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일제 강점기 중 일 전쟁 이후 달성군에서 조직된 관변 군사 후원 단체. 7군 연맹(七郡聯盟)은 일제가 1937년 중 일 전쟁 이후 전쟁 동원 정책을 펼치면서, 달성군 등 7개 부, 군에 군사 후원을 위해 만든 관변 단체이다....
-
일제 강점기 대구 달성 지역에 설치 되었던 소방 조직체. 1939년 7월 3일 「경방단 규칙」을 제정·공포하고 소방조와 수방단을 해체하여 경방단(警防團)으로 통합하였다....
-
일제 강점기에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활동한 친일 관료. 아버지는 김종윤(金鍾潤)이며, 부인은 한정순이다.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다....
-
조선 후기 달성에 정착한 사성 김해김씨 시조. 본관은 김해(金海)[사성(賜姓)]. 자는 선지(善之), 호는 모하당(慕夏堂). 일본 이름은 사야가(沙也可)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사옥(沙鋈), 할아버지는 사옥국(沙沃國), 아버지는 사익(沙益)이다. 부인은 목사(牧使)를 지낸 장춘점(張春點)의 딸 인동 장씨(仁同張氏)이다....
-
1910년대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 안일암에서 독립운동을 위해 비밀리에 조직된 달성친목회 결사 운동. 달성친목회는 1908년 대구에서 계몽운동 단체로 결성되었다가 한 일병합으로 활동이 중지된 것을 1913년에 독립운동을 위해 비밀리에 재건된 비밀결사였다. 대한광복회[대한광복단]와 함께 1910년대 국내 대표적 비밀결사이다....
-
1938년 6월 총독부의 종용에 따라 총후 봉사 활동을 내세우며 조직된 친일 전시 동원 선전 조직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달성군 연맹. 일본은 중 일 전쟁 이후 전쟁 동원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에 동원과 협력을 능동적으로 강제할 조직의 필요성에 따라 1938년 6월 중순경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을 조직하였다. 이 운동의 추진 목적은 “황국이 영원히 융창할 기초를 공고히...
-
일제 강점기 달성군에 설립된 보통학교. 일제의 교육 방침은 1911년에 공포된 「조선 교육령」에 잘 나타나 있다. 핵심 내용은 이른바 충량(忠良)한 제국 신민(臣民)과 그들의 부림을 잘 받는 실용적인 근로인·하급관리·사무원 양성하는 것이다. 또 보통학교는 "보통의 지식·기능을 부여하고 특히 국민된 성격을 함양하며, 국어[日語]를 보급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실...
-
개항기 대구에 신설된 군대 조직. 대구헌병분대(大邱憲兵分隊)는 1905년 9월 러일전쟁을 끝내기 위하여 러·일 간에 맺은 강화조약인 포츠머스조약을 계기로 편성된 주둔군 헌병대에서 비롯되었다. 주둔군 헌병대는 대구를 비롯한 서울·부산·인천·평양 등 12개 지역에 헌병대 분대를 설치하고, 그 밑에 56개의 헌병분견소를 두었다. 1906년 3월 주둔군 헌병대는 통달(通達) ‘제한 주차...
-
대한민국 길림 주재 군정사의 독립운동 자금 마련 운동. 일제의 한 일 병합 이후 독립 전쟁론에 입각한 독립군 기지 건설 운동이 중국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이를 위한 독립운동 자금을 국내에서 조달하는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대한민국 길림 주재 군정사는 1918년 4월 무렵 김영순이 중국 길림성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유동열(柳東說)을 만나 조선 독립을 위해 청년을...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서예가 이병선의 추모 재실. 만송정(晩松亭)은 이병선(李柄選)[1887~1947]의 추모 재실이다. 이병선의 자는 덕재(德在), 호는 창주(蒼洲), 본관은 인천이다. 이병선은 용모가 단정하고 가업을 이어 일찍이 지역에서 이름이 났다. 특히 글씨에 뛰어나 한·중·일 삼국에서 특선을 할 정도였다. 자손들이 이병선을 기리기 위하여 이병선의 묘소 아래에 만송...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서예가 이병선의 추모 재실. 만송정(晩松亭)은 이병선(李柄選)[1887~1947]의 추모 재실이다. 이병선의 자는 덕재(德在), 호는 창주(蒼洲), 본관은 인천이다. 이병선은 용모가 단정하고 가업을 이어 일찍이 지역에서 이름이 났다. 특히 글씨에 뛰어나 한·중·일 삼국에서 특선을 할 정도였다. 자손들이 이병선을 기리기 위하여 이병선의 묘소 아래에 만송...
-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계몽 운동가·관료. 박해령(朴海齡)[1857∼1920]은 경상북도 달성군 하빈면에서 태어났다. 1907년 2월 대구 광문사(大邱廣文社)[달성 광문사] 문회가 학교 설립을 통한 교육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기 위해 명칭을 대동 광문회(大東廣文會)로 바꿀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이 자리에서 국채 보상 운동이 시작되었다. 대동 광문회 회장을 비롯...
-
일제 강점기 달성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서병룡(徐丙龍)[?~?]은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에서 태어나 20세까지 사숙에서 한문을 배웠고, 그 후 달성 학교에 2년간 수학하였다. 재산은 동산·부동산을 합해 시가 2,000원 정도였다. 1908년부터 대구 농공 은행(大邱農工銀行)의 행원으로 근무하면서, 1909년 달성 친목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때 서상일(徐相日)·윤상태(尹相泰...
-
일제 강점기에 달성군에서 활동한 친일 경제인. 서병화(徐炳和)[1883~?]의 본관은 달성(達城), 일본식 이름은 달원장종(達原莊種)이다. 1883년 9월 대구부 동성정[현 대구광역시 중구 동성로]에서 태어났다. 1908년 대한 제국탁지부 임시 재원 조사국 양지과 대구 출장소 기수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한 일 병합 직후인 1910년 조선 총독부 임시 토지 조사국 대구 출장소...
-
대구 지역에서 활동하는 완전주의적 입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개신교 교파. 성결교는 그리스도와 그 사도들의 전통에서 시작되었다. 사도들의 전도와 선교는 요한 웨슬리의 성결 운동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성결교의 완전주의적 입장이란 내적인 죄와 외적인 죄에서 모두 자유로울 수 있어야 완전하게 성결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회심을 중요하게 여기며, 근본주의적 신앙 형태를 지닌다....
-
일제 강점기 달성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이견(利見), 호는 백산(白山). 역동(易東) 우탁(禹卓)의 21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우홍철(禹弘哲), 할아버지는 우병도(禹秉圖)이다. 아버지는 우방희(禹邦熙), 어머니는 진양 강씨 강치용(姜致龍)의 딸이다. 아버지는 우방희(禹邦熙)는 무과에 합격하여 사과(司果)를 지냈다. 우리견(禹利見)·우경옥(禹景玉)·김상...
-
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하였던 시기 달성군의 역사. 1910년(순종 4) 일제의 강제 병합으로 통감부가 총독부로 바뀌었다. 조선 총독부는 총무·내무·탁지·농상공의 행정 부처와 사법부를 두고, 지방은 도(道)·부(府)·군(郡)·면(面)의 행정 체계를 갖추었으며, 총독은 일본 천황에 직속되어 총리대신을 거쳐 천황에 상주할 수 있는 권...
-
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친일 경제인. 진희규(秦喜葵)[1878~1959]는 한 일 병합 이후인 1911년부터 1920년까지 경상북도 참사(參事)로 복무하였다. 그 사이 1915년 10월 일본 적십자사 특별 사원으로 활동하였다. 1915년 10월 대구부에 자신의 토지를 도로 부지로 기부하여 목배 1개를 받았다. 1918년 대구 은행에 자본을 투자하고 감사역이 되었다. 1919년...
-
임진왜란 때의 귀화 장군인 김충선에 대한 한 일 양국 간의 인식 변화와 현대적 의미. 김충선(金忠善)[1571~1642]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일본군 장수의 선봉이 되었다가 조선에 귀화하여 일본 공격에 앞장을 선 특이한 경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항왜(降倭)[조선에 투항한 왜군]로서 공을 세워, 김해 김씨(金海金氏)와 충선(忠善)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아 사성 김해김...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 현풍 초등학교 내에 있는 학생들에게 충성 맹세를 강요한 일제 강점기의 비. 황국 신민 서사비는 1930년대 후반 중 일 전쟁이 시작되면서 민족 말살 정책의 하나로 내선 일체·황국 신민화 등을 강요하면서 일본 제국주의가 암송을 강요한 황국 신민 서사를 새긴 비이다. 황국 신민 서사는 조선 총독부 학무국이 교학(敎學) 진작(振作)과 국민 정신 함양을 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