이다. 아버지는 감찰 손관(孫寬)이고, 어머니는 김흡(金翕)의 딸 경주김씨(慶州金氏)이다. 부인은 광흥승(廣興丞) 하숙(河...
-
박영규를 시조로 하고, 박일산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세거 성씨. 박영규(朴英規)를 시조로 하는 순천박씨는 박일산(朴壹珊)이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하빈면 묘리 묘골 마을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달성군 하빈면 묘리 묘골 마을순천박씨 집성촌은 한옥 마을로 조성되어 있으며, 육신사(六臣祠)와 낙빈 서원(洛濱書院), 태고정(太古亭),...
-
당나라 안렴사로서 영덕군 축산면에 표착한 남민을 시조로 하고 남실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동구 입석동에 세거한 성씨. 시조 남민(南敏)은 본래 중국 당나라 사람 김충(金忠)으로 755년(경덕왕 14)에 봉명사신으로 일본에 갔다가 풍랑을 만나 영해 축산항 부근에 표착하여 신라에 귀화하였다. 경덕왕이 남씨(南氏)로 성을 내리고 이름을 민(敏)으로 고쳐 영양현을 식읍으로 내려 살게...
-
근대시기 학자인 조긍섭이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 묘소가 있는 이규일을 위해 지은 묘갈문. 조긍섭(曺兢燮)[1873~1933]의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자는 중근(仲謹), 호는 심재(深齋)이다. 타고난 성품이 매우 영특하여 일가의 학문을 이루었다. 시문에도 법도가 있어 당시 영남 사림에서 거목으로 지목되었다. 한말 지식인 가운데에 황현(黃玹)·김택영(金澤榮)·이건창(李建昌) 등과...
-
조선 전기 대구에 은거한 영천이씨 대구 입향조. 이보관(李甫款)[?~?]의 본관은 영천(永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흡(李洽)이고, 할아버지는 판도판서 이석지(李釋之)이다. 아버지는 부사직을 지낸 이현실(李玄實)이고, 어머니는 보승낭장 장표(張彪)의 딸 인동장씨(仁同張氏)이다. 형은 충장공(忠莊公) 이보흠(李甫欽)이다....
-
조선 전기 지대구군사를 역임한 문신. 이보흠(李甫欽)[1397~1457]의 본관은 영천(永川)이며, 자는 경부(敬夫), 호는 대전(大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흡(李洽)이고, 할아버지는 판도판서 이석지(李釋之)이다. 아버지는 부사직을 지낸 이현실(李玄實)이고, 어머니는 보승낭장 장표(張彪)의 딸 인동장씨(仁同張氏)이다. 부인은 영천최씨(永川崔氏)이며, 영천이씨 대구 입향조인 이보관...
-
조선 전기 달성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배(景培), 호는 월파(月坡). 고조할아버지는 월성 부원군(月城府院君) 문효공(文孝公) 국당(菊堂) 이천(李篟)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계림 부원군(鷄林府院君) 제정(齊亭) 문정공(文靖公) 이달충(李達衷)이다. 아버지는 공의공(恭懿公) 이승적(李升啇)으로 1382년(우왕 8) 훗날 조선 제3대 왕으로 즉위한 태종(太宗)...
-
조선 전기 달성 지역에서 성장한 문신·학자.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경부(敬夫). 증조할아버지는 정태보(鄭台輔)이고, 할아버지는 고려 후기·조선 전기 문신인 정희(鄭熙)이다. 아버지는 문과에 급제하고 사헌부 감찰을 역임한 정제(鄭提)로 보조공신(補祚功臣), 하원군(河原君)에 봉하여졌다. 어머니는 관찰사를 역임한 김약채(金若采)의 딸 광주 김씨(光州金氏)이다....
-
김지대를 시조로 하고, 김렬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세거 성씨. 청도김씨는 조선세조 즉위 후 현풍으로 낙향한 김렬이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달성군 유가읍 금리와 유곡 2리 외동 마을 일대, 그리고 옥포읍 교항 1리 다리목 마을 등지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있는 순천 박씨 동성 마을.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묘골마을은 순천박씨(順天朴氏) 집성촌이다. 이 마을은 조선단종(端宗) 때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인 취금헌(醉琴軒) 박팽년(朴彭年)[1417~1456]의 후손들이 560년간 대를 이어 살아온 영남의 대표적인 양반 마을이다. 묘골마을은 한 때 70여 호나 되는 큰 집성촌이었으나 지금은 후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