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조씨
-
대구광역시 달서구 파호동에 조선시대의 학자인 한강 정구와 낙재 서사원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강학소. 이락서당(伊洛書堂)은 조선시대 정조 때 대구, 달성, 칠곡 등 인근 9문중의 선현들이 금호강(琴湖江)과 낙동강(洛東江)의 합수지인 강창(江倉)을 택하여 삼가헌(三可軒) 박성수(朴聖洙)가 1765년(영조 6) 9월에 착공하여 1766년 봄에 준공하였다. 한강(寒岡) 정구(鄭逑...
-
대구광역시에 있는 전통 가옥. 고택(古宅)은 대구광역시 여러 곳에 남아 있다. 대구광역시를 대표하는 고택으로는 중구의 서상돈(徐相敦) 고택과 이상화(李相和) 고택이 있고,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동구의 대구 백불암 고택(大邱 百弗庵 古宅), 달성군의 달성 삼가헌 고택(達城 三可軒 古宅)과 달성 조길방 고택(達城 趙吉芳 古宅) 등이 있다....
-
대구광역시 북구 동호동에 있는 조시무의 추모 재사. 낙금당은 통덕랑 조시무(趙時珷)[1633~1690]의 생전 강학소이자 추모 재사이다. 조시무는 함안조씨 원대 입향조인 연담 조함장의 아들이며, 지금의 대구광역시 서구 원대동에서 태어났다. 8세 때 소학을 배우고 15세 때 형 만취(晩翠) 조시원(趙時瑗)과 함께 미수 허목에게 나아가 글을 배웠다. 본래 조시무는 자질이 뛰어나 세상에...
-
대구광역시 북구 동호동에 있는 조시무의 추모 재사. 낙금당은 통덕랑 조시무(趙時珷)[1633~1690]의 생전 강학소이자 추모 재사이다. 조시무는 함안조씨 원대 입향조인 연담 조함장의 아들이며, 지금의 대구광역시 서구 원대동에서 태어났다. 8세 때 소학을 배우고 15세 때 형 만취(晩翠) 조시원(趙時瑗)과 함께 미수 허목에게 나아가 글을 배웠다. 본래 조시무는 자질이 뛰어나 세상에...
-
대구에 입향하여 세거하고 있는 성씨. 조선 초에 대구는 본부(本府)와 수성현(壽城縣), 하빈현(河濱縣), 해안현(解顔縣)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본군(本郡)의 내성(來姓)이 1이니, 도(都)이다. 수성(壽城)의 내성(來姓)이 7이니, 유(柳)·장(張)·최(崔)·신(申)·유(劉)·고(高)·정(鄭)이요, 해안(解顔)의 내성이 3이니, 제(諸)...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는 조시원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 노원재는 만취(晩翠) 조시원(趙時瑗)[1627~1689]을 추모하기 위하여 함안조씨(咸安趙氏) 문중에서 건립한 재실이다. 재실의 솟을대문에는 ‘척창문(惕愴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척창’은 선조를 떠올리니 삼가고 두렵고 슬프다는 뜻이다. 노원재 뒤편에 조시원의 묘소가 있다....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는 조시원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 노원재는 만취(晩翠) 조시원(趙時瑗)[1627~1689]을 추모하기 위하여 함안조씨(咸安趙氏) 문중에서 건립한 재실이다. 재실의 솟을대문에는 ‘척창문(惕愴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척창’은 선조를 떠올리니 삼가고 두렵고 슬프다는 뜻이다. 노원재 뒤편에 조시원의 묘소가 있다....
-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암동에 있는 조선 후기 재실이자 서당. 달암재(達巖齋)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암동에 정착한 참봉(參奉) 최성희(崔聖禧), 임천군수(林川郡守) 조득도(趙得道), 참봉(參奉) 이언상(李彦祥) 등이 조선 후기인 1830년(순조 30)에 건립한 건물이다. 건립 당시에는 후손들의 훈육을 위한 서당으로 활용되었다고 전하며, 현재는 이언상, 조득도, 최성희 세 사람을...
-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암동에 있는 조선 후기 재실이자 서당. 달암재(達巖齋)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암동에 정착한 참봉(參奉) 최성희(崔聖禧), 임천군수(林川郡守) 조득도(趙得道), 참봉(參奉) 이언상(李彦祥) 등이 조선 후기인 1830년(순조 30)에 건립한 건물이다. 건립 당시에는 후손들의 훈육을 위한 서당으로 활용되었다고 전하며, 현재는 이언상, 조득도, 최성희 세 사람을...
-
대구 지역에 세거하는 성씨와 세거지를 기록한 책. 『대구향안 24문중(大邱鄕案 24門中)』은 1949년에 대구 지역에 세거하는 24개 성씨와 세거지를 기록한 책으로 원래의 이름은 『대구향교 향안속수록(大邱鄕校鄕案續修錄)』이다....
-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암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월암동에 입향한 선조들을 기리는 비석. 삼현유허비(三賢遺墟碑)는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하여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암동 지역으로 와서 정착한 최성희(崔聖禧), 조득도(趙得道), 이언상(李彦祥)을 기리고자 1939년에 건립한 유허비이다. 비문은 민병승(閔丙承)이 지었다. 삼현유허비에 나오는 세 입향조 중 경주최씨(慶州崔氏) 최성희는 침랑...
-
대구광역시에서 여러 대에 걸쳐 살아오고 있는 성씨. 한 지역에 세거하고 있는 성씨는 다양하지만, 조선시대에 주(州)·군(郡)·현(縣)으로 구별된 행정지역에 세거한 성씨는 향안(鄕案)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일정한 지역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향교의 운영에 인원과 재정 등을 부담하고 있다. 또한 서원·사당·서당·정자 등 문중 단위의 유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읍지(邑誌) 등의...
-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문관. 우홍적(禹洪迪)[1691~1742]의 본관은 단양(丹陽)이며, 자는 개범(開範), 호는 월주(月洲)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우달해(禹達海)이고, 할아버지는 우여준(禹汝準)이다. 아버지는 우석현(禹錫玹)이고, 어머니는 조시관(趙時瓘)의 딸 함안조씨(咸安趙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전침(全琛)의 딸 옥천전씨(沃川全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박만휘(朴萬彙)의...
-
대구광역시 달서구 파호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당. 이락서당(伊洛書堂)은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와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을 추모하고 그 학풍을 잇기 위하여 만든 서당이다. 서당 건립에는 모두 아홉 문중이 참여하였는데, 성주도씨, 광주이씨, 함안조씨, 밀양박씨, 전의이씨, 일직손씨, 순천박씨, 달성서씨, 광주이씨(廣州李氏) 등이다...
-
대구 지역에 남아 있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집 재실(齋室)은 조상을 추모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묘소 근처나 강학지, 유허지 등에 지은 집을 이르는 말이다. 재실의 ‘재(齋)’는 ‘제계(齊戒)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을 맑게 하여 선조를 생각하고 추모하는 것을 뜻한다. 묘소에 재실을 둔 것은 진한(秦漢) 때에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
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무관. 조형도(趙亨道)[1567~1637]는 임진왜란 당시 김성일(金誠一)과 곽재우(郭再祐)의 창의(倡義)에 가담하여 대구 경북 지역에서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조형도(趙亨道)가 대구에서 맺은 인연에 의하여 조형도의 아들 조함장(趙咸章)[1597~1648]이 대구광역시 서구 원대동에 입향하여 함안조씨 대구 원대 입향조가 되었다....
-
대구광역시에 현존하는 조선시대부터 집성촌을 이루어 온 문중의 큰집. 종가(宗家)의 사전적 의미는 “한 문중에서 맏이로만 이어 온 큰집”이지만, 종가는 전체 부계친족(父系親族) 집단의 맏이 집안을 가리키는 대종가(大宗家)와 대종가에서 갈라져 나와 새로운 종가를 이룬 소종가(小宗家)가 있다. 『예기(禮記)』「대전(大傳)」 편에서 유래한 종법(宗法)에 따르면 부계친족의 맏이는 대대로 영...
-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문인이자 효자. 최정석(崔鼎錫)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자는 우서(禹瑞)이다. 최정석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 최위남(崔衛南)은 성균관 생원(成均館 生員)이고, 할아버지 최경함(崔慶涵)은 선교랑(宣敎郎)이며, 아버지 최수학(崔壽學)은 광양현감(光陽縣...
-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문인. 최흥건(崔興建)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자는 입부(立夫), 호는 육와(陸窩)이다. 최흥건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郎)을 지낸 최경함(崔慶涵)이고, 할아버지는 감찰(監察)을 지낸 최수학(崔壽學)이며, 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최정석...
-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배향된 학자이며 효자. 도덕과 학문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부모에게 지극한 효를 행하여 조정에서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대구 칠계(漆溪)에 살았으므로 세상에서 칠계 선생(漆溪先生)이라 하였다....
-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학자. 최흥점(崔興漸)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자는 진숙(進叔), 호는 초려(草廬)이다. 최흥점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郎)을 지낸 최경함(崔慶涵)이고, 할아버지는 광양 현감(光陽縣監)을 지낸 최수학(崔壽學)이며, 아버지는 통덕랑 최정...
-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선비. 최흥후(崔興厚)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자는 재숙(載叔), 호는 긍와(兢窩)이다. 최흥후는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郎)을 지낸 최경함(崔慶涵)이고, 할아버지는 감찰(監察)을 지낸 최수학(崔壽學)이며, 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최정석...
-
조정을 시조로 하고 조함장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의 세거 성씨. 함안조씨(咸安趙氏)의 시조는 후당(後唐)에서 귀화하여 고려 개국에 공을 세운 조정(趙鼎)이다. 조정은 신라 말에 동생 조부(趙釜)와 조당(趙鐺)을 데리고 절강(浙江) 사람 장길(張吉)과 함께 신라에 귀화하였다. 조정은 신숭겸(申崇謙)·배현경(裵玄慶)·복지겸(卜智謙)·권행(權幸) 등과 교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조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