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 음성 지역에서 활동했다고 전하는 서예가. 자는 지단(知端), 별명은 구(玖). 『삼국사기』권 48 열전 김생조에 부모가 두드러지지 않아 가계를 알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원통산 아래에서 오로지 글씨에만 정진하였다는 전설과 함께 “낙엽에 먹물로 글씨를 썼는데 그 낙엽이 계곡으로 모여 계곡물이 검어졌다”는 얘기가 전한다.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는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행해지는 서낭신에 대한 제사. 우리나라의 마을은 배산임수를 중심으로 하며, 산을 등지고 남쪽으로 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서낭신을 모시는 서낭당이 있으며 그 옆에 장승이나 솟대가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서낭신은 토지 수호신이며, 마을의 경계 또는 입구를 지켜 주는 신이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마을의 방액(防厄), 농사...
충청북도 음성 지역에 거주하거나 연고가 있는 동일 혈연 집단. 성씨에서 성(性)은 혈연관계를 나타내며 씨(氏)는 지역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성에는 관(貫)이 있는데 적·본관·관·관향이라고도 한다. 음성 지역에는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 새로운 성씨를 가진 씨족이 지속적으로 이주하여 와서 살았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토성(土姓)으로 박(朴)·채(蔡)의 두 성이...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음성군의 역사. 조선 초기 음성 지방은 고려의 지방제도와 같이 충주목에 속한 4속현(영춘·제천·음성·연풍)의 하나였다. 음성현은 1413년(태종 13)의 지방제도 개편 때 현감을 두었으나 규모가 매우 작아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충주 제천에 이르기까지 7리, 서쪽으로 충...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기지(耆之), 호는 나재(懶齋) 또는 청허자(淸虛子). 아버지는 부사를 지냈던 채신보(蔡申葆)이며 할아버지는 사예(司藝) 채윤(蔡倫)이다. 채수는 1468년(세조 14)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1469년에 추장문과(秋場文科)에 장원하여 홍문관부수찬(弘文館副修撰)에 제수되었고,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어 『세조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