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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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이후 침체돼 있었던 강당말과 용대동에 새로운 바람이 분 것은 1960년대의 4-H 운동과 1970년대의 새마을 운동이었다. 1960년대에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잘 살아보고자 강당 4-H 회원들이 마을에 감나무를 심기도 하고 일심회를 조직해 마을을 모범부락으로 만들었다. 1970년대는 새마을 운동으로 초가집을 없애기 위해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량을 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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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 사정1리 부근인 음성읍 감우리, 소여리, 충주시 신니면 동락리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다. 사정1리 강당말, 용대동 앞산을 넘으면 감우리인데 이곳에서 전개된 감우재 전투는 6·25전쟁 때 국군이 최초로 이긴 전투이다. 감우재를 가기 전 마을인 사정1리에서 일어난 전투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드리자, 용대동에 사는 강정순 할머니, 김장일 할아버지(37년생, 7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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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에서 이 먼 곳까지 어떻게 오게 되었냐고 물어보자, “시집올 때 세상이 지금 같았으면 이런 곳으로 시집 안 왔다.”며 다시금 강조하여 말하였다. 처음 충청도에 왔을 때 너무 조용하다고 생각했다. 전라도에 살 때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칼끝에 앉은 것 마냥 불안하고, 매일같이 순경들에게 붙들려가서 문초 당하고 두들겨 맞았다. 빨갱이 한 패가 지나가고 나면 가슴이 철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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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1리 강당말과 용대동은 부용산 자락에 마을을 이룬지 400여 년이 지났다. 그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마을 사람은 산자락의 척박한 땅을 일구어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으며,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유형의 문화유산을 풍성하게 남겨놓았다. 특히 음성군의 향토문화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간와당은 물론 마을 사람들이 보존하고 있는 교지, 계문서 등 각종 오래된 고문서,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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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1리에는 주로 강당말 중심으로 마을 모임이 조직돼 있었다. 2월 6일, 마을회관에서 마을 조직에 대해 이야기 듣던 중, 오래된 계 장부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김장일 할아버지(37년생, 71세) 댁으로 찾아가 마을의 계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강당말에는 마을 전체로 강당계, 송계, 안동김씨 강당말파 파종계 등이 있었고, 여자들끼리는 크고 작은 각종 계모임을 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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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1리 강당말과 용대동 마을은 깊은 산골이긴 하지만 예전엔 서울로 통하는 사정고갯길이 통과하는 길목이어서 나그네들이 쉬어가는 쉼터인 주막이 있었던 곳이다. 또한 6·25 때에는 높은 산과 고개를 사이로 두고 접전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산촌이어서 먹고살아나가는 일이 여의치 않아 솔방울도 따다 팔고 나무도 해다 팔기도 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었을 때에는 마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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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1리는 강당말과 용대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강당말은 안동김씨(신안동김씨) 집성촌이고, 용대동은 경주이씨 집성촌이다. 4월 12일 강당말의 김두일 새마을 지도자(52년생, 56세)를 만나 안동김씨에서 신안동김씨로 나온 이유에 대해 여쭤보았다. 김두일 어른은 신안동김씨가 김선평(金宣平) 할아버지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설명을 시작했다. “선평 할아버지인가? 선평이면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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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말은 음성읍 사정1리에 속한 마을로 서쪽은 사정2리인 본말, 동쪽은 용대동과 접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부용산이 마을의 진산으로 자리하고 있다. 강당말은 옛 사정고갯길을 따라 사정고개 방향으로 올라오다 보면 마을 입구에 큰 느티나무들이 어우러져 있으며, 느티나무 아래로 팔각정자 쉼터를 만들어 놓았으며, 바로 옆 터에 있는 마을회관이 눈에 들어오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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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고갯길은 옛날에 사정현대로라고 기록하였듯이 근대 이전에는 큰길이었는데 조선 후기들어 소여리와 감우리를 통과하는 길을 많이 이용하고, 일제시대에 신작로가 나면서 길이 쇠퇴하여갔다. 사정고갯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용대동의 이방우 할아버지(27년생, 81세)는 “일정 때 일본사람이 구 길(신작로)을 만들었고, 현재 4차선도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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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에 만난 이방우 할아버지(27년생, 81세)께 경주이씨가 용대동에 들어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 여쭤보았다. “임진왜란 때, 내가 ‘우’자거든요? ‘우’자의 8대 되는 분이 현재 여기, 이전에 납골당을 모셨거든. 그런데 그 밀양박씨 할머니가 임진왜란 때 살다보니깐,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데. 역적으로 몰렸단 말이야. 임진왜란 때. 역적으로 몰렸는데, 아들 딸 가족이 다 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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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누구나 이름이 있듯이 사람들이 살아왔고 살아가는 마을에는 곳곳마다 땅이름이 있다. 사정1리 강당말과 용대동에도 가는 곳마다 독특한 땅이름을 지니고 있다. 땅이름에는 마을의 자연,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마을 사람들의 생활과 삶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강당말과 용대동 마을 사람들이 전해 준 마을 곳곳의 땅이름에는 두 마을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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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1리 용대동은 13가구 중 11가구가 경주이씨로, 경주이씨 집성촌이다. 경주이씨의 내력을 알아보기 위해 4월 2일 이상혁 반장(56년생, 52세)을 찾아뵈었다. 이상혁 반장은 우선 경주이씨의 계보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다. “경주 익재공 할아버지, 제현공. 제현 할아버지가 아들을 낳고 손자를 낳다 보니깐, 우리가 사미정공 할아버지의 후손인데 사미정공 할아버지가 8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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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름을 사정리라 부르게 된 것에 대하여 강당말의 김두일 새마을지도자(52년생, 56세)는 “이 곳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모래톱에서 똑같은 양의 물이 솟아나는 모래우물이 있어 모래샘, 한자로 사정(沙井)이라 하고 마을 이름도 사정리라 했다고 어른들이 말들을 했어. 그리고 예전에는 이 우물물을 먹었었어.”라고 마을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였다. 사정리 마을은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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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1리 강당말과 용대동은 부용산을 뒤로 하고, 산자락에 자리를 하고 있는 지형 특성상 대부분의 경작지가 밭이며 논이 적은 편이며 이 논들도 천수답이 많은 편이다. 옛날에 이 마을도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먹고 살아가는 방편으로 쌀, 보리, 밀, 콩 등의 곡물 위주로 하여 농사를 지었는데 생계를 겨우 유지하는 정도에 불과하였으며, 그렇게 부자는 없었다. 강당말과 용대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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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대동에서 북동쪽으로 부용산의 얕은 산줄기가 있는데, 이곳을 넘으면 음성읍 용산리 숯고개가 나온다. 산의 형상이 배를 닮았다 하고, 비가 오는 날이면 물이 흐르는 듯한 소리가 땅속에서 크게 들리는 듯하여 배너미라 불렀다 한다. 배너미에 대한 전해 오는 이야기를 용대동 이방우 할아버지(27년생, 81세)는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옛날 천지가 개벽을 할 때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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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대동 마을 북동쪽으로 700m 지점에 용대동 산신제를 올리는 산제당이 있는 복지골에 폭포가 있는데 이 폭포를 복기암 폭포라 한다. 이 폭포 이름에 대하여 이 마을 이상혁 반장(56년생, 52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폭포는 물이 흘러 떨어지는 바위가 그 모양이 바둑판 같이 넓어. 그러고 보면 알겠지만 그 바위 위에 울퉁불퉁한 돌들이 붙어 있어. 그 모양새가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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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생극면 생리·금왕읍 육령리에 걸쳐 있는 산. 해발 500m 이상의 정상부는 준엄한 경사를 이루는 산지이나 대체로 저지대는 완만하다. 부용산의 정상 서쪽에 발달한 주능선 사면의 표고 25m 이상의 저지대와 계곡 일대에는 신갈나무 군락이 발달해 있고, 남동쪽으로 발달된 주능선 표고 400~500m의 양쪽 사면에는 굴참나무 군락이 있다. 동사면의 물은 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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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대동은 음성읍 사정1리에 속한 마을로 서쪽은 강당말, 동쪽은 음성읍 용산리와 사정고개, 북동쪽으로는 부용산 자락이 솟아오른 사장산과 접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마을의 진산으로 부용산이 자리하고 있다. 용대동은 옛 사정고갯길을 따라 사정고개 방향으로 올라오다 보면 강당말을 지나 5분쯤 걸으면 길가에 큰 아카시아나무가 서 있는 서낭당이 나타나고, 서낭당에서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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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 용대동에서 매년 음력 1월 7일에 지내는 산신제. 용대동은 강당말 동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통쇠로 농기구를 만들었던 곳이라 하여 ‘퉁뱅이’라고도 불린다. 음성읍에서는 서북쪽으로 6㎞ 지점에 위치하며 사정이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제당은 마을 뒤쪽으로 500m 정도 올라간 지점의 소나무가 우거진 골짜기에 있다. 일반 다른 마을의 제당과는 달리 볏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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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 부용산에서 발원하여 사정리 무극저수지로 흐르는 하천. 부용산에서 발원하여 용대동, 강당말, 안말, 황새골 등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쳐져 무극저수지(일명 사정저수지)로 유입된다. 무극저수지는 1981년에 축조된 것으로 부근의 육령저수지(일명 금석저수지)와 백야저수지(일명 용계저수지)와는 도수터널로 연결되어 있다. 오갑팔경의 하나로 ‘사정 골짜기의 나무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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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사정1리 용대동의 경주이씨 문중 이야기를 조사하기 위해 경주이씨 집안에서 제일 어른이라고 하는 마을의 이방우(27년생, 81세) 할아버지를 찾았다. 할아버지가 「용대동 산신제」와 「마을 지명 이야기」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할아버지의 부인인 이경순 할머니와 마을의 강정순 할머니(29년생, 79세)가 들어와 앉아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들의 생각을 보태기도 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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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조사팀이 사정1리를 방문했을 때 마을회관에는 보건소에서 교육을 나와 있어서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 뵐 수 없었다. 대신 마을의 새마을 지도자를 맡고 있는 김두일(52년생, 56세) 어른과 함께 용대동 산제사를 올린다는 산제당으로 올라갔다. 용대동에서 안쪽으로 좀 더 이동하다 보면 오른쪽으로 큰 산이 보이는데, 그 아래로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곳이 산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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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말에서 용대동 쪽으로 5분쯤 오르다 보면 고목과 비슷한 큰 아카시아나무 3그루가 서 있고 이곳에서 길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데 이곳이 서낭댕이다. 그리고 서낭당이 있는 이곳의 들판 이름도 서낭댕이뜰이라 한다. 이 서낭댕이에 대해 강당말 김두일 새마을지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전에는 서낭당에 흙벽돌 집으로 당집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 그리고 어릴 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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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사정1리 강당말의 마을회관을 방문했다. 마을회관은 할아버지, 할머니 방으로 나뉘어 있었다. 할아버지들께 옛날부터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풍속에 대해 여쭤보았다. 설에는 집집마다 제사를 지낸 뒤 마을 세배를 한다. 그전에는 집집이 세배를 올리고 젊은이들을 어른들을 찾아 세배를 드렸는데, 한 7~8년 전부터는 마을회관에 모여 어린이들이 어른들께 한 자리에서 세배를 드리는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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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안동김씨가 모여 사는 동족 마을. 사정리 강당말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안동김씨 시조 김선평(金宣平)의 18대손인 김혜(金憓)가 피신하여 들어와 살면서 학문을 연마하고 가르치는 강당을 세워 교육의 장을 마련하였는데, 이 강당에서 마을 이름이 비롯되었다. 임진왜란을 피해 사정리에 들어온 김혜가 벼슬에서 물러나면서 강당말로 들어와 약 18년을 살았는데, 그 이후 안동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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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음성읍에서 북쪽으로 약 6㎞ 지점인 사정리의 중앙부 지역에 위치한 마을이다. 동쪽으로는 강당말, 서쪽으로는 본말·벌터, 북쪽으로는 황새골과 각각 접하고 있다. 사정리의 벌터 안쪽 골짜기에 있다 하여 안말이라 한다. 본래 음성군 근서면 지역으로, 모래우물이 있어 모래물 또는 사정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강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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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용대동은 음성읍에서 북쪽으로 약 6㎞ 지점에 위치한 사정1리의 자연 마을이다. 동쪽으로는 용산리가 자리 잡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금왕읍 백야리, 남쪽으로는 감우리, 북쪽으로는 금왕읍 육령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옛날에 퉁쇠로 농기구를 만들던 곳이라서 퉁뱅이라고도 부른다. 본래 음성군 근서면 지역으로, 마을 안에 모래우물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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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은 삼한시대에 마한의 50여국 중 하나인 지침국에 속했으며, 신라의 영토가 되면서 음성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 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4개 면을 이루었고 그 중 사정리(沙亭里)는 근서면에 속해 있다가, 1914년 일제하에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벌터, 안말, 강당말, 용대동 등의 마을이 합쳐 지금의 사정리(沙丁里)로 명명되었다.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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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는 지리적으로 충청북도 북서부 지역에 있는 음성군의 중앙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음성읍 용산리, 북서쪽으로는 금왕읍 금석리, 남쪽으로는 음성읍 감우리, 북쪽으로는 금왕읍 육령리와 접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중부고속도로를 따라오다 음성 나들목으로 나오면 동쪽으로 12㎞ 지점의 금왕에 이르게 되고, 금왕에서 37번 국도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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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는 4남 1녀로, 5남매를 두었다. 다섯 남매의 태몽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아나? 옛날에 여기(용대동 비 있는 곳) 샘 있었지? 옛날에 거기서 물동이를 이고 거기를 가는데, 빨간 감이 담 위에 하나가 올라가 있어. 딱 하나가 올라 앉았길래 감을 누가 볼까봐 얼른 감춰서, 여기다 감싸가지고 왔지. 그랬더니 벌써, 한쪽은 새파랗고 대가리는 새빨간 것이, 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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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1리는 강당말과 용대동 두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두 마을은 각기 안동김씨와 경주이씨의 집성촌이어서 독자적인 문화와 생활권을 이루어 왔으나 행정구역상 한 리로 되어 있기 때문에 마을 전체의 일을 의논할 때는 함께 모인다. 강당말에만 마을회관이 있고, 용대동에는 마을회관이 없다. 마을회관에는 주로 강당말 분들만 모이고, 용대동 분들은 잘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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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리 강당말과 용대동 마을에 들어서면 밭과 논, 산비탈에 잘 다듬어 놓은 정원을 옮겨놓은 듯한 인상을 들게 하는 주목밭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아름다운 주목나무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강당말과 용대동 마을에서 예전에는 벼농사, 고추농사와 담배농사, 인삼농사, 과수농사를 주로 하였으나, 오늘날은 원예농사인 주목나무 재배와 과수농사가 주산업이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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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말의 할머니들에게 시집살이노래, 나물노래 같은 것이 없느냐고 여쭈니, 이구동성 용대동의 ‘전라도 할머니’가 그런 노래를 잘 안다고 했다. ‘전라도 할머니’는 전라도에서 시집온 강정순 할머니를 이르는 것이었다. 3월 8일 용대동의 강정순 할머니 댁을 찾아가니 할머니 혼자서 누워 계시다가 조사팀을 반갑게 맞았다. 강정순 할머니는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혼자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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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대동에서 노래를 제일 잘한다고 마을 분들이 입을 모아 추천한 ‘전라도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아침 일찍 마을로 찾아갔다. 강당말 입구에서 넓게 퍼져있는 주목밭을 지나 도보로 10분 정도를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용대동이 나온다. 제일 먼저 보이는 파란색 대문집에서 할머니 댁을 물어보자 ‘바로 뒷집’이라고 알려주었다. 전라도 할머니를 처음 보고 ‘저렇게 작고 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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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대동은 사정1리 제일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서 역사가 오래된 마을이다. 오늘날 용대동은 경주이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으나, 용대동이라 부르는 마을이 생기기 전에 이미 마을이 있었는데 바로 퉁뱅이이다. 따라서 용대동은 이 퉁뱅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퉁뱅이란 퉁쇠로 농기구 등을 만드는 곳으로 천민 취급을 받던 수공업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 전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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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1리 용대동과 강당말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온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척사대회(윷놀이 대회)를 연다. 조사팀은 척사대회가 벌어지는 3월 4일(음력 정월보름) 아침 일찍 용대동의 이상혁 반장(56년생, 52세) 집 앞마당으로 갔다. 전날 잡은 돼지 손질로 이상혁 반장과 반장의 큰 아들이 분주하였다. 마당에 이미 윷판이 펴져 있었고 새것처럼 보이는 윷이 판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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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들 은 피난골이라고 하는데, 복기암 폭포 밑에 큰 바위가 있고 바위 밑에 굴처럼 파여 있는 곳이다. “피난골은 용대동 폭포수 밑에 가 보면 산신제 지내는데 밑에 가보면 향토지 책에도 나와 있어. 이렇게 우묵하게 자연적으로 파여 있어. 조그마하게 요만큼. 그래서 피난 골이라고 그러더라고. 6·25 때 글로 피난 갔다고 그래서” 김두일 새마을 지도자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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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충청도는 조용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랫동네에 있는 사람의 딸을 통해 중신을 넣었다. 그 딸이 지부네(생극 부근)에 살고 있었는데, 그 이웃에 현재 남편의 당숙이 살고 있었다. 그렇게 “연줄 연줄을 통해서” 1950년, 당시 21세에 이곳으로 시집을 오게 되었다. 남편은 경주이씨 ‘이경우’씨로 당시 29세였다. 혼인을 하기 위해 아버지와 전라도에서 기차를 타고 음성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