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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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八達軒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본욱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768년 7월 - 팔달헌 편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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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재지 | 팔달헌 -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99[포정동 21] |
성격 | 동헌(東軒) |
[정의]
조선 후기에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에 있던 대구부 관아 동헌의 이름.
[개설]
팔달헌(八達軒)은 대구부 관아 동헌(東軒)의 이름이다. 1768년(영조 44) 7월에 나라에 경사가 있어 여러 고을의 수령이 대구부 객관(客館)에 모여 조정에 하례의 글을 올렸다. 이때 관찰사 이은(李溵)[1722~1781]이 동헌에 편액이 없는 것을 보고 통판(通判)[대구판관] 김로(金魯)에게 이름을 짓게 하였다. 김로는 팔공산(八公山)과 달성(達城)의 첫 글자를 합하여 ‘팔달(八達)’로 이름을 짓고 편액(扁額)하였다. 경상도관찰사는 영남의 71고을을 다스리는데 인정(仁政)이 모두 경상감영을 통하여 나온다는 의미이다. ‘팔달’의 의미는 성리학자 주자(朱子)가 “소요부(邵堯夫)[邵雍]는 공중에 있는 누각과 같이 사통팔달(四通八達)하였다”라고 한 말에서 취한 것이다. 관찰사 이은이 지은 기문이 전한다.
[위치]
팔달헌은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에 있었다.
[현황]
팔달헌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
팔달헌은 경상도관찰사의 임무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