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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가 기한오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689
한자 道峯山歌寄韓五相
이칭/별칭 「도봉산가를 지어 한오상에게 주다」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구본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89년 - 「도봉산가 기한오상」 저자 이민구 출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651년연표보기 - 「도봉산가 기한오상」 창작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70년 - 「도봉산가 기한오상」 저자 이민구 사망
배경 지역 도봉산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지도보기
성격 한시
작가 이민구

[정의]

1651년 이민구가 도봉산가를 지어서 한오상에게 준 칠언 배율의 한시.

[개설]

「도봉산가 기한오상(道峯山歌寄韓五相)」은 1651년(효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동주(東洲) 이민구(李敏求)[1589~1670]가 ‘도봉산가’를 지어서 당시에 이름난 효자였던 한오상(韓五相)[1606~1672]에게 주었던 한시이다. 「도봉산가 기한오상」이민구의 시문집 『동주집(東州集)』 권17에 수록되어 있다.

이민구는 자가 자시(子時), 호는 동주·관해(觀海), 본관은 전주(全州)로, 이조 판서 이수광(李睟光)[1563~1628]의 아들이다. 1612년 증광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수찬으로 등용되었으며, 1623년에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도원수 장만(張晩)[1566~1629]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조 참판, 대사간, 강원도 관찰사 등의 벼슬을 지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도 검찰 부사(江都檢察副使)가 되어 왕을 강화에 모시기 위해 배편을 준비하였으나 적군의 진격이 빨라 어가의 길이 막히자 왕은 부득이하게 남한산성으로 옮겼다. 난이 끝난 후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다는 죄로 영흥(永興)과 아산(牙山) 등으로 유배를 떠났다. 1649년에 직첩이 환급되었으나 대간들의 지속적인 반대 때문에 서용되지 못하였다. 「도봉산가 기한오상」을 지은 1651년에는 비록 유배 생활을 끝내기는 하였지만 다시 벼슬에 나아가지 못한 채 한가로이 머물러 있던 시기이다.

[구성]

「도봉산가 기한오상」은 24구로 된 칠언 배율로 1~4구는 도봉산의 지정학적 특징과 아름다움 등을, 5~8구는 도봉 서원의 성대함과 사적(史的) 의의를, 9~12구는 고도(古道)의 쇠퇴에 대한 개탄을, 13~20구는 쇠퇴한 도(道)의 복구 의지를, 21~24구는 한오상을 만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도봉산의 웅장함을 노래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처음 네 구절과 마지막 네 구절에서는 도봉산의 아름다움 및 그와 관련한 감회를 읊고 있으며, 그 사이에 도봉 서원의 성대함과 고도의 쇠퇴 및 회복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내용]

경성동북도봉산(京城東北道峯山)[경성(京城)의 동북쪽 도봉산은]

산하일학계류잔(山下一壑溪流潺)[산 아래 온 골짜기로 개울물이 졸졸 흐르네]

계류요요영곡만(溪流繚繞靈谷彎)[개울물 빙빙 돌아 흘러 계곡을 신령스럽게 하고]

전림촉석명결환(轉林觸石鳴玦環)[숲을 감돌아 돌에 부딪쳐 패옥 소리처럼 울리네]

중유유궁백일한(中有儒宮白日閒)[중간에 서원(書院)이 있어 대낮은 한가로운데]

춘추조두모혈은(春秋俎豆毛血殷)[봄가을로 제향(祭享)하는 희생(犧牲)이 성대하다네]

경앙백대현사관(景仰百代賢士關)[백대에 우러르는 현사(賢士)가 봉안된 곳이라]

피미지자빙설안(彼美之子氷雪顏)[저 아름다운 선비의 얼굴은 얼음처럼 맑다네]

독서공고어기간(讀書攻苦於其間)[그 사이에서 글 읽으며 학업을 닦으니]

장부입지계술산(丈夫立志繼述刪)[장부의 세운 뜻은 선현(先賢)의 뜻을 잇네]

기위청자추조반(豈爲靑紫趨朝班)[어찌하면 고관(高官)이 되어 조정에 나아갈까]

석재고도추진관(惜哉古道墜榛菅)[애석하구나. 고도(古道)는 진관(榛菅)에 떨어졌네]

전예극자방병간(翦刈棘茨方秉蕳)[가시를 자르고 이제 막 산란(山蘭)을 잡았는데]

역추작자치험간(力追作者治險艱)[힘을 다해 지은이를 따라 험란함을 다스리네]

욕여탁세서간완(欲與濁世鋤姦頑)[혼탁한 세상에 간악함을 없애려고]

수만고반원기환(手挽誥盤元氣還)[손으로 고반(誥盤)을 당겨 원기를 되돌리네]

등화영야소향반(燈火永夜燒香斑)[등잔불은 긴 밤에 향반(香斑)을 태우니]

분음과극심소간(分陰過隙心所慳)[틈새를 지나는 시간을 나누어 마음을 아끼네]

남신녀음격진환(男呻女吟隔塵寰)[남녀가 신음하는 어지러운 세상을 사이에 두고]

군긍설설래궤환(君肯屑屑來闠闤)[그대는 기꺼이 부지런히 거리로 나오게]

방춘초생시조관(芳春草生時鳥관(口+官))[봄이 되어 풀이 돋아 때때로 새 울고]

대주불견아체산(對酒不見我涕潸)[술을 마주해도 볼 수 없으니 내 눈물 흐르네]

고표미허속인반(高標未許俗人攀)[높은 깃발은 속인(俗人)이 오르는 걸 허락지 않아]

창취돌올탱운환(蒼翠突兀撑雲鬟)[푸르고 우뚝 솟아 구름 같은 머리를 떠받치네]

[특징]

제1구의 ‘산(山)’과 짝수 구절의 ‘잔(潺), 환(環), 은(殷), 안(顏), 산(刪), 관(菅), 간(艱), 환(還), 간(慳), 환(闤), 산(潸), 환(鬟)’을 운자로 썼다. 평기식(平起式)으로서 평성 산운(刪韻)으로 압운하였다.

[의의와 평가]

「도봉산가 기한오상」도봉산을 두고 읊은 시이지만 도봉산의 풍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도봉산도봉 서원을 중심으로 도맥(道脈)에 대한 조감과 고도(古道)의 회복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목처럼 도봉산을 노래한 것이고, 이를 한오상에게 준 것이기는 하지만, 도봉 서원과 유도(儒道)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도학적 시맥을 잇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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