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학봉(姜學奉)[1898~1931]은 1898년 11월 3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서 태어나 제화노동자로 일하였다. 1919년 3·8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강학봉(姜學鳳)으로도 알려져 있다....
1921년 대구에서 설립된 개신교 연합 청년운동 단체. 1921년 12월 2일 남성정예배당[현 대구제일교회 기독교역사관, 일명 구 대구제일교회]에서 대구 지역 소재 교회가 연합하여 ‘교남기독청년회(嶠南基督靑年會) 발회식’을 개최하였다. 남성정교회[현 대구제일교회] 목사 이만집, 남산교회 목사 박영조, 남산교회 장로 김태연·최종철 등 100여 명이 참여하였다. 조선기독청년회 회장 이...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의윤(權義允)는 1868년 3월 7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서 태어났다. 계성학교(啓聖學校) 교사로 재직 중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권종태(權鍾泰)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봉안(金鳳安)[1895~1959]은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송천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남산정[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거주하며 농사를 짓다가 1919년 3·8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김봉안(金奉安)·김정수(金正秀)로도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수천(金洙千)[?~?]은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에서 태어났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영서(金永瑞)[1880~1975]는 1880년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교감으로 재직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용해(金湧海)[1897~1919]는 1897년 7월 26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태련(金兌鍊)[1879~1943]은 남산교회 조사로 있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김주현(金周鉉)으로도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문영(朴文瑛)[1871~1943]은 1871년 지금의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 거주하며 잡화상을 운영하던 중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장호(朴章鎬)[1886~1961]는 1886년 8월 29일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효선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성경학교(聖經學校) 강습생으로 있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백기만(白基萬)[1902~1969]은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후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였다. 호(號)는 목우(牧牛)이고, 필명은 백웅(白熊)이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신태근(申泰根)[1870~?]은 1870년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에서 태어났다. 칠곡 신동교회 남전도회장으로 있던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경수(安敬秀)[1888~1952]는 1888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재춘(李載春)[1877~?]은 187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남산정[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임용한(林容漢)[1897~1977]은 1897년 10월 3일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에서 태어나 대구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임석백(林碩佰)으로도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광순(鄭光淳)[1880~1961]은 1880년 7월 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성내동에서 태어났다. 의료계에 종사하며 신정교회 장로로 있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원조(鄭元祚)[1898~1942]는 1898년 3월 23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종교인. 정재순(鄭在淳)[1877~1948]은 1877년 5월 2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서 태어났다. 신정교회 목사로 봉직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후 일제에 협력하여 친일 행보를 보였다. 아들 정원조(鄭元祚)도 서문시장 만세 시위 때 체포되어 대구형...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교육자이자 종교인. 최경학(崔敬學)[1890~1976]은 1880년 8월 15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신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후 일제에 협력하여 친일 행보를 보였다....
근대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신기동 출신 독립운동가. 최경학(崔敬學)[1890~1976]은 경상북도 경산군 안심면 신기동[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신기동] 출신이다. 1919년 3월 8일 대구[현 대구광역시] 서문[현 서문시장] 장날을 이용하여 이만집(李萬集)·김태련(金兌鍊)·김영서(金永瑞)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당시 계성중학교(啓聖中學校) 교사였던 최경학은 3·1만세항쟁 소식...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허범(許範)[?~?]은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