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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305
한자 壽昌社
이칭/별칭 수창회사,수창상회,대구 수창사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898년연표보기 - 수창사 설립
개칭 시기/일시 1904년연표보기 - 수창사에서 수창회사로 개칭
개칭 시기/일시 1911년연표보기 - 수창회사에서 수창상회로 개칭
해체 시기/일시 1935년연표보기 - 수창사 청산
성격 회사

[정의]

개항기 대구광역시에서 상인 자본가들이 설립한 업체.

[개설]

수창사(壽昌社)는 1898년 대구에서 설립되어 1935년 무렵까지 영업 활동을 펼쳤다. 수창사낙동강 뱃길을 이용하여 어염미두(漁鹽米豆) 무역을 펼치던 대구의 상인 자본가층이 결성한 근대 초기 형태의 상회사(商會社)로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사무소로도 기능하였다. 수창사의 사원이 되기 위한 조건은 1,000냥 이상의 투자금을 낼 수 있어야 하였다. 수창사 사원의 규모는 매년 차이가 있어 최저 12명에서 최고 26명까지였다. 설립 당시 수창사 사원의 명단을 보면 가장 연장자인 이종표를 비롯하여 서상돈, 최극창, 정재학, 최대림, 이일우, 정계옥, 서상춘, 이종면 등이었다.

[설립 목적]

1898년 설립된 수창사는 대구의 상인 자본가들이 사업에 필요한 대금 업무와 중개 및 창고업을 도모하기 위하여 만든 근대적 상회사였다.

[변천]

수창사의 명칭은 여러 차례 변경되었다. 1898년 수창사로 설립된 이래 1904년 수창사에서 수창회사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1911년에는 수창회사에서 수창상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35년 청산할 때에는 수창사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수창사는 자본금을 출자한 주주들이 수창사의 사원이었고 무역을 통하여 이윤추구를 도모하였던 근대적 기업의 형태를 갖춘 민간 상업회사였다. 수창사 사원들은 각자 자신의 사업체를 운영하였고, 수창사의 업무는 사원들의 사업에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대금 업무와 중개업 및 창고업에 국한되었다. 수창사는 1906년 대구광문사가 설립한 대구민의소[인민대의소]의 사무소로도 기능하였다. 국채보상운동이 벌어졌을 때는 수창사 사원 중 5명이 대구단연상채회에 가입하였고 수창사 안에는 국채보상운동의 성금을 받는 수전사무소가 설치되었다. 수창사는 1904년 경부선 개통 이전부터 이미 경영난을 겪고 있었고, 대구역이 영업을 시작하면서 점차 약화되어 1935년 청산되었다.

[현황]

수창사 관련 자료로는 ‘수창상회사 규칙’[1898], 수창사 회원 명부인 ‘수창사 좌목’, 수창사의 전반적 운영 사항을 담은 ‘수창상회사 도록’, 1904년부터 1909년까지 월별 수입과 지출을 기록한 ‘수창회사 대장’, 1910년부터 1911년까지 2년간 일별 수입 지출 상황과 사원별 수익과 자본금을 기록한 ‘수창회사 일기’, ‘자본금 및 수입 지출부’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수창사 사원의 상당수가 국채보상운동에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수창사 사원의 인적 네트워크는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데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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