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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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삼봉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자린고비 조륵의 인물 이야기. 자린고비는 예부터 ‘구두쇠’, ‘지독하게 인색한 사람’, ‘지독하게 절약하는 사람’ 등의 뜻으로 통한다. 한때 조선 제일의 자린고비로 불렸던 조륵[1649~1714]은 음성군 금왕읍 삼봉리 사람으로, 근검절약하여 큰 부자가 된 뒤 어려운 백성들을 많이 도와 가자(加資: 정3품 통정대부 이상의 품계를 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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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란 일반적으로 고고학적 자료나 미술품, 역사적 유물, 그밖의 학술적 자료를 모아서 보관하고 진열하여 일반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시설이다. 국제박물관회의(ICOM) 헌장에서는 박물관을 “예술·역사·미술·과학·기술에 관한 수집품 및 식물원·동물원·수족관 등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자료·표본 등을 각종의 방법으로 보존하고 연구하여, 일반 대중의 교육과 오락을 위하여 공개 전시함을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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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필을 시조로 하고 장언구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단양장씨(丹陽張氏)는 계보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다. 선단양(先丹陽)으로 불리우는 계통은 장씨의 도시조(都始祖) 태사공(太師公) 장정필(張貞弼)의 증손인 장지현(張之賢)의 아들 장순익(張順翼)이 고려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라 단양군(丹陽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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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원 스님(57세)의 어머니는 미타사를 오가며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 희원 스님이 아픈 것을 알고 명안 스님이 집을 찾아오면 항상 괜찮냐는 안부를 묻곤 했다고 한다. “스님이 항상 우리 집에를 오시면 ‘얘, 너 나랑 같이 가 살자, 살자.’ 그래. 근데 살기를 어떻게 살아 아파죽겠는데, 그렇게 그러다 병원에 입원하면 스님이 문병도 오시고 책도 가져다주시고,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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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늘상 병원 신세를 지며 살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단양 구인사에 가면 병을 나을 수 있다는 말에 어머니의 권유로 하는 수 없이 단양 구인사를 찾아 갔다고 한다. 교통이 발달되어 있지 않던 시절에 단양 구인사를 아픈 몸으로 찾아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웬일인지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고 한다. “거기를 가는데 그때만 해도 단양에서, 내 집이 충주거든, 충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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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단평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감곡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6㎞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오갑산, 서쪽으로는 노탑리와 청미천, 남쪽으로는 왕장리, 북쪽으로는 여주시 점동면 원부리, 관한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예로부터 한해가 심해 천수(天水)만 기다리는 경우가 많아 복을 많이 받으라는 뜻에서 복자동이라 했다. 원래 충주군 거곡면(居谷面)에 속한 지역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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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역사 기록이 존재하지 않은 시대의 유적과 유물. 선사시대는 주로 고고학의 대상으로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가 포함되고 있다. 그러나 선사시대의 출현이나 각 단계별 존재 형태는 지역의 자연환경과 인문 환경 등의 차이와 사회·경제·문화 등의 발달 단계에 따라 시기나 양상의 편차가 크다. 따라서 당시의 문화를 반영하는 유적과 유물도 그에 비례하여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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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의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충청북도 북부 지역은 구석기를 비롯하여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선사시대의 유적지가 많다. 따라서 이들 지역과 인접한 음성에서 일찍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개연성이 높다. 실제로 삼성면 용성리에서 석영질 암석으로 만든 찍개와 긁개, 밀개 등의 연모가 출토됨으로써 음성 지역의 구석기시대와 문화의 존재를 입증하였다. 청동기문화를 대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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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단양. 아버지는 중추부사(中樞府使) 우은정(禹殷鼎)이다. 홀어머니 경주이씨를 극진히 봉양하여 효자라는 칭송이 자자하였다. 어머니가 일찍이 과부가 된 것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여 어머니에게 효를 다하였다. 어머니가 병환이 들자 수년 동안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고, 죽은 뒤에는 3년 동안 시묘(侍墓)를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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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재배되는 대표적 특산 작물. 음성 지역의 인삼 재배는 1959년을 전후해 음성읍 신천리 지역에서 시범포 형식으로 시작되었으며, 1961년 지역 공동 사업으로 약 4,000㎡을 재배하여 성공한 것이 동기가 되어 인근 지역으로 빠르게 파급되었다. 기록을 보면 1966년 음성 지역의 인삼 재배 농가는 총 40가구로 9만 2,466㎡을 재배했으며, 1975년에는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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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의 지표상에 존재하는 인문적 사상(事象)들을 지리적 관점에서 분석한 분야. 인문지리학의 아버지는 리터(Carl Ritter)[1779~1859]로, 리터는 지리학을 경험과학으로 규정하면서 공간적 관점에서 지역을 총체적으로 연구하며, 현상들 간의 상호 관련성을 객관적으로 규명하는 것으로 정의를 내렸다. 특히 리터는 지역 현상을 파악하는 데 있어 자연·인간·역사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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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공신 장충범장군기념비는 생극면 병암리 이진말 문화마을 소공원에 세워져 있다. 이 기념비는 본래 생극면 소재지인 신양리 삼거리에 1971년에 세워져 있었는데 도로의 확포장공사로 인하여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장충범 장군은 조선 중기의 충신으로 자(字)는 효칙, 본관은 단양이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에서 적과 싸우다 부상을 당하여 고향인 음성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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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에 고구려가 설치한 행정 구역. 음성은 잉홀(仍忽)·설성(雪城)·잉근내(仍劤內)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잉홀의 지명은 서기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 12월에 음성으로 변경되었다.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 약물제 동쪽에 터골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어 구문동(龜文洞)이라고도 하는 이 마을은 고구려 때 잉홀현의 관청이 있어 ‘터골’이라고 하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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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단양. 자는 보도(普道), 호는 노포(老圃). 문헌공(文獻公) 장정필(張貞弼)의 후손이며 장석문(張錫文)의 아들이다. 장덕우는 부모에 대한 효성이 극진하였으며 형제와 이웃 간에 우애가 돈독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실천함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병이 나자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빌며 눈물을 흘리니 그 눈물이 마르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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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단양(丹陽). 자(字)는 성첨(聖瞻), 호(號)는 향초(香樵). 충신 장충범(張忠範)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장덕우(張悳雨)이다. 장동노는 항상 경로정신이 두터워 부친이 생존시에는 술과 고기를 항상 장만하여 드렸고, 이웃 어른과 노인을 정중히 모셔 부친의 뜻을 기쁘게 하여 드렸다. 부친상(父親喪)을 당하여서도 자신이 늙어서 몸과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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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단양. 자는 자류(子類), 호는 금리(琴里). 충신 장충범(張忠範)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장택한(張宅漢)이고, 어머니는 장수황씨(長水黃氏)이다. 글을 잘 지어 문행(文行)으로도 알려져 있다. 어머니의 병환에 손가락을 끊어서 피를 들게 하여 소생시켰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시묘를 하는데 커다란 범 한 마리가 매일같이 찾아와 같이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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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삼생리에 있는 조선 말기 장석영의 효자문. 본관이 단양(丹陽)인 장석영(張錫永)은 충신 장충범의 후손으로,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기로 근동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어느 해 아버지가 병이 나자 변을 맛보면서 간호를 하고, 어머니가 병이 났을 때는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 안으로 흘려 넣어 낫게 하였다. 이윽고 부모가 죽어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는데, 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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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이자 자선사업가.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성언(聖言), 호는 금범(錦帆). 선무공신(宣武功臣) 장충범(張忠範)의 후손이고, 동몽교관(童蒙敎官) 장석영(張錫永)의 아들이다. 장용묵은 어릴 때부터 성품이 효성스럽고 어버이를 섬김에 혼정신성(昏定晨省)을 다하였다. 어머니 최씨가 천어(川漁)를 좋아하여 춥거나 덥거나 날씨에 상관없이 매일 고기를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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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삼생리에 있는 조선 말기 장용묵의 불망비. 장용묵은 충신 장충범의 후손이며, 장석영(張錫永)의 아들이다. 자는 성언(聖言)이며 호는 금범(錦帆),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부모에 대한 효심이 깊었다. 어머니가 병을 앓게 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하여 삼일을 더 살게 하였다. 흉년이 들어 인근에 기황(饑荒)이 들자 곡식을 풀어 구휼하였다. 장용묵 보폐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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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천장(天章). 선무공신(宣武功臣) 장충범(張忠範)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장도홍(張道弘)이다. 장위한은 어버이를 섬김이 극진하였으며, 형제 6명의 우애가 특히 돈독하여 본받을만한 일화가 많이 전해진다. 나이가 차 분거(分居)하여 거처를 정함에 노구솥 하나와 송아지 한 마리, 그리고 간소한 농기구 등을 가지고 몸소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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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효칙(孝則). 생원 장언구(張彦玖)의 아들이며, 부인은 청풍유씨(淸風劉氏)이다. 음보(蔭補)로 벼슬에 나아가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가 되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채유종(蔡有終), 조웅(趙熊) 등 여러 사람과 의병을 일으켜 5백여 명을 모아 6년간 싸우면서 가는 곳마다 승승장구하였다. 1597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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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 활동한 장충범의 묘. 장충범의 본관은 단양(丹陽)이며, 자는 효칙(孝則)이다. 조선 선조 때의 충신 생원 장언구(張彦玖)의 아들이다. 음보로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를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부상당하자 향리인 삼생리로 피신하여 치료를 받았다. 1597년(선조 30)에 동지를 규합, 창의하여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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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 활동한 장충범의 신도비. 장충범은 자는 효칙(孝則), 본관은 단양(丹陽)으로, 생원 장언구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군자감주부로서 충주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부상당하여 향리인 삼생리로 피신하여 치료를 받았다. 1597년(선조 30)에 동지를 규합, 창의하여 삼생리 구진터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1605년(선조 38)에 교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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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삼생리에 있는 조선 중기 장충범의 충신문. 본관이 단양(丹陽)인 장충범(張忠範)[?~1597]은 임진왜란 때 군자감주부로 충주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부상당하여 향리인 삼생리에 와서 피신하며 치료하였다. 1597년(선조 30) 동지를 규합, 창의하여 삼생리의 구진터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1605년(선조 38)에 선무원종공신녹권을 하사받고, 1857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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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여 공급·판매하는 산업. 전력산업은 발전(發電)을 통하여 전기를 생산·송전·판매하는 사업이다. 전기는 추상적인 상품이라는 특성 때문에 관리·경영면에서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며, 저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요·공급의 조절에 어려움이 있다. 종래에는 주로 수력·화력 발전에 의존했으나 현재는 우라늄 등을 이용하는 원자력 에너지의 비중이 점차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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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이루어지는 신체를 단련하고 운동 능력을 기르는 일 또는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 근대 이전 우리 민족의 주요 체육 활동은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줄다리기, 활쏘기, 그네뛰기, 씨름, 썰매타기, 가마타기, 팽이놀이, 팔씨름 등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대적 의미의 체육 활동은 1910년대부터 설립되기 시작한 보통학교의 정규 교과 과정으로 체육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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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후미리에서 원남면 문암리까지 연결되는 철도. 충북선은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역과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역 간의 복선화된 철도 노선이다. 음성 구간의 충북선 복선철도 공사의 3공구는 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에서 음성군 원남면 마송터널 구간으로 미륭건설주식회사가 총 공사비 52억 5700만 원, 4공구는 음성군 원남면 마송터널에서 충주시 달천동 간의 구간으로 옥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