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태
-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에 있는 갈봉산 마치나무와 그 주변에 얽힌 이야기. 「갈봉산 마치나무와 그 주변의 전설」은 2001년 국학자료원에서 펴낸 『한국구비문학』Ⅰ와 2009년 대구광역시에서 펴낸 『대구지명유래총람』에 수록되어 있다....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이훈을 추모하는 인천이씨 공도공파 문중 재실. 경모재(敬慕齋)[연경동(硏經洞)]는 인천이씨(仁川李氏) 공도공파(恭度公派) 24세손 이훈(李薰)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이훈은 인천이씨 무태(無怠)[현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인 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의 후손이다. 이주가 지금의 수성구 파동에서 무태로 이주한 후 후손들이...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이훈을 추모하는 인천이씨 공도공파 문중 재실. 경모재(敬慕齋)[연경동(硏經洞)]는 인천이씨(仁川李氏) 공도공파(恭度公派) 24세손 이훈(李薰)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이훈은 인천이씨 무태(無怠)[현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인 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의 후손이다. 이주가 지금의 수성구 파동에서 무태로 이주한 후 후손들이...
-
대구의 연경서원을 노래한 퇴계 이황의 한시에 차운하여 조선 전기 학자인 이주가 지은 한시. 「경차퇴계이선생화암운(敬次退溪李先生畫巖韻)」의 배경 지역인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 지역에 최초로 지어진 서원으로, 이황(李滉)[1501~1570]·정구(鄭逑)[1543~1620]·정경세(鄭經世)[1563~1633] 3인과 함께 별도로 향현사(鄕賢祠)를 세워 전경창(全慶昌)[1532~158...
-
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 시기 대구광역시 지역의 역사. 후삼국시대는 889년(진성여왕 3)의 이른바 ‘도적 봉기’에서부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후삼국시대 무렵 신라의 지방 지배 체제가 이미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고, 각지에서 도적이 그야말로 벌 떼처럼 일어났다고 한다. 이에 각지에서 자위적인 조직이 결성되었는데, 대구 지역에서도 여러 성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세...
-
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 현종 때 5도 양계 체계가 확립되면서 고려 전기 행정 구역은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다. 지방에는 지방관을 파견하는 주현(主縣),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는 속현(屬縣)으로 구분하였다. 주현으로는 경(京), 도호부(都護府), 목(牧) 등의 계수관(界首官) 지역과 현(縣)이 있었다. 주현의 관...
-
927년[태조 10]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일대에서 고려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 사이에 벌어진 전투. 공산전투는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영천 지방을 습격하고 신라의 수도인 경주를 핍박할 즈음에 위기를 느낀 신라의 경애왕이 고려의 왕건(王建)에게 구원을 요청한 데서 비롯된다. 태조 왕건은 곧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였다. 그러나 태조의 원군이 이르기도 전에 후백제군은 경주를 함...
-
대구광역시를 흐르는 국가하천 금호강을 따라 새로이 설정된 10경. 대구광역시에는 조선 전기 대구를 대표하는 문신 중 한 명인 서거정이 노래한 「대구십영」이 전해 온다. 「대구십영」 중 1경은 금호강 주변의 수려한 경치를 노래한 것이다. 뱃길을 따라 빼어난 풍광을 노래한 시와 그림도 전해진다....
-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일대에 있는 나팔고개, 왕산, 파군재 지명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 김광순, 『한국구비문학』(국학자료원, 2001)...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중건된 전통 가옥. 능성세가(綾城世家)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대를 이어 살던 능성구씨 집안의 종가 건물이다. 무태[서변동] 지역에 자리 잡은 능성구씨의 입향조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하다가 서변동에 정착한 계암(溪巖) 구회신(具懷愼)[1564~1634]이다. 구회신은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의를 지킨 두문...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중건된 전통 가옥. 능성세가(綾城世家)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대를 이어 살던 능성구씨 집안의 종가 건물이다. 무태[서변동] 지역에 자리 잡은 능성구씨의 입향조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하다가 서변동에 정착한 계암(溪巖) 구회신(具懷愼)[1564~1634]이다. 구회신은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의를 지킨 두문...
-
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동에 있는 치안 행정 기관. 강북경찰서(江北警察署) 관내는 경부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 국도 제5호선[일명 구안국도]이 통과하는 교통 요충지로 북부 지역의 관문이다. 또한 도농 복합 지역으로 남부 지역 농수산물 물류 유통의 중심지이자 주거 밀집 지역으로 치안 역량이 요청되는 지역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의 성리학과 성리학자 그리고 유적·유물. 대구광역시 동구는 시내의 중심지인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신암동에서 동쪽으로는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 안심지역을 포함하고, 북쪽으로는 팔공산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다. 이곳에는 1563년(명종 18)에 건립된 대구 최초의 서원인 연경서원(硏經書院)이 있었다. 그래서 대구광역시 동구는 대구 성리학의 출발점이자 산실이었다고 할 수...
-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에 있는 치안 행정기관. 북부경찰서(北部警察署)는 대구광역시 북구 관내 치안을 유지하고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개서하였다....
-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에 있는 치안 행정기관. 북부경찰서(北部警察署)는 대구광역시 북구 관내 치안을 유지하고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개서하였다....
-
1924년 서석태, 이종희 등이 1910년에 편찬된『대구 읍지』의 내용을 보완·간행하면서, 새로 구획된 달성군의 사례를 부록으로 추가한 읍지. 1914년 3월 1일의 행정 구역 개편 당시에 대구부(大邱府)는 시가지를 대구부에 속하게 하고, 그 외의 지역은 현풍군과 통합하여 달성군으로 개편하였다. 이것을 반영하여 1924년 서석태(徐錫台), 이종희(李宗熙) 등은 『대구 읍지(大邱邑誌...
-
대구광역시의 여러 종가에서 대대로 전하여 내려오는 내림 음식. 대구 지역 종가음식은 종가 구성원의 삶이 담겨 있는 고유한 식문화이다. 종가음식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식재료를 정성스럽게 손질하여 조리하는 향토음식의 보고이자 전통의 맛이 보존된 전통 음식이다....
-
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동변동(東邊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
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 형성된 성이 같은 사람이 모여 사는 마을. 조선 후기 친족 질서는 내외친이 망라되는 양계적(兩系的) 친족 질서에서 적장자(嫡長子) 중심의 부계적(父系的) 친족 질서로 변화되었다. 구체적으로 혼인 형태에서 유교적 요소의 강화, 적장자 중심의 남녀 차등 상속, 장자 단독 봉사(奉祀), 부계 혈연을 중심으로 한 문중(門中)의 결성과 동성마을의 형성 등으로 나타났다...
-
조선 전기 학자이며 의병장인 이주가 대구 출신 문신 전경창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 「만사」[이주] 저자 이주(李輈)[1556~1604]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경임(景任)이고, 호는 태암(苔巖)이다. 이주는 1556년(명종 11)에 대구부 수성현 파잠리(巴岑里)[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서 태어났고, 후에 무태(無怠)[현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로 옮겨 살았다....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말샘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말샘의 전설」은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말샘과 임진왜란 때 활약한 김덕령 장군과 관련되어 전하여 오는 이야기이다....
-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서변동 지역에 있는 능성구씨 세거지. 무태리(無怠里)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과 관련이 있는 지명이다. 왕건이 신라를 구원하기 위하여 경주로 갈 때 무태에서 군사들과 함께 유숙을 하였는데, 왕건이 경계하던 병사들에게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라[警軍曰無怠].”라고 한 말에서 유래되었다....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산봉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무태 조산봉」은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산봉(鳥山峰)과 무태(無怠) 땅에 살던 은씨(殷氏)와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이다....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무태조야동 주민들의 행정 복지 사무를 맡아 보는 행정기관. 무태조야동 행정복지센터는 법정동인 동변동, 서변동, 연경동, 조야동을 관할하는 행정기관이다....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구재서를 추모하기 위한 재실. 물소재(勿小齋)는 구재서(具在書)[1860~1932]를 추모하기 위하여 능성구씨(綾城具氏)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 문중에서 건립한 재실이다. 능성구씨 무태(無怠)[현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계암(溪巖) 구회신(具懷愼)[1564~1634]이며, 이후 후손들이 대를 이어 세거하였다....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구재서를 추모하기 위한 재실. 물소재(勿小齋)는 구재서(具在書)[1860~1932]를 추모하기 위하여 능성구씨(綾城具氏)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 문중에서 건립한 재실이다. 능성구씨 무태(無怠)[현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계암(溪巖) 구회신(具懷愼)[1564~1634]이며, 이후 후손들이 대를 이어 세거하였다....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서계서원(西溪書院)은 오천(烏川) 이문화(李文和)·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를 제향하는 서원으로 인천이씨(仁川李氏) 공도공파(恭度公派)의 대표 서원이다. 서계서원에는 조선 말 명필인 윤용구(尹用求)가 쓴 현판이 아직 남아 있다. 본래는 동재와 서재가 모두 있었으나 지금은 사우, 강당, 환성정(喚惺亭) 등으로 구성되어...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서계서원(西溪書院)은 오천(烏川) 이문화(李文和)·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를 제향하는 서원으로 인천이씨(仁川李氏) 공도공파(恭度公派)의 대표 서원이다. 서계서원에는 조선 말 명필인 윤용구(尹用求)가 쓴 현판이 아직 남아 있다. 본래는 동재와 서재가 모두 있었으나 지금은 사우, 강당, 환성정(喚惺亭) 등으로 구성되어...
-
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서변동(西邊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인천이씨 세거지. 인천이씨(仁川李氏)는 허씨(許氏)에서 갈린 분적종(分籍宗)으로 경원이씨(慶源李氏) 또는 인주이씨(仁州李氏)로도 불렸다. 이허기(李許奇)를 시조로 받들고 식읍으로 받았던 인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고려 중엽 이자의(李資義)[?~1095]와 이자겸(李資謙)[?~1126]부터 조선 초기 이징옥(李澄玉)[1399~145...
-
대구광역시 북구 검단동에 있는 시내버스 운송회사. 성보교통의 전신은 1979년 11월 시내버스 운송 면허를 취득한 한영교통이며, 차고지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었다. 1996년 12월 버스회사 비리 폭로가 뉴스를 타면서 1997년 회사명을 세림교통으로 변경하였고, 2001년에 다시 성보교통으로 개칭하였다....
-
대구광역시 북구 검단동에 있는 시내버스 운송회사. 성보교통의 전신은 1979년 11월 시내버스 운송 면허를 취득한 한영교통이며, 차고지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었다. 1996년 12월 버스회사 비리 폭로가 뉴스를 타면서 1997년 회사명을 세림교통으로 변경하였고, 2001년에 다시 성보교통으로 개칭하였다....
-
대구광역시에서 여러 대에 걸쳐 살아오고 있는 성씨. 한 지역에 세거하고 있는 성씨는 다양하지만, 조선시대에 주(州)·군(郡)·현(縣)으로 구별된 행정지역에 세거한 성씨는 향안(鄕案)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일정한 지역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향교의 운영에 인원과 재정 등을 부담하고 있다. 또한 서원·사당·서당·정자 등 문중 단위의 유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읍지(邑誌) 등의...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고려 후기 충신 구홍과 조선 후기 의병장 구회신을 기리는 재실. 송계당(松溪堂)은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재실이다. 고려 후기의 충신인 두문동(杜門洞) 송은(松隱) 구홍(具鴻)과 조선 후기 임진왜란 당시 대구에서 의병을 일으킨 8대손 계암(溪巖) 구회신(具懷愼)[1564~1634]의 절개와 위업을 기리고자 1659년(효종 10)에 세운 후손들이...
-
1591년에 조선 전기 학자이며 의병장인 이주가 손처눌, 유요신과 함께 대구의 화암을 유람하며 지은 한시. 「신묘맹추 여손기도 유성유 유화암(辛卯孟秋與孫幾道柳聖兪遊畫巖)」의 저자 이주(李輈)[1556~1604]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경임(景任), 호는 태암(苔巖)이다. 이주는 1556년(명종 11)에 대구부 수성현 파잠리(巴岑里)[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서 태어났고...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이문성을 추모하는 재실. 심수재(心輸齋)는 인천이씨(仁川李氏) 무태(無怠)[현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인 태암(苔巖) 이주(李輈)의 아버지 소재(疎齋) 이문성(李文星)[1531~1571]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이문성을 추모하는 재실. 심수재(心輸齋)는 인천이씨(仁川李氏) 무태(無怠)[현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인 태암(苔巖) 이주(李輈)의 아버지 소재(疎齋) 이문성(李文星)[1531~1571]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었던 조선 전기에 건립된 사액서원이자 대구지역 최초 서원. 연경서원은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1563~1633] 3인과 함께 별도로 향현사(鄕賢祠)를 세워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1532~1585]과 매암(梅巖) 이숙량(李淑樑)[1519~1592]을 제향했던...
-
927년 공산전투에서 패한 왕건과 관련한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에 있는 왕선고개의 의미.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에 있는 왕선고개는 고려태조 왕건(王建)[877~943]의 후삼국 통일과 관련이 깊은 곳이다. 왕건이 927년 공산전투(公山戰鬪)에서 패하여 도주하다가 왕선고개에 이르러 살았음을 확인하고 재기의 결의를 다졌고, 이것이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
-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후삼국시대 일어난 공산전투와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든 길. 대구광역시 동구청은 927년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 사이에 있었던 공산전투(公山戰鬪)[동수전투(桐藪戰鬪)]와 관련된 설화, 지명 등을 바탕으로 하여 조성한 친환경 탐방로인 팔공산 왕건길을 조성했다....
-
927년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일대에서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 사이에 벌어졌던 큰 전투. 후삼국 시기 고려와 신라는 친밀한 관계를 맺고 후백제를 공동의 적으로 삼아 군사행동을 함께 하였다. 이러한 정세 하에서 대구[대구광역시] 지역을 무대로 한 공산전투가 벌어졌다. 공산전투는 927년(태조 10) 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일대에서 후백제 견훤과 태조 왕건 사이에 벌어졌...
-
고려시대 태조 왕건으로 인해 생겨난 대구광역시 동구 지명들과 문학작품. 927년(태조 9) 팔공산 일대에서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군대와 후백제 견훤(甄萱)의 군대는 큰 전투를 벌였다. 바로 공산전투이다. 고려군은 김락(金樂)과 신숭겸(申崇謙) 장군을 비롯하여 수많은 군사가 죽고, 왕건은 간신히 죽음에서 벗어났다.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와 신숭겸 장군이 전사한 지묘동 일대에는 공산...
-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망우공원 내 기념비가 있는 이경희가 1923년 일제의 주요인물과 식민지 지배기구를 폭파하기 위해 벌인 사건. 의열단이 러시아 공산당으로부터 자금을 공급받아 일제의 주요 인물의 암살과 건물 파괴를 단행하는 방법으로 조선의 독립을 꾀하는 과정에서 일명 ‘황옥 사건’이 발생하였다. 제2차 암살파괴계획이라고도 한다. 황옥사건에 관련된 이경희[1880~1949]는 무...
-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이석규(李錫奎)[1816~1892]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치옥(穉玉), 호는 금서재(琴書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시채(李時采)이고, 할아버지는 이학섭(李學燮)이다. 아버지는 이기각(李基珏)이고, 어머니는 경주김씨(慶州金氏)이다. 부인은 김해김씨(金海金氏)이며, 아들은 이우춘(李遇春)·이해상(李海祥)이다. 형은 이석구(李錫龜)이고, 동생은...
-
조선 후기 대구에서 활동한 학자이자 의병장. 이주(李輈)[1556~1604]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경임(景任), 호는 태암(苔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희증(李希曾)이고, 할아버지는 이고(李翶)이다. 아버지는 이문성(李文星)이고, 어머니는 창원황씨(昌原黃氏)이다. 부인은 영양최씨(英陽崔氏)이며, 아들은 이승휘(李承輝)·이정휘(李挺輝)·이동휘(李東輝)이다....
-
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일대에서 공산의진에 참여한 의병장. 이주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경임(景任), 호는 태암(苔巖)이다. 태종 때 대제학과 좌참찬을 지낸 오천(烏川) 이문화(李文和)의 8대손으로, 아버지는 소재(疏齋) 이문성(李文星), 어머니는 황씨(黃氏)이다....
-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이춘섭(李春燮)[1737~1815]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자정(子正), 호는 경소재(景蘇齋) 또는 천서와(川西窩)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영화(李英華)이고, 할아버지는 만오당(晩悟堂) 이인제(李仁濟)이다. 아버지는 이양채(李亮采)[1714~1796]이며, 어머니는 박서기(朴瑞麒)의 딸 울산박씨(蔚山朴氏)이다. 부인은 박주한(朴冑漢)의 딸 밀양...
-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이화상(李華祥)[1842~1915]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재중(載重), 호는 백운정(白雲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학섭(李學燮)이고, 할아버지는 이기각(李基珏)이다. 아버지는 이석귀(李錫龜)이고, 어머니는 서진호(徐鎭浩)의 딸 달성서씨(達城徐氏)이다. 형은 이의상(李宜祥)이고, 동생은 이태상(李泰祥)이다....
-
이허기를 시조로 하고 이말흥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의 세거 성씨. 인천이씨(仁川李氏)의 시조는 이허기(李許奇)이다. 이허기는 본래 김해허씨(金海許氏)였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14년(755년) 사신으로 당나라에 파견되었는데, 756년 안록산의 난 때 촉으로 피난하는 당 현종(玄宗)을 호종(扈從)하였다. 757년 난이 평정되어 도성으로 돌아온 현종이 허기에게 상으로 서책과 함께...
-
옛날부터 대구광역시에 전하여오는 공동체의 내력이나 자연물의 유래, 이상한 체험 등의 이야기. 설화(說話)는 신화, 전설, 민담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설(傳說)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전승자가 증거물을 근거로 진실되다고 믿고 실제로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야기이다. 둘째, “조선조 숙종 시절에 대구 대명동에…”와 같이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을 제시하여 진실성을...
-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문관. 전응창(全應昌)의 본관은 경산(慶山)이며, 자는 성지(成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순손(全順孫)이고, 할아버지는 전복견(全復堅)이다. 아버지는 장사랑 전순(全珣)이고, 어머니는 송식(宋軾)의 딸 김해송씨(金海宋氏)이다. 부인은 선산김씨(善山金氏)이며, 아들은 전길(全佶)·전엄(全儼)·전한(全僴)·전윤용(全潤龍)·전종용(全從龍)이다. 동생은 사헌부지평...
-
조선 전기 달성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옥산(玉山). 자는 성지(成之), 호는 세심정(洗心亭). 증조할아버지는 충순위(忠順衛) 전순손(全順孫)이고, 증조할머니는 장양공(莊襄公) 홍사석(洪師錫)의 딸 정부인(貞夫人) 남양 홍씨(南陽洪氏)이다. 할아버지는 여도 만호(呂島萬戶)를 지낸 전복견(全復堅)이며, 할머니는 생원 장자원(蔣自元)의 딸 숙부인 아산 장씨(牙山蔣氏)이다. 아버...
-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전한(全僩)[1570~?]의 본관은 옥산(玉山)이며, 자는 의보(毅甫), 호는 호암(湖菴)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복견(全復堅)이고, 할아버지는 전순(全珣)이다. 아버지는 도사 전응창(全應昌)이고, 어머니는 선산김씨(善山金氏)이다....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산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조산에 얽힌 전설」은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산(鳥山)[혹은 造山]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지명 유래담이자 파명당(破明堂) 설화이다....
-
대구광역시에 현존하는 조선시대부터 집성촌을 이루어 온 문중의 큰집. 종가(宗家)의 사전적 의미는 “한 문중에서 맏이로만 이어 온 큰집”이지만, 종가는 전체 부계친족(父系親族) 집단의 맏이 집안을 가리키는 대종가(大宗家)와 대종가에서 갈라져 나와 새로운 종가를 이룬 소종가(小宗家)가 있다. 『예기(禮記)』「대전(大傳)」 편에서 유래한 종법(宗法)에 따르면 부계친족의 맏이는 대대로 영...
-
대구광역시의 지명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지명 설화(地名 說話)에는 지명의 유래를 설명하는 지명유래 전설과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지명 전설이 있다. 지명유래 전설은 자연이나 사물이 어떻게 생성되었는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지리상의 특징, 자연환경, 산이나 바위의 모양 등 소박한 지식으로 설명한다. 역사적 지명 전설은 어떤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지명을 설...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이자 의병장 구회신을 추모하는 재실. 창포재(菖蒲齋)는 능성구씨(綾城具氏) 무태(無怠)[현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 구회신(具懷愼)[1564~1634]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구회신의 자는 경중(敬中)이고, 호는 계암(溪巖)이다. 아버지는 종사랑 구대성(具大成)이고, 어머니는 옥천황씨(玉泉黃氏)이다....
-
현대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건립한 이억상을 추모하는 재실. 척첨재(陟瞻齋)는 조선 후기의 학자 수헌(守軒) 이억상(李億祥)[1835~1905]을 기리기 위하여 인천이씨(仁川李氏) 태암공파 수헌공 종중에서 이억상의 묘소 아래에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대구광역시 전역과 경상북도 남부 지역을 관할하는 천주교 교구. 천주교 대구대교구(天主敎大邱大敎區)[라틴어로 Archidioecesis Taeguensis]는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 남부 지역을 관할하는 천주교의 교구이다. 2022년 현재 교구장 주교는 조환길[타대오] 대주교이다. 대구대교구는 대구광역시 전역과 경상북도 경산시, 경주시, 구미시, 김천시,...
-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속하는 법정동. 파동(巴洞)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법정동 26개 중 하나이다. 중화양씨(中和楊氏)와 하양허씨(河陽許氏)가 이룬 마을이다. 대구 지역 살기 좋은 곳으로 ‘1파 2무’라는 얘기가 전하여 온다. 첫째가 파동, 둘째가 무태[서변동]라는 의미다. 그만큼 예로부터 살기 좋은 터전이었다....
-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주민들의 행정 복지 사무를 맡아 보는 행정기관. 대구광역시 수성구청에 속하는 파동 행정복지센터는 법정동인 파동을 관할하는 행정기관이다....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어난 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에서 결성되어 조선을 지킨 의병들. 1598년(선조 31)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죽으면서 1592년(선조 25)부터 시작된 7년 동안 한반도를 고통과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임진왜란(壬辰倭亂)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는 매우 참혹하였다. 기근·전염병·포로 등으로 인구가 급속히 줄었고...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개항기 정자. 환성정(喚惺亭)은 조선 전기 유학자 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가 건립하였다. 이주는 15세에 수성구 파동에서 무태(無怠) 서변동으로 이사하였다. 이주는 환성정에서 성리학을 연구하였으며 특히 경(敬)을 강조하였다. 이주는 상채(上蔡) 사량좌(謝良佐)가 제시한 경의 방법인 ‘상성성(常惺惺)’을 중시하고 있는데, 상성성은 환...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이순희를 추모하는 재실. 회연재(晦淵齋)는 회연(晦淵) 이순희(李淳熙)[1908~1972]가 만년에 서재로 건립하였다. ‘회연정사(晦淵精舍)’ 또는 ‘도곡산방(道谷山房)’이라고도 한다. 이순희는 1930년에 일본 도시샤고등상업학교[同志社高等商業學校]에 유학하였으나 중퇴하였다. 1946년에 조선방직주식회사 대구메리야스공장 공장장이 되었으며, 1947년에...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이순희를 추모하는 재실. 회연재(晦淵齋)는 회연(晦淵) 이순희(李淳熙)[1908~1972]가 만년에 서재로 건립하였다. ‘회연정사(晦淵精舍)’ 또는 ‘도곡산방(道谷山房)’이라고도 한다. 이순희는 1930년에 일본 도시샤고등상업학교[同志社高等商業學校]에 유학하였으나 중퇴하였다. 1946년에 조선방직주식회사 대구메리야스공장 공장장이 되었으며, 1947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