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양씨
-
대구에 입향하여 세거하고 있는 성씨. 조선 초에 대구는 본부(本府)와 수성현(壽城縣), 하빈현(河濱縣), 해안현(解顔縣)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본군(本郡)의 내성(來姓)이 1이니, 도(都)이다. 수성(壽城)의 내성(來姓)이 7이니, 유(柳)·장(張)·최(崔)·신(申)·유(劉)·고(高)·정(鄭)이요, 해안(解顔)의 내성이 3이니, 제(諸)...
-
대구 지역에 세거하는 성씨와 세거지를 기록한 책. 『대구향안 24문중(大邱鄕案 24門中)』은 1949년에 대구 지역에 세거하는 24개 성씨와 세거지를 기록한 책으로 원래의 이름은 『대구향교 향안속수록(大邱鄕校鄕案續修錄)』이다....
-
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 형성된 성이 같은 사람이 모여 사는 마을. 조선 후기 친족 질서는 내외친이 망라되는 양계적(兩系的) 친족 질서에서 적장자(嫡長子) 중심의 부계적(父系的) 친족 질서로 변화되었다. 구체적으로 혼인 형태에서 유교적 요소의 강화, 적장자 중심의 남녀 차등 상속, 장자 단독 봉사(奉祀), 부계 혈연을 중심으로 한 문중(門中)의 결성과 동성마을의 형성 등으로 나타났다...
-
대구광역시에서 여러 대에 걸쳐 살아오고 있는 성씨. 한 지역에 세거하고 있는 성씨는 다양하지만, 조선시대에 주(州)·군(郡)·현(縣)으로 구별된 행정지역에 세거한 성씨는 향안(鄕案)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일정한 지역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향교의 운영에 인원과 재정 등을 부담하고 있다. 또한 서원·사당·서당·정자 등 문중 단위의 유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읍지(邑誌) 등의...
-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양달화(楊達和)[1694~1756]의 본관은 중화(中和)이며, 자는 태삼(泰三), 호는 지촌(池村)이다. 아버지는 양시진(楊時震)이고, 어머니는 현풍곽씨(玄風郭氏)이다....
-
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에 있는 학산공 양해일과 우산공 양헌방 부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개항기에 건립한 정려각. 학산공 양해일(楊海一)[1797~1873]과 우산공 양헌방(楊憲邦)[1826~1878]의 효행은 다음과 같다. 양해일은 호가 학산(鶴山), 자는 진원(進源)이다. 천성이 순박하고 올바랐는데,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를 극진히 섬겼으며, 아버지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였을...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양달화를 추모하는 재실. 영모재(永慕齋)[중화양씨]는 조선 영조(英祖) 때의 학자인 양달화(楊達和)[1694~1756]를 추모하기 위하여 1913년에 건립되었다. ‘영모재’는 길이 흠모하는 집이라는 의미이며, 영모재에서 북쪽 방향으로 멀지 않은 곳에 양달화의 묘소가 있다....
-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오천서원(梧川書院)은 1744년(영조 20)에 양희지(楊凞止)[1439~1504]를 기리기 위하여 창건된 서원이다....
-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오천서원(梧川書院)은 1744년(영조 20)에 양희지(楊凞止)[1439~1504]를 기리기 위하여 창건된 서원이다....
-
대구 지역에 남아 있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집 재실(齋室)은 조상을 추모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묘소 근처나 강학지, 유허지 등에 지은 집을 이르는 말이다. 재실의 ‘재(齋)’는 ‘제계(齊戒)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을 맑게 하여 선조를 생각하고 추모하는 것을 뜻한다. 묘소에 재실을 둔 것은 진한(秦漢) 때에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
대구광역시에 현존하는 조선시대부터 집성촌을 이루어 온 문중의 큰집. 종가(宗家)의 사전적 의미는 “한 문중에서 맏이로만 이어 온 큰집”이지만, 종가는 전체 부계친족(父系親族) 집단의 맏이 집안을 가리키는 대종가(大宗家)와 대종가에서 갈라져 나와 새로운 종가를 이룬 소종가(小宗家)가 있다. 『예기(禮記)』「대전(大傳)」 편에서 유래한 종법(宗法)에 따르면 부계친족의 맏이는 대대로 영...
-
양포를 시조로 하고 양희지를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의 세거 성씨. 중화양씨(中和楊氏)의 시조는 고려 고종(高宗) 때 정승을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당악군(唐岳君)에 책봉된 양포(楊浦)이다. ‘당악’은 중화의 옛 이름으로, 이후 후손들이 중화를 본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었다. 이후 양포의 6세손인 양백지(楊百枝)가 고려 말에 서경천호(西京千戶)를 지내며 평양에 자리 잡은 이래 후손...
-
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에 있는 중화양씨 세거지. 중화양씨(中和楊氏)의 시조는 고려 고종(高宗) 때 정승을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당악군(唐岳君)에 책봉된 양포(楊浦)이다. 당악은 중화의 옛 이름으로, 이후 후손들이 중화를 본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었다. 이후 양포의 6세손인 양백지(楊百枝)가 고려 말에 서경천호(西京千戶)를 지내며 평양에 자리 잡은 이래 후손들이 주로 평양을 중심...
-
조선 후기 및 개항기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 출신 문인. 최정한은 조선 후기 대구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로 낙육재 재생(齋生)이다....
-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속하는 법정동. 파동(巴洞)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법정동 26개 중 하나이다. 중화양씨(中和楊氏)와 하양허씨(河陽許氏)가 이룬 마을이다. 대구 지역 살기 좋은 곳으로 ‘1파 2무’라는 얘기가 전하여 온다. 첫째가 파동, 둘째가 무태[서변동]라는 의미다. 그만큼 예로부터 살기 좋은 터전이었다....
-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주민들의 행정 복지 사무를 맡아 보는 행정기관. 대구광역시 수성구청에 속하는 파동 행정복지센터는 법정동인 파동을 관할하는 행정기관이다....
-
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에 있는 양달화의 학덕을 추모하여 건립한 서당형 건물. 학산재(鶴山齋)는 지촌(池村) 양달화(楊達和)[1694~1756]의 학덕을 추모하여 건립한 서당형 정자이다. 양달화의 본관은 중화(中和)이며, 자는 태삼(泰三), 호는 지촌(池村)이다, 문장과 덕행으로 향리에서 명망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