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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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지역에 있는 산등성이와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경기도와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차령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음성군은 차령산맥 쪽에 치우쳐 있고, 음성군의 중앙부에도 산들이 있어 많은 고개들이 형성되어 있다. 고개는 옛날에 도보로 걸어 다닐 때에는 교통로로 많이 이용되었으나 도로 교통이 발달한 지금에는 도로가 개설되지 못한 많은 고개들의 이용은 저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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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 내동과 송당리에서 각 한 글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金目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동리(內洞里)·송당리(松堂里)·시일리(時日里) 일부를 병합하고 내송리라 하여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금왕읍으로 승격되었다. 184m의 산이 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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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강당말 마을회관에 마을 이야기를 조사하기 위하여 방문했을 때 할머니들이 많이 모여 앉아 있었다. 이미 여러 번 왔었기 때문에 할머니들과는 어느 정도 친숙해져 있었다. 할머니들께 예전에 들었던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청하니 다 잊어버렸다며 선뜻 이야기를 꺼내려 하지 않았다. 시집살이하던 이야기라도 해주십사고 하니 시집살이 이야기는 남들한테 흉 보이는 것이라며 다들 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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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거리 에 서서 남쪽을 바라보면 바로 보이는 두 고개가 있는데, 큰 길을 건너 작은 고개와 큰 고개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다. 큰 고개 동쪽으로 논으로 이용되고 있는 뱀터가 있으며 비산리 서쪽으로 조그맣게 형성되어 있는 방죽안 옆쪽으로는 진등, 진등산 등으로 불리는 나지막한 산이 자리 잡고 있다. 비산리의 대표적인 고개로는 화산고개,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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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에 속하는 행정리. 비석동(碑石洞)의 ‘비’자와 돈산리(敦山里)의 ‘산’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사이포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비석동·조도리·돈산리를 병합하여 음성군 소이면에 편입되었다. 돌뫼 동쪽에는 절바우가 있는 절바우산(일명 뽀족산)이 있고 마타산 서쪽에는 가섭산[710m]의 줄기인 기운들산이 있다. 새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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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산리는 총 4개의 리로 나누어져 있으며, 특히 비선거리 또는 비석거리라고 불리는 비산1리는 예로부터 비석을 중심으로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번성하던 마을이다. 현재도 마을 입구에 비석이 자리하고 있어 그 역사를 증명해 준다. 비산1리 비석거리를 찾아가 마을의 유래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할아버지를 찾는다고 하니, 마을 어르신들은 입을 모아 이명희 할아버지(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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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4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소이면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3㎞ 지점인 비산리 중부 지역에 위치하는 마을이다. 동쪽으로 오랫말, 서쪽으로 비선거리, 동남쪽으로 대장리 장막산과 각각 접하고 있다. 비선거리 동남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충주군 사이포면 조돈촌리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비산리에 속하게 되면서 소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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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산리는 네 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비산1리는 비선거리와 방죽안으로 나뉘어져 있다. 비선거리 마을은 현재 지도에 비선거리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마을 이름에 대하여 이 마을의 이명희 할아버지(83세)는 “원래 비석거리라고 다들 불렀는데 그게 와전돼서 비선거리가 된 거지.”라고 말해주었다. 비선거리에는 큰 규모를 자랑하는 사찰인 미타사가 위치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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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산. 절하는 모양 같은 바위[拜岩: 배암]가 산에 있으므로 절바우산 또는 모양이 뾰족하다고 하여 뾰족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계곡에는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남쪽 하류에는 한벌천이 동쪽으로 흘러 음성천에 합류한다. 절바우산에는 절하는 모양의 바위인 절바우가 있다. 1930년대 돌뫼 동남쪽 절바우산에는 금광이었던 돌뫼광산 터가 있다. 절바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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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산리는 1리부터 4리까지 네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비산리에서 태어나 자란 이명희 할아버지(83세)의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1리와 2리, 두 리였던 마을이 2리가 점차 발전하면서 3리, 4리로 나뉘어져 현재의 마을 모습을 이룬 것이라고 한다. 이명희 할아버지(83세)께 비산리의 분촌 과정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1구에서 네 개의 마을이 떨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