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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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년 조선 전기 음성 출신의 문인 채수(蔡壽)가 지은 고소설. 『중종실록』에서는 「설공찬전(薛公瓚傳)」,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稗官雜記)』에서는 「설공찬환혼전(薛公瓚還魂傳)」, 국문본에서는 「설공찬이」로 표기하고 있다. 한문 원본은 1511년 9월 그 내용이 불교의 윤회화복설(輪廻禍福說)을 담고 있어 백성을 미혹한다 하여 왕명으로 모조리 불태워진 이래 전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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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자장을 시조로 하고 조덕립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순창조씨 시조 조자장(趙子張)은 고려 초에 순창에서 호장을 지냈다. 그리하여 선조들의 토착지인 순창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고려 말의 충신 농은(農隱) 조원길(趙元吉), 세종 때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역임한 조숭문(趙崇文), 명종 때 목사를 역임한 조유성(趙惟誠),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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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응용(應龍)·응기(應祈). 옹몽진은 순창옹씨 시조이다. 원래 옹몽진의 선조는 고려 때 교목세신(喬木世臣)의 거족이었으나 조선 개국에 반대하여 이성계의 미움을 받아 서인이 되었다. 옹몽진은 음성향교지기를 지내다가 1553년(명종 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56년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67년 판관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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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경여(敬汝), 호는 유헌(柳軒). 문정공(文貞公) 조무(趙廡)의 후손이며, 효자 조용하(趙用夏)의 아들이다. 아들은 조헌용(趙憲瑢), 조헌영(趙憲瑛), 조헌옥(趙憲玉) 3명을 두었다. 부친 조용하가 병에 걸리어 위중하게 되자 조기순이 밤중에 맑은 물을 길어다가 백일 동안 탕약 물로 사용하였더니 병에 효험이 있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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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순창(淳昌). 형은 조복(趙服)이다. 조반은 1592년 임진왜란 때 형 조복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켰다. 월고산(月高山) 국사봉(國師峯)[소이면 금고리 소재]에서 힘을 다해 왜군과 싸웠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우목야(牛牧野)[소이면 갑산리 소재]에서 형과 함께 전사하였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 활동으로 공조참판(工曹參判)으로 증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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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순창(淳昌). 동생은 조반(趙胖)이다. 조복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동생 조반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월고산(月高山) 국사봉(國師峯)[소이면 금고리 소재]에서 목숨을 바쳐 왜군과 싸웠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우목야(牛牧野)[소이면 갑산리 소재]에서 동생과 함께 전사하였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 활동으로 병조판서(兵曹判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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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창. 자는 윤집(允執). 문정공(文貞公) 조무(趙廡)의 후손이고, 부인은 평택임씨(平澤林氏)이다. 조용하는 아버지가 위독하자 손가락을 끊어 수혈하여 아버지를 소생시켰다. 부인 임씨는 남편이 위독하자 두 차례나 손가락을 끊어 수혈하여 남편을 소생시켰다. 1888년(고종 25) 임금이 조용하에게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증직하고 조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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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충도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조용하와 열녀 평택임씨의 효열각. 본관이 순창인 조용하와 처 평택임씨는 아버지가 병환으로 의식이 불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의식을 돌아오게 하였다. 그후 언젠가는 조용하가 병이 들어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자 부인 임씨가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병을 낫게 하였다. 이와 같은 효행과 효열이 세상에 알려지자 고종 때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