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일
-
1920년대 대구에서 발행이 추진된 다양한 잡지. 3.1운동의 영향으로 인하여 일제는 식민 지배 정책을 무단통치에서 문화 통치로 전환하면서, 조선인의 한글[대체로 국한문혼용] 신문과 잡지의 발간을 제한적으로 허용하였다. 잡지의 발행은 세계정세와 사조, 식민지 사회·경제 문제, 독립과 해방, 문학과 예술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식민지 조선의 실태와 전망을 제고할 수 있는 조건을 형...
-
1948년 대구에서 발생한 5·10선거 반대 시위. 1948년 3월 3일에 행정명령 제13호에 의하여 선거위원회의 권한을 부여받는 국회선거위원회가 조직되고, 3월 13일에 남녀평등의 보통선거제를 기본 골격으로 하는 선거공보 제1호가 공포되었다. 대구는 3개의 선거구로 편성되었고, 대구와 경북 선거를 총괄할 선거 사무국은 경찰청 내에 설치되었으며, 선거 사무국 국장은 도공보실장이 맡...
-
대구에서 전개된 6·25전쟁. 6·25전쟁(六·二五戰爭)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선제공격으로 발발하여 1953년 7월 27일 정전(停戰) 및 정화(停火)에 관한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진행된 전쟁으로 우리 민족 최대의 역사적 사건이다. 6·25전쟁은 500만 명 이상의 인명 피해와 막대한 물적 피해를 낳은 전쟁이며, 유엔[UN]과 중국 공산군의 개입으로 세계 전쟁의 성...
-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북한]이 발발한 전쟁에 대한 달성군의 상황.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일 이후 7월 14일 육군 본부가 대구로 이전하였고, 7월 16일 피난 정부도 대구로 후퇴하였다. 달성군은 8월 1일부터 구축된 낙동강 방어선에 힘입어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는 크게 입지 않았다. 특히 왜관-다부동 전투, 창녕-영산 전투, 가...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강영주(姜永周)[?~?]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
1913년 3월 대구에서 신흥 지식인들이 독립을 전망하며 결성한 사회단체. 강유원간친회는 1913년 3월 홍주일이 윤창기 등과 함께 해외 유학생 출신 인물과 국내 학생과의 규합을 위하여 결성한 사회단체이다....
-
1913년 3월 대구 달성 지역에서 조직된 청년 지식인 문화 운동 단체. 강유원간친회(講遊園懇親會)는 1913년 3월 달성 친목회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국내외 청년 지식층을 규합하여 조직되었으며, 문화·학술 활동을 중점적으로 전개함으로써 달성 친목회가 추구한 독립운동의 외연을 확대해 나갔다....
-
1945년 8월 22일 대구에서 결성된 좌우익 연합의 건국 준비 정치단체. 건국준비경북치안유지회(建國準備慶北治安維持會)는 1945년 8월 22일 대구에서 결성된 좌우익(左右翼) 연합의 건국 준비 정치단체이다....
-
대구광역시 중구에 형성된 한약재 특화거리. 조선시대였던 1658년(효종 9)부터 이어져 온 약재시장이 있다. 약전골목은 입구부터 풍기는 각종 약재의 향기들로 가득하다. 대구 약령시에 들어서면 약재를 파는 곳과 한의원, 한약방, 한약제탕소 등 200여 곳이 밀집하여 있다. 가게마다 쌓여 있는 약재들 사이로 작고 낡은 팻말이 이름을 밝히고 있어 골목이 지닌 세월을 확인할 수 있고, 신...
-
일제강점기 조선인 자본가들이 대구에 설립한 회사. 1936년 대구 지역 조선인 자본가들은 대구의 주택난이 점점 심화되자 경북상공주식회사(慶北商工株式會社)의 설립을 준비하였다. 1937년 6월 28일 10여 명의 자본가들이 중구 대신동에 마련한 임시 사무소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경북상공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
1945년 8월 17일 대구에서 건국 준비를 위하여 결성된 정치단체. 경북치안유지회(慶北治安維持會)는 1945년 8월 17일 대구에서 건국 준비를 위하여 결성된 정치단체이다.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1가에 있던 대구일일신문사(大邱日日新聞社)에서 대구의 우익 성향 정치세력이 결성하였다....
-
1908년 대구를 비롯한 영남 지역 인사들이 설립한 교육운동 단체.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는 영남 지역의 교육 진흥을 위하여 서울에 거주하는 대구를 비롯한 영남 지역 인사들이 설립한 교육운동 단체이자 애국 계몽 단체였다. 1개 면에 1개 학교를 설립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설립된 교남교육회는 ‘교남학회’라고도 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서양화가. 김용조(金龍祚)[1916~1944]는 1916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아래 성장한 김용조는 대구 달성공립보통학교[현 대구달성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중등학교는 진학하지 못하였다. 은사인 이응창의 도움으로 서동진의 대구미술사에 입학하였으며, 1931년 대구 서양화가 단체인 향토회(鄕土會)에 참가하...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김우근(金遇根)[?~?]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응섭(金應燮)[1878~1957]은 1900년대 초 대구에서 교남교육회, 조선국권회복단 등에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하고 중국 동북[만주]에서 의용단, 정의부 간부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재열(金在烈)[1884~1948]은 1884년 5월 20일 지금의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화암리에서 태어났다. 항일 비밀결사 재건 달성친목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일명 대구권총사건에 가담하였다. 호는 백농(栢儂)이다....
-
미군정기 대구에서 실시된 남조선 과도입법 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미국의 대한(對韓) 정책이 ‘조선인화 정책’ 혹은 ‘국가기구의 현지화 정책’으로 전환되면서, 1946년 8월 24일 「군정법령」 제188호에 의거하여 과도기적으로 입법의원을 구성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의 정원은 90명으로 하되 45명은 민선으로 선출하고, 45명은 군정장관의...
-
1946년 미군정이 설치한 남조선 과도 입법 의원의 경상북도 및 대구, 달성, 경산, 고령 지역 입법 의원. 남조선 과도 입법 의원은 1946년 미군정이 군정 법령 제118호에 따라 설치한 입법 기관이다....
-
일제 강점기 대구 달성 지역에서 최초로 설립된 사립 유치원. 달성유치원은 1921년 1월 15일[음력] 홍주일(洪宙一)의 주도로 대구 남산 2동 630번지에서 개원하였다. 당시 대구 지역에 유치원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지역 유지들이 유아 시기 교육의 중요성과 부강 문명국에는 유치원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하여 설립하였다. 발기인은 서상일(徐相日)·한익동(韓翼東)·정운기(鄭雲騏)...
-
1960년 7월 29일 대구에서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7·29선거는 1960년 7월 29일 대구에서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이다. 4·19혁명 이후 국회를 해산하고 내각책임제 개헌을 통하여 민의원과 참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였다....
-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 있는 1895년부터 1945년까지 대구 경북지역에서 출생 혹은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적은 기념탑. 망우당공원내에 있는 대구경북항일독립운동기념탑 주변은 대구광역시 및 경상북도 지역의 근대 항일운동과 관련된 역사 유적이 밀접한 곳이다. 대구경북항일독립운동기념탑 뒷편에는 조양회관과 조양회관을 세우고 독립운동을 한 대표적 인물인 서상일의 전신상이 있다. 대...
-
일제강점기 대구의 명망가들이 결성한 문화운동 단체. 대구구락부(大邱俱樂部)는 ‘대구청년회를 계승한 문화운동의 중추 실행 기관’을 전망하며 대구의 명망가들이 중심이 되어 출범한 문화운동 단체였다. 대구구락부는 1923년 무렵 대구의 대중운동에서 문화운동의 중심체였던 대구청년회가 침체되고 노농(勞農) 운동을 앞세운 대구노동공제회가 발흥하는 상황에서 실력 양성 노선을 견지하며 문화운동을...
-
1925년 대구의 유지들이 농촌 계발을 위하여 설립한 농업 단체. 대구농촌사(大邱農村社)는 1925년 7월 대구의 서상일(徐相日), 서만달(徐萬達), 정운해(鄭雲海) 등이 몰락하여 가는 농촌 상황을 조사 연구하여 농업을 개량하고 발달시키려는 목적으로 설립한 농업 단체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의 시가지 계획안을 조사 및 심의하기 위한 식민 통치 기구. 조선총독부는 1934년 6월 20일 「조선시가지계획령」을 공포한 이후 시가지 계획 위원회 설치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1935년 11월 4일 ‘조선총독부 시가지계획위원회 규정’에 따라 시가지 계획 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시가지 계획 위원회는 각 도시의 ‘시가지 계획 사업’으로 지정된 계획구역, 가로망, 토지...
-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 목공인들이 만든 노동단체. 대구목공조합은 기공 향상, 동업자 간 조직적 경영, 친의 도모를 위하여 설립되었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 있던 조선총독부 인가의 경상북도 지역 미곡거래소. 대구미곡거래소는 경상북도 지역의 쌀 실물거래 및 선물거래를 할 수 있도록 설립된 미곡 유통기구였다....
-
일제강점기 전시체제기 대구비행장에서 열린 군용기 헌납 절차.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는 침략전쟁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정책을 마련하고 전시 동원 체제를 본격적으로 가동하였다. 1937년 9월 9일 일제는 「군수공업동원법」을 제정하고 전시 필요 물품을 통제·운용하도록 하여 군수품은 신속하고 원활히 보급되었다. 또한 1938년 5월 5일 「국가총동원법」을 제...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영남 지역 최초로 여성들이 설립한 상회. 대구부인상회(大邱婦人商會)는 대구에서 여성들이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실행할 목적으로 기성회를 조직하고 간사회를 연 뒤 1921년 11월 29일 설립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 조선인 상공업의 진흥을 목적으로 결성된 상공인 단체. 대구상공협회(大邱商工協會)는 대구의 조선인 상공업자들이 일본 상공인들이 지역 상권을 장악하는 것에 대항하여 조선인 상공업의 발전과 단결을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의 미곡상들이 미곡취인소 설립을 위하여 개최한 시민대회. 대구시민대회(大邱市民大會)는 대구의 미곡상들이 1923년 2월 22일 결성한 ‘취인소설립기성동맹회(取引所設立旣成同盟會)’가 1923년 3월 7일 대구좌(大邱座)에서 미곡취인소 설립인가 획득을 목적으로 개최한 대회였다....
-
1948년 5월 10일 대구에서 대한민국 초대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하여 실시된 최초의 근대 선거. 한반도의 완전한 독립, 통일 근대 국민 국가의 건설을 이루기 위한 국제적 절차로서 모스크바삼상회의에 따른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면서 한반도 문제가 미국에 의하여 유엔[UN]으로 이관된 뒤 단독선거[단선]에 의한 단독정부[단정] 수립이 가시화되었다. 유엔은 1947년 11월 14일 총...
-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교육회관. 대구 효목동 조양회관은 서상일(徐相日)[1887~1962]이 주도해 대구 지역 독립운동가들과 뜻을 모아 만들었다. 대구구락부회원들이 건축비를 부담하고, 서상일이 약 1,652㎡[500평]의 땅을 제공하였다. 서상일은 중국 만주 지역 등에서 활동하다 대구로 돌아와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하던 독립운동가였다. 서상일은 대구지역 청년에게...
-
1920년대 다양한 이념과 폭넓은 운동 노선의 독립운동이 펼쳐지는 배경이 된 1919년 대구의 3·1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전민족적 항일운동의 서막이 올랐다. 한국인의 의식에 농축된 자주와 독립에 대한 열망이 민족자결이 고조되는 국제정세의 변화와 맞물려 폭발한 것이었다....
-
대구광역시 북동부에 위치한 기초 자치구. 대구광역시 동구의 지세는 북고남저형이다. 팔공산이 동구 북쪽경계면을 따라 펼쳐져 있고 남서쪽으로는 금호강 및 신천 주변으로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의 북쪽에 자리한 팔공산은 경산시, 영천시, 군위군과 경계를 이룬다. 대구광역시 동구 북동쪽을 둘러싸고 있는 북부 산지는 남동의 초례봉(醮禮峰)에서 시작해, 북서 남동 방향의 능선...
-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 있는 근린공원. 대구광역시 동구는 쾌적한 시민휴식공간을 확충하기 위해 공원·유원지 개발·재정비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2016년 현재 동구에는 140개의 공원·유원지[근린·어린이·소·체육·문화·수변공원, 유원지·자연공원] 조성계획이 있으며 그중 73개가 조성되었다. 망우당공원은 조성된 24개의 근린공원 중 1개이다. 공원은 현재 호국충절 명소, 시민들의 역...
-
1945년 11월 대구에서 경북군정청이 군정청의 진로 및 방침 선전과 행정개혁 협력을 위하여 설치한 행정 고문 기구. 1945년 11월 경북군정청은 미군정청 특사로 파견된 서상일(徐相日)과 최윤동(崔允東)의 추천을 수용하여 에드윈 A. 헨 경북도지사가 발표하는 방식으로 경상북도 행정고문을 선정하였다. 미군정청 경상북도고문은 경북군정청의 협의기관적 성격을 가졌다....
-
1945년 11월 대구에서 경상북도군정청이 군정청의 진로 및 방침 선전과 행정개혁 협력을 위하여 설치한 대구부 행정고문 기구. 1945년 11월 경상북도군정청은 미군정청 특사로 파견된 서상일(徐相日)과 최윤동(崔允東)의 추천을 수용하여 에드윈 A. 헨 경북도지사가 발표하는 방식으로 대구부 행정고문을 선정하였다. 미군정청 대구부고문은 경북군정청의 협의기관적 성격을 가졌다....
-
1945년 11월 대구에 파견된 미군정청의 특사. 미군정청은 1945년 11월 3일 서상일(徐相日)[1886~1962]과 최윤동(崔允東)[1897~1965] 두 사람을 대구에 특사로 파견하였다. 미군정청 특사는 1945년 11월 5일 경북군정청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사의 임무에 대하여 밝혔다. 그 내용은 군정 당국의 방침을 일반인에게 알리고, 경북 도민의 요구와 희망 사항...
-
1949년 5월 대구에서 결성된 민주국민당의 지부. 민주국민당은 1949년 2월 10일 한국민주당과 대한국민당이 중심이 되어 창당하였다. 한국민주당의 민주국민당으로 전환은 이승만 세력과의 결별을 의미하였고, 여당에서 야당으로 바뀐 것이었다. 민주국민당의 정강정책은 한국민주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국민당은 1949년 8월 대동청년단과 동성회(同成會) 일부를 포섭하여 국회의원 수...
-
대구에서 활동한 법조인이자 정치인. 박해극(朴海克)[1882~?]은 1882년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법조인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 관련 사건들을 변호하였고, 광복 후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
1960년 3월 15일 실시되는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정권의 재집권을 저지하기 위하여 결성된 정치 조직. 반독재민주수호연맹(反獨裁民主守護聯盟)은 부패한 이승만 정권의 재집권을 저지하고 양심적 민족 세력을 조직하여 민주적 정치 질서와 도의적 사회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결성되었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배상렴(裵相濂)[1892~?]은 1892년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재건 달성친목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배상연(裵相淵)[1889~?]은 1889년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서 태어났다. 재건 달성친목회와 관계를 맺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
개항기 달성친목회가 대구에 설립한 강습소. 법률야학강습소(法律夜學講習所)는 청년층의 친목 도모와 교육 및 교육의 발전을 목적으로 대구에서 결성된 계몽운동 단체인 달성친목회가 대구 지역 사람들을 대상으로 근대 법률 체계와 의미를 계몽하기 위하여 1908년 9월 설립하였다....
-
1960년 4월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이승만정권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에서 통일운동으로 확대된 변혁운동. 대구광역시 동구의 4.19혁명은 직접적으로 운동과 혁명을 촉발시켰다기 보다 허정과도내각과 장면정권 수립 이후에 사회개혁을 지향하는 민주운동과 민족모순을 해결하려는 통일운동에 참여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
대구광역시에서 불상을 모셔 놓고 공적으로 불교 신행을 행하는 장소. 대구광역시가 속한 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5세기 초 눌지왕 때로 추정된다. 양나라 사승인 원표(元表)에 의하여 불교가 왕실에 전해지고, 이차돈의 순교로 527년(법흥왕 14)에 국교로 공인되면서 사찰이 창건되기 시작하였다. 기록상으로 보이는 최초의 사찰은 534년(법흥왕 21)에 착공되어 544년(진흥왕 5)에...
-
1960년 6월 대구에서 결성된 사회대중당의 경북 조직. 사회대중당경북도당(社會大衆黨慶北道黨)은 1960년 6월 15일 대구 구 국립극장에서 박기출·이동화와 대의원 825명 중 565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대중당경북도당 결성 대회’를 개최하였다. 결성 대회에서 이동화는 사회대중당을 “민주사회주의의 당이며, 노동자·농민·인텔리·중소 상공업자 등 광범위한 근로대중의 권익을 위하여 독...
-
1914년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에서 조직된 항일비밀결사. 1914년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뒤 반월산에서 지역 출신 정운해(鄭雲海)·최윤동(崔胤東)·최혁(崔赫)·엄주동(嚴柱東) 등의 청년들과 비밀리에 독립을 위한 새배달모듬(新倍達會)을 조직하였다. 새배달모듬 조직의 목적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고, 민족 사상을 고취하여 단결된 민족의 힘을 통하여 조국의 광복을 이룩한...
-
일제 강점기 달성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서병룡(徐丙龍)[?~?]은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에서 태어나 20세까지 사숙에서 한문을 배웠고, 그 후 달성 학교에 2년간 수학하였다. 재산은 동산·부동산을 합해 시가 2,000원 정도였다. 1908년부터 대구 농공 은행(大邱農工銀行)의 행원으로 근무하면서, 1909년 달성 친목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때 서상일(徐相日)·윤상태(尹相泰...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서봉기(徐鳳綺)[1847~?]는 184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한협회 대구지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대구 지역에서 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서상일(徐相日)[1886~1962]은 개항기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계몽운동, 비밀결사, 언론활동, 경제활동, 자치운동, 한국민주당 활동, 제헌국회 의원, 야당통합운동, 진보당과 사회대중당 및 혁신정당 활동 등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다양한 행적을 남긴 인물이다....
-
근대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소재의 조양회관 건축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정치가. 서상일은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에서 역동적인 삶의 궤적을 보여준 특징적인 인물이었다. 서상일의 삶의 궤적은 근현대 한국사회의 주객관적 조건에서 자신의 삶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과정이었고, 한국 근현대사의 변동과 상호연관성을 맺고 있었다....
-
1950년대 대구 출신 서상일이 추진한 정치운동. 서상일은 1954년 제3대 민의원 선거 이후 민주국민당을 대신할 새로운 정당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민주대동신당운동을 펼쳤다. ‘서상일의 민주대동신당운동론’의 핵심은 ‘민주·정의·반공산’에 있다. 서상일은 ‘민주·정의·반공산’ 기치 아래 민주대동의 범주를 비반동 민주 세력까지 포함하여 설정하였다. 즉, 자유당을 제외하고, 조봉암까지...
-
1950년대 중반 대구 출신 서상일이 제기한 한국의 정치 논리. 서상일은 자신의 정치노선이 민주사회주의임을 강조하였다. 민주사회주의는 1950년대 중반 한국 정치의 지향으로 일반화된 정치 논리였다. 하지만 민주사회주의에 대한 이해는 논자마다 서로 달랐다. 서상일은 1914년 제2인터내셔널에 대하여 합법적 의회 투쟁에 기반하여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는 것으로 이해하고, 이를 한국...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상한(徐相漢)[1901~1967]은 1901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 중이던 1920년 영친왕 이은(李垠)의 혼례일에 폭탄 투척을 계획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정부 관료. 서상환(徐相懽)[1888~1968]은 1888년 9월 24일 지금의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태어났다. 1910년대 재건 달성친목회에서 활동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법무부장관을 역임하였다....
-
대구광역시 달성 군민들이 자치 단체장, 지방 의회 의원, 지역 국회 의원, 대통령 등을 투표 등의 방법으로 선출하는 행위. 선거란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고 정치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행위이다. 현재 한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주요 선거는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대통령 선거, 국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국회 의원 선거, 「지방 자치법」에 따라 지...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언론인이자 사회운동가. 송기찬(宋箕贊)[1899~?]은 1899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에서 태어났다.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며 식민지 시대 사회문제를 주로 취재하여 보도하였다....
-
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송기찬(宋箕贊)은 일제 강점기에 경상북도 달성군 현풍면[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1910년대 후반 20살이 되기 전에 중국 만주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중국 만주에서 몇 년을 보낸 뒤에 귀국길에 올랐다. 1920년 2월 국내로 돌아오는 길에 폭탄 습격을 기도한 불령선인(不逞鮮人)[불온하고...
-
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서영균, 송정득이 참여한 신흥학교 학우단이 펼친 독립운동. 신흥학교 학우단의 정식 명칭은 신흥 학우단(新興學友團)이다. 신흥 학우단은 1913년 3월 만주 류허현[柳河縣] 산위안푸[三源堡] 다화셰[大花斜]에서 창설된 항일 독립운동 단체로, 주로 신흥 무관 학교(新興武官學校) 졸업생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졌다. 1913년 7월부터 국문 또는 국한문으로 발행한...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사찰. 안일사(安逸寺)는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통일신라의 전통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末寺)이다....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사찰. 안일사(安逸寺)는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통일신라의 전통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末寺)이다....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안일사와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안일사의 유래」는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앞산[660.3m] 중턱에 있는 안일사(安逸寺)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사찰유래담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의 언론·출판의 역사 1. 대한제국기...
-
1948년 5월 10일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시행된 제헌국회의원를 선출하는 선거. 5.10총선거는 1947년 11월 14일 유엔에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구비례에 따른 남북한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해방 후 한반도에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절차는 1945년 12월에 열린 모스크바삼상회의의 결정에 따른 미소공동위원회였다. 그러...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시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탑. 우재 이시영 선생 순국기념탑(又齋李始榮先生殉國紀念塔)은 우재 이시영(李始榮)[1882~1919]을 기리기 위하여 1972년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세운 기념탑이다....
-
대구광역시 달서구 성당동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 원화여자고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21세기 글로벌 인재 교육을 선도하는 원화’이다. 교훈은 ‘진실’이다....
-
일제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자는 성민(聖玟) 또는 성천(聖天), 호는 향산(香山). 아명은 주경(周經)이다. 윤상우(尹相佑)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윤필은(尹弼殷)이며, 작은 아버지는 윤상은(尹相殷)이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창기(尹昌基)[1888~1927]는1888년 2월 16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문화동에서 태어났다. 1910년대 대구에서 재건 달성친목회 및 강유원간친회(講遊園懇親會) 등에 가입하여 항일 비밀결사 활동을 전개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언론가이자 사회활동가. 윤홍렬(尹洪烈)[1893~1947]은 189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활발한 시회활동을 전개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시영(李始榮)[1882~1919]은 1882년 1월 1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항일 비밀결사 재건 달성친목회[조선국권회복단] 결성에 참여하여 교통부장을 맡았고, 서울에서 3·1운동에 참가한 뒤 중국으로 망명하여 흥업단(興業團) 특파원으로 활동하였다. 이시영(李時榮)으로도 알려졌다....
-
일제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언론인. 송기찬(宋箕贊)[1899?~?]은 달성군 현풍면[현 현풍읍]의 가난한 농가 출신으로, 송정덕(宋貞德)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그는 학력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 스스로 밝혔듯이 초등학교도 4년밖에 다니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국외 독립운동, 언론·사회 운동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기자로 활동한 송기찬에 대...
-
1913년 1월 15일[음] 대구 안일암에서 결성된 항일 비밀결사. 달성친목회는 1909년 정운일·최병규·이근우 등이 친목을 도모하고 실업 및 교육의 발전을 목적으로 결성한 계몽운동 단체였다. 달성친목회는 1910년 한일 병합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활동을 펼칠 수 없었다. 이후 달성친목회 회원 윤상태·서상일·이시영 등이 1913년 1 월 15일[음] 대구 안일암에서 시회(詩會)를...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운해(鄭雲海)[1893~1945]는 1893년 9월 1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2가에서 정만원(鄭萬源)의 이들로 태어났다. 중국에서 무장 독립투쟁을 전개하였고, 대구에서 사회주의 계열 단체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경진(李景珍)·이봉화(李奉華)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대구광역시 동구에서도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인 정치가 지속되고 있다.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 사회에는 다양한 이해관계로 항상 희소 자원의 획득과 배분을 둘러싼 대립과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대립이나 투쟁을 조정하여 통일적인 질서를 유...
-
1950년 5월 30일에 대구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 제2대 국회의원선거는 제헌 국회의원 2년의 임기가 종료되는 1950년 5월 10일에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국내 사정과 준비 관계로 5월 30일에 실시되었다....
-
1956년 5월 15일에 대구 지역에서 제3대 정부통령 선거의 개표가 중단된 사건. 1956년 5월 15일 제3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 장면에게 득표수가 밀렸던 자유당과 이기붕 후보가 선거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하여 개표를 중단시켰다....
-
1923년 2월 대구에서 결성된 조선민립대학기성회의 대구 조직.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일제의 조선 통치 정책이 문화통치로 바뀌었다. 그러나 문화통치라는 것은 일제가 자신들의 악랄한 식민지 정책을 은폐하고 미화하려는 위장 수단일 뿐, 실질적으로는 탄압과 감시, 민족문화 말살, 경제적 수탈 강화를 위한 고도화된 식민 통치 방식이었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으로 친일 반민족 행위를 한 사람. 일제는 조선을 강점한 후 민족 동화를 조선 통치의 최고 방침으로 설정하고, 민족 동화의 완성을 위하여 조선인 협력자, 곧 친일파를 양성하였다. 친일파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자발적 친일파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일제의 친일파 양성 정책과 자발적 친일파의 특성은 시기마다 차이가 있었다....
-
1914년 대구에서 서상일이 설립한 잡화 상회. 태궁상점은 근대적 이윤 추구를 위하여 설립된 잡화 상회이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는 창구 역할을 담당하였다....
-
1919년 유림단의 파리 만국 평화 회의에 보낸 독립 청원 운동. 3·1 운동의 전국적 확산과 1919년 2월 친일 세력과 경성의 일부 친일 유림이 야합하여 합방 절대 지지 한일 불리 청원서(合邦絶對支持韓日不離請願書)를 일왕에게 보내려던 음모가 폭로되면서 유림의 독립 청원 운동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었다. 달성군에서도 파리 만국 평화 회의에 제출한 독립 청원 운동이 독자적으로 진행되...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편동현(片東鉉)[1886-?]은 1886년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신광면 반곡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재건 달성친목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
1946년 11월 22일 대구에서 결성된 한국민주당의 경상북도 지부. 한국민주당 경북지부(韓國民主黨慶北支部)는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의 우익 정치세력을 결집할 목적으로 결성된 정당이었다....
-
대구에서 결성된 한국민주당의 지부. 한국민주당 대구지부(韓國民主黨 大邱支部)는 대구 지역의 우익 정치세력을 결집할 목적으로 결성된 정당이었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친일 자본가. 한익동(韓翼東)[1888~?]은 1888년 4월 대구부 경정(京町)[현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1가·종로2가]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식민통치 자문기구와 관변단체에서 활동하며 일제에 협력하였다....
-
대구 출신의 정치가인 서상일이 1931년 3월에 완성한 조선 사회운동에 대한 방법론과 전망을 담은 책. 『합법운동과 비합법운동에 관한 사견』은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 정치가인 서상일(徐相日)[1887~1962]이 1931년 3월에 조선 사회운동에 대한 방법론과 전망에 대하여 쓴 책이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운동가. 홍주일(洪宙一)[1875~1927]은 1875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오진리에서 태어났다. 항일 비밀결사 재건 달성친목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대구권총사건에 가담하였다. 호는 해동(海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