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현
-
통일 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 경덕왕(景德王)[재위742∼765] 때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한화 정책을 펼치면서 본래 위화군(喟火郡)을 수창군(壽昌郡) 또는 가창군(嘉昌郡)으로 개칭하였다....
-
삼한시대부터 통일신라까지의 대구광역시 지역의 역사. 한반도 중남부 지방에서 삼한시대는 위만조선의 멸망[기원전 108년]에서부터 이야기할 수 있다. 위만조선의 멸망을 전후하여 다수의 유이민이 남하하였고, 진한(辰韓)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낙동강 이서 지역에서는 변진(弁辰) 혹은 변한(弁韓)이 성립하였다. 3세기 중엽의 모습을 전하는 『삼국지』 동이전에 의하면, 진한·변한은 각...
-
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 시기 대구광역시 지역의 역사. 후삼국시대는 889년(진성여왕 3)의 이른바 ‘도적 봉기’에서부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후삼국시대 무렵 신라의 지방 지배 체제가 이미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고, 각지에서 도적이 그야말로 벌 떼처럼 일어났다고 한다. 이에 각지에서 자위적인 조직이 결성되었는데, 대구 지역에서도 여러 성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세...
-
고려시대 달성 지역의 역사. 현재 대구광역시에 속하는 달성군의 행정 구역은 화원읍·논공읍·다사읍·옥포읍·현풍읍·유가읍등 6읍과 가창면·하빈면·구지면의 3개 면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고려시대에는 독립된 행정 구역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고려 시대에 달성 지역은 동경 유수관(東京留守官)의 속읍인 수성군(壽城郡)·해안현(解顔縣)과 밀성군의 속현인 현풍현(玄豊縣), 상주목 관내인 경산부(京山...
-
신라 말 대구의 위상과 수창군 호국성의 장소 추정에 필요한 최치원의 기문. 최치원(崔致遠)[857~?]은 강수(强首), 설총(薛聰)과 더불어 ‘신라 3문장(三文章)’의 한 명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최치원은 신라의 주도 세력인 진골 출신이 아닌 6두품 출신이다. 868년(경문왕 8) 12세 때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874년(경문왕 14) 18세에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할 정도의...
-
대구광역시에 속한 9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하나. 대구광역시 남구(南區)는 대구광역시의 중심에서 남쪽인 앞산[658.7m] 자락 일대에 위치한 기초지방자치단체이다. 동으로는 수성구, 서로는 서구와 달서구, 북으로는 중구와 경계를 이룬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속하는 읍. 다사라는 지명은 하빈현(河濱縣)의 옛 이름인 다사지(多斯只)에서 유래된 것으로, 다사는 신라어로 물[水]을 뜻한다고 한다....
-
689년 신라 신문왕이 도읍을 지금의 대구 지역인 달구벌로 옮기고자 하였으나 실현하지 못한 사건.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 신문왕 9년(689) 조에 도읍을 달구벌(達句伐)로 옮기고자 하였으나 실현하지 못하였다[未果]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달구벌은 경덕왕 때 대구현(大丘縣)으로 고친 달구화현(達句火縣)을 말한다....
-
신라시대 대구 지역과 신라 신문왕의 달구벌 천도 시도.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 신문왕 9년[689] 조에 도읍을 달구벌(達句伐)로 옮기고자 하였으나 실현하지 못하였다[未果]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달구벌은 『삼국사기』 지리지에 나오는 달구화현(達句火縣)을 말하며, 경덕왕 때 대구현(大丘縣)으로 고쳐진 현재의 대구 지역을 뜻한다. 기존에는 달구벌 천도 계획에 대하여 주로...
-
현재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구, 동구 일부, 북구 일부, 달서구 일부를 관할한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 달구화현(達句火縣)은 현재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구, 동구 일부, 북구 일부, 달서구 일부를 관할한 757년(신라 경덕왕 16) 이전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이다....
-
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가 고대 국가로 성장함에 따라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할 목적으로 군현 제도를 시행하였다. 이에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일대는 달구화현이 되었다....
-
대구광역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군. 달성군은 대구광역시의 군 지역이다. 동쪽으로 경상북도 경산시, 북동쪽으로 대구광역시 달서구·남구·수성구와 경계하며, 서쪽으로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경상북도 성주군 및 고령군과 마주보고 있다. 남쪽으로 경상북도 청도군, 경상남도 창녕군 그리고 북쪽으로는 경상북도 칠곡군과 접한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의 동부 지역은 북구·서구와도 접해 있다. 동...
-
개청 100주년을 맞아 '대구의 뿌리 달성 꽃피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새로운 100년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대구광역시 달성군은 2014년에 개청 100주년을 맞이하여 '대구의 뿌리 달성 꽃피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새로운 100년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달성군은 1995년에 경상북도에서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었...
-
조선 시대 달성 지역의 호구 상황. 조선 조정의 국가 통치에 있어 역(役)의 동원 및 조세의 수취 등 재정 확보를 위한 자국민의 인구수 파악과 현황을 조사하여 관리하는 일은 중요한 업무였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호구 즉 호주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거주지, 인구수, 연령, 성별 등을 파악하여 행정에 반영하였다. 이를 위해 조선은 한 지역의 인구수를 기준으로 하여 관리 운영에 적합한 행...
-
대구 지역에 조선 전기부터 개항기까지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1466년(세조 12) 대구군은 대구도호부로 승격하였다. 1601년(선조 34)부터 경상감영이 설치되면서 경산현·하양현·화원현을 속현으로 추가하였으나, 1607년(선조 40) 분리되었다. 1601년 설치되었던 경상감사의 유영(留營)[감영]은 1656년(효종 7) 폐지되었다가, 12년 뒤인 1668년(현종 9) 다시 감영을...
-
대한민국 남동부에 위치하는 광역자치단체로서 영남의 지리적 중심지. 동쪽은 경상북도 경산시, 서쪽은 경상북도 성주군·고령군, 남쪽은 경상북도 청도군과 경상남도 창녕군, 북쪽은 경상북도 칠곡군·군위군·영천시와 접하고 있다. 위치는 동경 126°38'~127°00', 북위 35°03'~35°15'이다. 면적은 883.54㎢이고, 2021년 현재 인구는 239만 721명이다. 행정구역으로...
-
대구 지역에 1419년부터 1466년까지 그리고 1895년부터 1910년까지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대구가 대구군(大丘郡, 大邱郡)이었던 시기는 1419년(세종 1)부터 1466년(세조 12)까지와 1895년부터 1910년까지이다. 1018년(현종 9)부터 125년간 경상도 상주목 경산부[지금의 성주군]의 속현이었다가, 1143년(인종 21) 승격하여 지방관인 현령이 파견되었으며,...
-
대구광역시의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주요한 문화유산. 대구광역시 중구, 남구, 달서구, 서구, 북구, 동구, 수성구에는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 3건, 보물 68건, 사적 8건, 천연기념물 1건, 국가민속문화재 4건, 국가등록문화재 11건, 대구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69건, 무형문화재 15건, 기념물 14건, 민속문화재 2건, 문화재자료 41건 등 모두 236건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
현재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구, 동구 일부, 북구 일부, 달서구 일부를 관할한 신라, 고려, 조선의 지방 행정구역. 대구현(大丘縣)은 757년부터 1419년까지 신라, 고려, 조선의 지방 행정구역이다. 현재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구, 동구 일부, 북구 일부, 달서구 일부에 해당한다....
-
통일 신라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은 귀족 세력의 약화와 왕권 강화를 목표로 하여 한화 정책을 펼쳐 9주·5소경·117군·293현의 고유 지명을 한자식으로 바꾸었다. 이때 달구화현(達句火縣)이 대구현(大丘縣)으로 개칭되었다....
-
대구광역시 북동부에 위치한 기초 자치구. 대구광역시 동구의 지세는 북고남저형이다. 팔공산이 동구 북쪽경계면을 따라 펼쳐져 있고 남서쪽으로는 금호강 및 신천 주변으로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의 북쪽에 자리한 팔공산은 경산시, 영천시, 군위군과 경계를 이룬다. 대구광역시 동구 북동쪽을 둘러싸고 있는 북부 산지는 남동의 초례봉(醮禮峰)에서 시작해, 북서 남동 방향의 능선...
-
대구광역시에 속한 9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하나. 북구(北區)는 대구광역시의 북쪽에 위치하는 기초지방자치단체이다. 서쪽으로 서구, 남쪽으로 중구, 북쪽으로 경상북도 칠곡군과 군위군 등지와 경계를 이룬다. 선사 시대 이래 사람들이 마을이 이루어 살아온 지역이며, 특히 신천과 동화천이 합류하는 금호강 유역의 서변동 일대에서는 수성구 파동과 더불어 대구 지역 신석기 유적지가 발굴되었다....
-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조직화된 집단. 사회는 인간의 집합체인 동시에 인간이 모여서 공동생활을 하는 장(場)이다. 인간과 사회는 둘이 동시에 존재할 때에만 양쪽 모두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일컫고 이 말은 인간은 사회를 벗어나서는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누릴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사회라는 말 속에는 가족·마을·조합·계급...
-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에 있는 상동 주민들의 행정 복지 사무를 맡아 보는 행정기관. 대구광역시 수성구청에 속하는 상동 행정복지센터는 법정동인 상동을 관할하는 행정기관이다....
-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역과 달성군 가창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940년(태조 23) 태조 왕건은 전국의 군현(郡縣) 명칭을 개정하는 개편을 단행하면서, 이때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 시기 만들어진 수창군(壽昌郡)을 수성군(壽城郡)으로 개칭하였다....
-
조선 전기 대구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 수성현(壽城縣)은 조선 전기 대구 지역의 행정구역이다. 조선 후기 수성현은 수현내·수북·수동·상수서·하수서·상수남·하수남면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대체로 현재의 신천 동남쪽의 달성군 가창면, 남구, 시지 지역을 제외한 수성구와 중구 대봉동 및 동구 효목동에 해당한다....
-
현재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남구, 달성군 가창면을 관할하던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 수창군(壽昌郡)은 현재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남구, 달성군 가창면을 관할하면서 주변의 현(縣)들을 거느린 757년(신라 경덕왕 16) 이후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이다....
-
통일 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수성구 중동·상동 및 달성군 가창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은 귀족 세력 약화와 왕권 회복을 목표로 한화 정책을 펼쳐 9주·5소경·117군·293현의 고유 지명을 한자식으로 바꾸면서 위화군(喟火郡)을 수창군(壽昌郡)으로 개칭하였다....
-
남북국시대 지금의 대구 지역인 수창군 호국성 남령에 세워진 팔각등루의 기문. 「신라수창군호국성팔각등루기(新羅壽昌郡護國城八角燈樓記)」는 통일신라 수창군(壽昌郡) 호국성(護國城) 남령(南嶺)에 세워진 팔각등루(八角登樓)의 기문(記文)이다. 수창군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일원이다. 군치(郡治)와 대구현(大丘縣), 팔리현(八里縣), 하빈현(河濱縣), 화원현(花園縣) 등 4현으로 구성되...
-
대구광역시의 중심 하천으로 대구광역시 영역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신천의 물줄기. 대구분지는 여러 하천이 발달하여 생태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고문헌과 관련 자료에 따르면 신천(新川)은 예로부터 대구분지의 다른 하천들에 비하여 대구부(大丘府) 주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 왔음을 알 수 있다. 신천이 대구부 주민들에게 친숙하게 여겨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신천은 지리적으로 금...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대구광역시 역사. 대구는 지형적으로 영남의 중심부이며, 지리적으로 경상도 상변에서 뻗쳐 나온 소백산맥에 연이어 팔공연령이 병립하고 남쪽에는 구조곡이 나란히 발달한 가운데 산들이 겹겹이 펼쳐지면서 낙동강 중류에 합류하는 금호강과 금호강 지류인 신천이 퍼져 흐르는 분지에 속한다. 대구시 가로의 주요부는 대구분지 중앙에 자리 잡은 신천의 범람원으로 형성되...
-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달성 지역의 역사. 달성 지역에 처음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대구 월성동 유적(月城洞遺蹟)을 통해 후기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달성군의 역사는 대체로 대구의 역사와 함께 살펴보아야 하며, 대구에서 분리되었던 시기[1914~1995년]는 독립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대구는 예로부터 달구벌(達句伐), 달구불[達句火], 달성(達城) 등으로...
-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속하는 읍. 옥포읍(玉浦邑)은 달성군의 중앙에 위치하며 화원읍과 논공읍의 중간 지점에 해당한다. 옥포읍은 본리리(本里里), 신당리(新塘里), 교항리(橋項里), 강림리(江林里), 송촌리(松村里), 간경리(干京里), 기세리(奇世里), 반송리(盤松里), 김흥리(金興里)의 총 9개 법정리와 21개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
대구광역시 수성구, 남구, 달성군 가창면 지역에 있던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 위화군(喟火郡)은 현재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남구, 달성군 가창면을 관할하면서 주변의 현(縣)들을 거느린 757년(신라 경덕왕 16) 이전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이다....
-
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중동 일대와 달성군 가창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와 달성군 가창면 지역은 신라 중고 때 주군을 설치하면서 위화군(喟火郡)으로 불렸다....
-
1392년부터 1897년까지 대구 지역에 조선왕조가 있던 시대. 고려시대에 대구는 1143년(인종 21) 대구현이 현령관으로 승격하면서 화원현과 하빈현을 속현으로 두었다. 그러나 1401년(태종 1) 경산부에 어태를 안치하고 성주목으로 승격되면서 화원현은 성주목의 속현이 되었다. 1414년(태종 14)에는 종래의 하빈현에 수성현과 해안현을 새로이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대구현은 호...
-
조선시대 달성 지역의 역사. 건국 초 고려의 행정 체계를 답습하던 조선은 태종 연간에 전면적인 지방 제도 개편이 이루어짐에 따라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전국을 팔도로 구분하고 각 도에 감사(監司)[종2품]를 두어 도정(道政)을 총괄하게 하였다. 그리고 각 도의 감사 아래 해당 읍을 통치하는 수령이 파견되었다. 조선은 전국 약 330개의 모든 고을에 왕권(王權)의 대행자인...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 조선 초기에 대구[지금 대구광역시]는 현이었다. 조선시대에 지방행정단위를 읍의 규모와 군사적 지휘체계를 고려하여 부·목·군·현이라 나눈 것 가운데 제일 낮은 격이었다. 1403년(태조 3) 3월에 감무(監務)가 있었던 수성현(壽城縣)[지금 대구광역시 수성구]과 해안현(解顔縣)[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봉무동,...
-
대구광역시 수성구 중동에 있는 중동 주민들의 행정 복지 사무를 맡아 보는 행정기관. 대구광역시 수성구청에 속하는 중동 행정복지센터는 법정동인 중동을 관할하는 행정기관이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속하는 면. 하빈면(河濱面)은 옛 지명인 하빈현(河濱縣)에서 이름을 딴 것으로, 하빈은 한자로 강가를 뜻하므로, 낙동강(洛東江) 변의 고을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
통일 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은 귀족 세력의 약화와 왕권 회복을 목표로 한화 정책을 펼치며 지방 제도를 고쳐 9주·5소경·117군·293현의 고유 지명을 한자로 바꾸었다. 이때 다사지현(多斯只縣)을 하빈현(河濱縣)으로 개칭하였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공공 문제 해결 및 공공 서비스의 생산, 분배와 관련된 지방 자치 단체의 제반 활동. 일반적으로 근대 국가 성립 이후 19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행정의 주된 역할과 기능은 국가의 질서 유지에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질서 유지 기능뿐만...
-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이루어지는 공공 문제 해결 및 공공 서비스의 생산, 분배와 관련된 지방자치단체의 제반 활동. 행정은 근대 국가 성립 이후 1900년대 초까지는 국가의 질서 유지에 기능이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 이후로 행정은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기존의 질서 유지 기능뿐만 아니라 수도·전기·교통·통신 등...
-
조선시대 대구 지역의 집과 사람, 또는 집과 사람의 수. 호구(戶口)는 국가가 공물(貢物)과 부역(賦役) 등의 세금을 부과하는 기준이었기 때문에 호구 수의 파악이 매우 중요하였다. 1414년(태종 14) 대구현은 이전부터 관할하던 하빈현과 함께 수성현과 해안현을 관할하였다. 1419년(세종 1)에는 1,000호 이상이 되어 군으로 승격하였는데 1,300호였다....
-
남북국시대 대구 지역에 축조된 성. 호국성(護國城)은 후삼국시대 대구 지역에 축조된 성이다. 908년(신라 효공왕 12) 10월, 호국의영도장(護國義營都將) 중알찬(重閼粲) 이재(異才)가 수창군 호국성 남령(南嶺)에 팔각등루(八角燈樓)를 세웠다. 국가의 경사를 기원하고 병란을 없애기 위하여 최치원(崔致遠)이 작성한 등루기(燈樓記)가 유명하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속하는 읍. 화원읍은 대구광역시 달서구에서 달성군으로 진입하는 관문에 해당되는 읍으로 옛날부터 달서구 월배 지역과는 동일 행정 경계 내에 위치하였을 때가 많아, 두 지역은 하나의 생활권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화원읍은 천내리(川內里), 구라리(九羅里), 성산리(城山里), 설화리(舌化里), 명곡리(椧谷里), 본리리(本里里)의 총 6개 법정리와 46개 행정리로 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