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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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 아버지는 효자 민동량(閔東亮)이다. 큰아버지 민동상(閔東尙)에게 출계(出系)하였다. 아버지가 했던 효의 덕업을 이어받아 어버이에게 대한 효도를 실천하여 온 집안사람들의 칭송을 받았고 집안의 자랑이 되었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상평리에 있다.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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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여흥(驪興). 자(字)는 군삼(君三), 호(號)는 송암(松巖). 첨정 민휘정(閔鰴鄭)의 아들이다. 민동량은 5세 때 글을 깨우쳐 주위에서 신동이라고 소문이 났으며 5~6세 때 부모가 병이 났을 때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 곁을 떠나지 않고 병을 간호하였다. 10세에 어머니 병환이 위중하자 하늘에 기도하였고, 15세 때인 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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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민동량의 묘. 민동량의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자는 군삼(君三), 호는 송암(松巖)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증병조판서(贈兵曹判書) 민심언(閔審言)의 후손으로, 첨정(僉正) 민휘정(閔徽鄭)의 아들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누가 아버지를 부르면 문득 눈물을 흘렸다. 10살에 어머니가 아프자 향을 피워 하늘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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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민동량의 정려각. 민동량은 본관은 여흥, 자는 군삼, 호는 송암이다. 1806년(순조 6)에 정려와 복호(復戶)가 내려졌다. 7, 8세 때부터 부모가 병이 나면 곁을 떠나지 않고 보살폈으며 좋은 약이라면 가리지 않고 구하여 썼다. 부모가 아프자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피를 내어 먹이려고 왼손 네 손가락을 잘랐으며, 대변을 살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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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분충(奮忠). 증좌찬성(贈左贊成) 민수산(閔壽山)의 아들이고, 증문하시중(贈門下侍中) 여원군(驪源君) 민백훤(閔佰萱)의 손자이다. 친형은 민서(閔叙)이다. 민발은 어려서부터 기골이 크고 힘이 세어 13세 때 무술 연마를 위해 마을 앞 큰 바위를 움직여 등에 지고 사장(射場) 터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음보(蔭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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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 민발(閔發)[1419~1482]의 신도비. 민발 신도비는 민발의 사후에 평생의 행적을 담은 글을 돌에 새겨 세운 비로, 1707년 (숙종 33)에 세워졌다. 민발의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민수산(閔壽山)의 아들이며, 시호는 위양(威襄)이다. 1453년(단종 1)에 사복시대호군(司僕寺大護軍)으로 있으면서 무과(武科)에 합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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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驢興). 아버지는 서운부정(書雲副正)을 지낸 민함계(閔咸啓)이고, 아들은 조선 초기 문신인 민수산(閔壽山), 손자는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공신에 오른 민발(閔發)이다. 민백훤은 어렸을 때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전평리 새눈이에서 살았으며 1374년(우왕 즉위) 11월에 전공판서(典工判書)로 사신이 되어 밀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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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고려시대 서운부정(書雲副正)을 지낸 민함계(閔咸啓)의 손자이고, 고려 후기 문신이었던 민백훤(閔伯萱)의 아들이다.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민발(閔發)이 아들이다. 민수산은 어려서부터 글을 잘하여 1382년에 어전 시회(詩會)에서 장원하였다. 1411년(태종 11)에 어머니가 죽자 형제인 민방보(閔邦寶)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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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 할아버지는 민동량(閔東亮)이고 아버지는 민경연(閔景淵)이다. 조상의 덕업을 받들어 모셔 어버이에게 효도하여 집안의 명성을 높였다. 정조조에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아들 민백원(閔百元)과 손자 민국현(閔國顯)은 경서에 능하였고 증손 민치경(閔致慶)은 문예에 숙달하여 사람들이 산동(山東) 문장이라 칭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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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고려시대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 민의(閔懿)의 아들이다. 처는 배씨(裵氏)이며 아들로 민식(閔湜)·민공규(閔公珪)가 있다. 배씨의 동생은 유익겸(柳益謙)의 처가 되었다. 민영모는 인종·의종·명종 때 활동한 인물로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였다. 민영모가 처음 과거에 응시했을 때 부(賦)를 지었는데 격식에 맞지 않아서 동지공거(同知貢擧) 이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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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건립된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사창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문신 민영모의 묘단. 민영모는 『여지도서(輿地圖書)』 여주(驪州)의 「인물조」에 “고려 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문하시랑(門下侍郞)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른 기록에서는 고려 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郞)을 지냈고, 명종 즉위 후 왕의 총애를 받아 문하시랑평장사를 거쳐 태자태사(太子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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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원실(元實), 호는 한송(寒松). 민휘계(閔徽繼)의 5세손이다. 민정현(閔鼎顯)[1783~1812]은 3세에 글을 읽고 10세에 경서를 통달하였으며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안성시 칠장사(七長寺)에서 노승과 같이 경서(經書)와 시부(詩賦)를 토론하는데 막힘이 없어 30여 명의 중들이 경탄하였다. 학식이 탁월하여 먼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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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민치상(閔致庠)[1825~1888]의 치적을 기리는 비(碑). 민치상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자는 경양(景養), 호는 하당(荷堂), 본관은 여흥이다.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의 5대손이며, 민용현(閔龍顯)의 아들이다. 1845년(헌종 11) 생원이 되었고, 이듬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49년(철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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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민충길(閔忠吉)이다. 민침(閔忱)[1600~?]은 1627년(인조 5) 27살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1년(효종 2) 51살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지 정창주(鄭昌胄)가 “세무(世務)에 통달하고 강어(强禦)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천거하여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이어서 문의현감(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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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여흥(驪興).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된섬이에 큰 바위가 있는데, 민해준의 효행은 이 바위와 관련되어 전하고 있다. 민해준이 어머니와 같이 밭에서 김을 매다가 소낙비를 만났는데, 비를 피하기 위하여 바위 밑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바위가 조금 움직이는 것 같더니 곧 굴러 내릴 위험에 있었다. 이 때 민해준은 어머니를 밖으로 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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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여흥(驪興). 자(字)는 미윤(美胤), 호(號)는 호암(湖巖). 민홍로(閔弘魯)의 아들이다. 민휘계는 집안이 가난하여 낮에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밤에는 경전(經典)을 읽으면서 생활하니 몸에 걸칠 옷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형제간에 우애가 두터워 한 상에서 밥을 먹고 한 이불에서 자고 같이 글을 읽으면서 잠시라도 떨어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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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칭도를 시조로 하고 민백훤과 민덕룡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시조는 공자의 열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노나라 민자건(閔子騫)의 후손 민칭도(閔稱道)로, 민칭도는 고려에 사신으로 들어왔다가 귀화하여 여흥에 정착하였다. 고려 때부터 명문 가문이었으며, 수정승 민지(閔漬)를 시조로 하는 문인공파(文仁公派)와 대제학(大提學) 민적(閔頔)을 시조로 하는 문순공파(文順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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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이준성은 1890년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본대리에서 이순형(李舜衡)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여흥(驪興), 호는 만오(晩梧)이다. 1931년부터 8년간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면의 면장으로 재임하면서 무극교(無極橋)를 가설하여 주민 교통의 편의를 도모하였고, 시장 시설을 현대화하여 거리 질서를 바로잡았다. 그 후 본대리에 간이학교를 유치하여 인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