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문동
-
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찬옥(粲玉), 호는 소봉(小峰). 고려 말 두문동(杜門洞) 72현(賢) 중 한 명인 구송은(具松隱)의 19세손이다. 조선조 임진왜란 때 창의 수훈한 첨정공 구회신(具懷愼)의 11세손이다. 아버지는 구재서(具在書)이다....
-
조선 전기 대구 표절사에 배향된 문관. 구홍(具鴻)[?~?]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호는 송은(松隱)이다. 할아버지는 전리판서 구영검(具榮儉)이며, 아버지는 소부윤을 지낸 구위(具褘)이다. 어머니는 경주박씨(慶州朴氏)이다....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건립된 고려 후기 문신 구홍의 추모비. 구홍 추모비(具鴻 追慕碑)[송은 구선생 추모비(松隱 具先生 追慕碑)]는 고려 후기 우왕(禑王)[재위 1374~1388] 때 문신인 구홍을 기리고자, 대구광역시 지역에 모여 사는 후손들이 1984년에 세운 추모비이다. 구홍은 본관이 능성(綾城)으로, 능성구씨 7세(世)이며, 호는 송은(松隱)이다.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중건된 전통 가옥. 능성세가(綾城世家)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대를 이어 살던 능성구씨 집안의 종가 건물이다. 무태[서변동] 지역에 자리 잡은 능성구씨의 입향조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하다가 서변동에 정착한 계암(溪巖) 구회신(具懷愼)[1564~1634]이다. 구회신은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의를 지킨 두문...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중건된 전통 가옥. 능성세가(綾城世家)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대를 이어 살던 능성구씨 집안의 종가 건물이다. 무태[서변동] 지역에 자리 잡은 능성구씨의 입향조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하다가 서변동에 정착한 계암(溪巖) 구회신(具懷愼)[1564~1634]이다. 구회신은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의를 지킨 두문...
-
대구광역시 동구의 성리학과 성리학자 그리고 유적·유물. 대구광역시 동구는 시내의 중심지인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신암동에서 동쪽으로는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 안심지역을 포함하고, 북쪽으로는 팔공산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다. 이곳에는 1563년(명종 18)에 건립된 대구 최초의 서원인 연경서원(硏經書院)이 있었다. 그래서 대구광역시 동구는 대구 성리학의 출발점이자 산실이었다고 할 수...
-
고려 후기 대구 출신의 충신. 도응(都膺)[?~?]은 고려에 대한 충절로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한 72현 중의 한 사람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李成桂)의 죽마고우였다고 한다....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능성구씨 재실. 모선당(慕先堂)은 능성구씨(綾城具氏) 고려조 조상 3인의 묘소가 북한 지역인 경기도 개성에 있어 성묘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1981년에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창포산에 모셔 와 1981년 건립하였다. ‘모선당’이라는 이름은 개성의 산소에 있던 모선재(慕先齋)에서 유래하였다....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능성구씨 재실. 모선당(慕先堂)은 능성구씨(綾城具氏) 고려조 조상 3인의 묘소가 북한 지역인 경기도 개성에 있어 성묘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1981년에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창포산에 모셔 와 1981년 건립하였다. ‘모선당’이라는 이름은 개성의 산소에 있던 모선재(慕先齋)에서 유래하였다....
-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와 그들의 집성촌.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은 대구도호부(大丘都護府) 해안현(解顔縣)에 해당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대구도호부(大丘都護府) 조에 따르면 해안현에는 모(牟), 백(白), 하(河), 신(申), 정(丁), 제(諸), 진(秦), 박(朴)이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내성(來姓)이며,...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고려 후기 충신 구홍과 조선 후기 의병장 구회신을 기리는 재실. 송계당(松溪堂)은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재실이다. 고려 후기의 충신인 두문동(杜門洞) 송은(松隱) 구홍(具鴻)과 조선 후기 임진왜란 당시 대구에서 의병을 일으킨 8대손 계암(溪巖) 구회신(具懷愼)[1564~1634]의 절개와 위업을 기리고자 1659년(효종 10)에 세운 후손들이...
-
대구 지역의 유교와 그 특징. 대구 지역의 유학(儒敎)은 여말 선초에 시작되었으며 연경서원(硏經書院)을 중심으로 퇴계학을 중시하는 도학파가 주류를 이루었다....
-
대구광역시 북구 검단동에 있는 고려 후기 대구 출신 문신 채귀하를 제향하는 사당. 의현사(義峴祠)는 고려 말 대구에서 출생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호조전서(戶曹典書)를 역임한 다의당(多義堂) 채귀하(蔡貴河)[?~?]를 제향하는 사당이다. 채귀하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 등과 교유하였다. 고려의 사직이 다하자 두문...
-
고려 후기 대구 출신의 문관. 이경(李瓊)[1337~?]의 본관은 하빈(河濱)이며, 호는 이우당(二憂堂)이다. 할아버지는 하빈이씨 시조인 예부상서 이거(李琚)이며, 아버지는 이정기(李挺基)이다. 어머니는 원천석(元天錫)의 딸 원주이씨(原州李氏)이다....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이경을 추모하는 재사. 이우당(二憂堂)은 이우당(二憂堂) 이경(李瓊)[1337~?]을 추모하는 재사이다. 이경의 호는 이우당, 본관은 하빈이며, 할아버지는 하빈이씨 시조인 하빈군 이거이다. 이경은 6세 때 외조부인 원천석에게 글을 배웠는데 신동으로 소문이 났다. 이경은 15세 때 고려 충정왕을 만났다. 당시 충정왕은 이경이 사서육경을...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이경을 추모하는 재사. 이우당(二憂堂)은 이우당(二憂堂) 이경(李瓊)[1337~?]을 추모하는 재사이다. 이경의 호는 이우당, 본관은 하빈이며, 할아버지는 하빈이씨 시조인 하빈군 이거이다. 이경은 6세 때 외조부인 원천석에게 글을 배웠는데 신동으로 소문이 났다. 이경은 15세 때 고려 충정왕을 만났다. 당시 충정왕은 이경이 사서육경을...
-
고려시대 동지추밀원사를 지낸 채선무를 시조로 하고, 채영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 세거한 성씨. 인천채씨는 고려 때 동지추밀원사를 지낸 시조 채선무(蔡先茂)의 후손들이 인천에 세거하면서 채씨일문을 이루었다. 고려 말에 호조전서(戶曹典書)를 지내다가 조선이 개국되자 절개를 지켜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서 은거한 채귀하(蔡貴河)를 중조(中祖)로 하는데, 대구광역시 동...
-
대구광역시에 현존하는 조선시대부터 집성촌을 이루어 온 문중의 큰집. 종가(宗家)의 사전적 의미는 “한 문중에서 맏이로만 이어 온 큰집”이지만, 종가는 전체 부계친족(父系親族) 집단의 맏이 집안을 가리키는 대종가(大宗家)와 대종가에서 갈라져 나와 새로운 종가를 이룬 소종가(小宗家)가 있다. 『예기(禮記)』「대전(大傳)」 편에서 유래한 종법(宗法)에 따르면 부계친족의 맏이는 대대로 영...
-
고려 후기 대구 출신의 문관. 채귀하(蔡貴河)[?~?]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청일(淸一), 호는 다의당(多義堂)이다. 아버지는 형부상서 채원길(蔡元吉)이고, 어머니는 개성고씨(開城高氏)이다....
-
대구광역시 북구 검단동에 고려 후기 문신 채귀하의 신도비. 채귀하 신도비(蔡貴河 神道碑)[고려국 호조전서 시정의공 다의당 채선생 신도비(高麗國 戶曹典書 諡貞義公 多義堂 蔡先生 神道碑)]는 고려 후기 문신이자 학자였던 다의당(多義堂) 채귀하[?~?]의 충절을 기리고자 후손들이 1981년에 건립한 신도비이다. 대구 출신인 채귀하는 문과에 합격하여 호조전서(戶曹典書)를 역임하였다가, 고...
-
대구광역시 북구 검단동에 건립된 고려 후기 문신 채귀하의 추모비 채귀하 추모비(蔡貴河 追慕碑)[고려국 호조전서 시정의공 다의당 채선생 추모비(高麗國 戶曹典書 諡貞義公 多義堂 蔡先生 追慕碑)]는 고려 후기 문신이자 학자였던 다의당(多義堂) 채귀하[?~?]의 충절을 기리고자 2017년에 인천채씨 문중에서 건립한 추모비이다. 원래는 1981년에 신도비를 건립하였는데, 신도비의 비문이 모...
-
대구광역시 북구 검단동에 건립된 고려 후기 문신 채귀하의 추모비 채귀하 추모비(蔡貴河 追慕碑)[고려국 호조전서 시정의공 다의당 채선생 추모비(高麗國 戶曹典書 諡貞義公 多義堂 蔡先生 追慕碑)]는 고려 후기 문신이자 학자였던 다의당(多義堂) 채귀하[?~?]의 충절을 기리고자 2017년에 인천채씨 문중에서 건립한 추모비이다. 원래는 1981년에 신도비를 건립하였는데, 신도비의 비문이 모...
-
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의진군 수성북면장을 지낸 문인 학자. 채몽연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정응(靜應), 호는 투암(投巖)이다. 고려 말에 호조전서를 지내다가 조선이 개국되자 절의를 지켜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한 채귀하(蔡貴河)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채면(蔡沔), 아버지는 채정국(蔡定國)이다. 부인은 죽산박씨(竹山朴氏)로, 박배(朴培)의 딸이고, 채무(蔡楙), 채...
-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출신 문인학자, 교육자. 채상겸의 성씨는 인천(仁川)에서 나왔으며 고려 동지사(同知事) 채선무(蔡先茂)가 시조이다. 자(字)는 중유(仲游)이며 호(號)는 우공당(友恭堂)이다. 호조전서(戶曹典書)를 역임한 채귀하(蔡貴河)는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으며 시호는 정의(貞義)이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소감(少監) 벼슬을 지낸 채영...
-
근대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 문인 학자. 채성원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사규(士奎), 호는 공산(公山)이다. 시조는 고려 중엽 동지추밀원사를 지낸 채선무(蔡先茂)이며, 중시조는 고려 말에 호조 전서를 지내다가 조선이 개국되자 절의를 지켜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한 채귀하(蔡貴河)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채영국(蔡榮國), 할아버지는 채범곤(蔡範坤), 부친은 채세동(蔡世東),...
-
고려후기부터 조선전기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서 활동한 문인 학자. 채영의 본관은 인천(仁川)으로, 시조는 채선무(蔡先茂)이다. 증조는 채윤신(蔡允臣), 조부는 채원길(蔡元吉), 부친은 채귀하(蔡貴河), 모친은 달성서씨(達成徐氏)로, 서진(徐晉)의 딸이다. 채기(蔡耆)와 채륜(蔡倫) 두 아들을 두었다....
-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능성구씨 사당. 표절사(表節祠)가 있는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은 능성구씨의 집성촌이다. 임진왜란 때 팔공산에서 창의한 구회신(具懷愼)이 종전 후 대구 무태리에 입향·정착하면서 8대조 문절공(文節公) 송은(松隱) 구홍(具鴻)을 제향하기 위하여 1600년(선조 33)에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