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 해안면
-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에 있는 자연마을. 강동마을은 봉무동의 자연마을이다. 현재 60여 호가 거주하고 있다. 경주최씨가 주성씨이다....
-
개청 100주년을 맞아 '대구의 뿌리 달성 꽃피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새로운 100년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대구광역시 달성군은 2014년에 개청 100주년을 맞이하여 '대구의 뿌리 달성 꽃피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새로운 100년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달성군은 1995년에 경상북도에서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었...
-
1930년대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추진된 도시계획과 지방행정구역의 재편. 1931년 대구광역시 동구에 도시계획이 추진되었다. 특히 ‘대(大)대구의 건설’을 목표로 한 도시계획이 추진되면서부터였다. 당시 새롭게 추진된 도시계획은 크게 하나는 대구 인근 지역을 대구에 편입하는 시구 개정 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대대구의 건설의 목표로 하는 사단 유치, 비행장 건설, 동촌 개발, 종방 유치...
-
유차달을 시조로 대구광역시 동구 방촌동에 살고 있는 문화유씨 세거지. 대구광역시 동구 방촌동의 고려시대 이름은 격양동(擊壤洞)이었다. 격양동은 풍요롭고 살기 좋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조선 중기에는 방촌천 좌우로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었다고 하여 유광촌이라 불렸다. 한편, 문화유씨(文化柳氏)들이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초례봉 아래 동내동에서 집성촌을 이뤄 살기 시작하면서, 유씨들이 사는...
-
일제 강점기에 달성군에서 활동한 친일 경제인. 서병주(徐炳柱)[1885~1956]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1885년 10월 6일에 태어났다. 1913년 대구부에 도로 용지를 기부하여 조선 총독부로부터 목배 1개를 받았다. 1921년 조선 총독부의 매일 신보사가 주최한 내지 관광단[일본 관광단]에 참가하였다. 1924년 조양 무진 주식회사, 1937년 경북 상공 주식회사(慶北商工...
-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에 위치한 자연마을. 위남마을은 봉무동의 자연마을이다. 현재 50여 호가 거주하고 있으며, 인천이씨가 주성이다....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검사동 출신 독립운동가. 유근성(柳根成)[1884~1945]은 경상북도 달성군 해안면 창사리[현,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에서 출생하였다. 다른 이름은 유성대(柳成大)이다. 유근성은 경상북도 달성군 해안면에서 흠치교[증산교]의 6인조에 입교하여 1924년경에 조선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조선을 독립시켜 흠치교 교주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계획에 참여하였다. 이에...
-
대구광역시 달성군 지역에서 수행되고 있는 갈등의 통합 및 조정, 희소한 자원의 권위적 배분과 관련되는 인간 활동의 총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항상 희소한 자원을 획득하고 배분하는 과정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개개인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가 평등하지 않은 데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이런 불평등과 갈등·대립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과정...
-
일제 강점기 달성군에서 일본인 가도민랑이 설립한 사회사업 단체. 조선부식농원(朝鮮扶植農園)은 농업을 통해 조선 농민의 자활과 독립을 꾀한다는 사회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
1910년 11월 대구광역시 동구 검사동에 사회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농원. 1910년 11월 30일 대구광역시 동구 검사동[당시 달성군 해안면 검사동]에 일본 오사카[大阪] 범애부식회(汎愛扶植會)의 창설자인 가지마[加島敏郞]가 주도하여 조선부식농원을 설립한 이래 1914년 6월 10일에 조선총독부로부터 재단법인 설립 허가를 받았다. 조선부식농원은 이사 1명, 평의원 10명, 고문...
-
일제 강점기 달성군 해안면에서 결성된 소작인 농민 운동 단체. 해안소작조합은 1923년 내지 1924년에 결성되어 1925년 지세 반환 운동과 지세 불납 운동을 벌이고 1925년 낙작인회 투쟁을 통해 농민 운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