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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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전해 내려오는 초대 음성현감 이야기. 「음성 초대현감 옹몽진」은 음성현의 초대 현감으로 선정을 베풀어 지역민의 존경을 받았던 옹몽진(邕夢唇)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옹몽진은 조선 중기 명종 때의 사람으로 순창옹씨 시조이기도 하다.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음성향교 앞뜰에는 역대 현감과 군수, 읍면장들의 공덕비가 열을 지어 서 있는데, 그중에 가장 오래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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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의 풍광(風光)·풍속(風俗)·사적(史蹟) 등을 유람하는 일. 음성군은 충청북도의 북서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충청북도 충주시, 서쪽으로는 경기도 안성시와 충청북도 진천군, 남쪽으로는 충청북도 괴산군, 북쪽으로는 경기도 이천시와 각각 접하여 경기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룬다. 충청북도 음성군의 관광 요소는 크게 주요 관광지, 문화유적, 음성의 축제 등으로 나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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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에 살았던 효부. 구덕자의 처 조씨는 출가한 지 2년 만에 남편이 죽었다. 남편이 죽은 후에도 시어머니를 평생 봉양하니 음성향교(陰城鄕校)에서 표창하였다. 사림에서 효열비(孝烈碑)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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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권철인(權徹仁)의 선정비. 권철인은 1844년(헌종 10) 예빈시(禮賓寺) 참봉(參奉)을 거쳐 음성현감에 부임했다가 1851년(철종 2) 7월 신병을 이유로 사직하였다. 권철인 혜휼군민선정비는 재직시인 1850년(철종 1)에 세운 것이다. 원래의 위치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음성향교 앞쪽에 다른 선정비들과 함께 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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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조선 후기 관찰사 김응근(金應根)[1793~1863]의 선정비. 김응근은 조선시대 철종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字)는 계경(溪卿), 호(號)는 의석(宜石)이다. 참판(參判) 김명순(金明淳)의 아들이며 좌의정 김홍근(金弘根)의 동생, 영의정 김흥근(金興根)의 형이다. 1816년(순조 16)에 사마시 생원 3등 6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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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구장 남궁은의 송덕비. 묘표형의 비석으로 가첨석은 없다. 전체 높이는 119㎝, 앞면 폭 46㎝, 측면 폭 19㎝의 규모이다. 비신 중앙에 ‘삼구장남궁은송덕비(三區長南宮恩頌德碑)’라 쓰여 있고, 왼쪽에 송덕 사실을 4언시로 옮겨놓았다. 사언시의 내용은 “십년 간을 부지런히 근무하였으니 좋도다 그 말씀이여! 사사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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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대경사(大京寺)에 있는 고려 전기 삼층석탑. 대경사 삼층석탑은 음성향교 앞 묘정사 부근에 있었는데, 누군가가 자기 집으로 옮겨놓았다가 6·25전쟁 때 파괴되었다고 한다. 방치되었던 탑을 50여 년 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와 복원하였다. 전체적으로 원형이 매우 훼손된 상태이다. 1매의 지대석 위에 기단석을 올려놓고 그 위에 바로 1층 탑신을 얹었다.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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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신천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돌명이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에서 서쪽으로 1㎞ 지점에 있으며, 동쪽으로 읍내리, 서쪽으로 초천리, 남쪽으로 하당리, 북쪽으로 용산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마을이 음성향교 뒷산인 옥녀봉의 옥녀 거울에 해당되는 형국이며, 돌에서 빛이 난다 하여 돌명이[石明]라고 하였다. 신천리는 본래 동도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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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이란 공공 녹지로서 자연지(自然地)나 인공적으로 조성한 후생적 조경지를 말한다. 흔히 전자, 곧 자연지를 자연공원이라 하고 인공적으로 조성한 후생적 조경지를 도시공원이라고 부른다. 음성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 휴식 공간으로 자리잡은 설성공원과 큰바위얼굴조각공원은 인공적으로 조성한 도시공원으로 음성군민이 즐겨 찾는 쉼 터이자 자랑거리로 자리잡고 있다. 음성읍 읍내리는 동쪽으로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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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국가 및 지방 지정 문화 유산.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 239-1번지의 음성 김주태(金周泰) 가옥은 1984년 1월 10일 국가중요민속문화재 제141호로 지정된 전통 가옥이다. 300여 년 전에 이익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며 충주목사를 지낸 참판 박규희 가문이 오랜 동안 거주하였다 하여 박참판댁으로도 불리고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 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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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민치상(閔致庠)[1825~1888]의 치적을 기리는 비(碑). 민치상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자는 경양(景養), 호는 하당(荷堂), 본관은 여흥이다.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의 5대손이며, 민용현(閔龍顯)의 아들이다. 1845년(헌종 11) 생원이 되었고, 이듬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49년(철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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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교육자. 박제익(朴齊翼)은 1881년(고종 18) 사립 광명학교를 음성향교 내에 설립하고 아동 교육을 하였다. 1909년 8월 31일 정식 인가를 받아 사립 광명학교를 설립하여 설립자 겸 교장이 되었으며, 보통과와 일어를 가르쳤다. 1910년의 수업 연한은 4년이었고, 교원 3명에 학생 수는 35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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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열경(說卿), 호는 사산(司山).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반석평(潘碩坪)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반진홍(潘鎭洪)이다. 반필순은 문장에 능하고 덕행이 있어 사우간에 추앙되었다. 성균관 과거에 합격하여 통덕랑(通德郞)이 되었으며, 1892년(고종 29) 음성향교 장의(掌議)로 있다가 1893년 금영 이시에 1등으로 뽑혔으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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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변중기의 기념비. 변중기 기념비는 1930년대 읍내리 1구장을 역임한 변중기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기념비이다. 변중기는 읍내리 1구장 역임 이외의 행적은 미상이다. 비는 1936년에 세워졌다. 비신(碑身)의 총 높이는 119㎝이며, 앞면의 폭 41㎝, 측면의 두께 15㎝이다. 비석 앞면에는 ‘읍일구장변중기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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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옛 절 터. 음성 지역에서 확인되는 사지(寺址)는 상당수가 있으나 기록에서 확인되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서가섭사 상봉악사 구재가섭산(西迦葉寺 上鳳岳寺 俱在迦葉山)”이라 하여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서 확인되는 서가섭사지 곧 응진암지(應眞庵址)와 상봉악사지(上鳳岳寺址) 등이 확인된다. 1632년에 만들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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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불상을 모셔 놓고 공적으로 불교 신행을 행하는 장소. 음성 지역에서 확인되는 사찰로 그 연원이 가장 오랜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의 지리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보면 음성읍에는 서가섭사(西迦葉寺)와 용산리의 상봉악사(上鳳岳寺), 감우리의 성주사(聖住寺) 등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가섭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 자취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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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의 전통가옥은 대부분이 조선시대의 건축물들이고, 유교적 특징이 강조되어 있다. 옛사람들의 생활 가옥이었던 고택들, 유교 이념을 교육하였던 향교, 유교 이념을 연구·전승하였던 서원들, 선현 제향과 풍속 교화의 장소인 사우들, 자연을 즐기는 여유가 담긴 누정들은 모두 조선의 시대정신이었던 선비 정신과 그에 입각한 건축미가 담겨진 전통가옥들이다. 이처럼 음성 지역에 유독 조선의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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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성규주를 기리는 비. 성규주는 영조 때에 음성현감으로 애민선정(愛民善政)을 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불망비를 세웠다. 성규주 불망비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서 충주로 가는 구 도로를 따라 1㎞쯤 올라가면 음성향교가 나오는데 그 앞에 있다. 비석은 이수(螭首)를 얹은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 화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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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성규주를 기리는 비. 성규주는 영조 때에 음성현감으로 애민선정(愛民善政)을 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선정비를 세웠다. 성규주 선정비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 하당저수지로 올라가는 길옆 하당1리 마을회관 근처 비닐하우스 앞에 있다. 비석은 이수(螭首)를 얹은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 화강암 1매석을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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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음성현감 송규복을 기리는 비. 송규복 애민선정비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에서 충주 쪽으로 가는 옛 국도 변에 위치한 음성향교 앞에 있다. 향교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던 장소이므로 선정비나 불망비 등이 많이 세워져 있다. 비석은 지붕돌이나 이수(螭首) 없이 윗부분을 둥글게 처리한 일반형 석비로 화강암 1매석이며 높이 115㎝의 비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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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읍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관찰사 심의신을 기리는 비. 관찰사는 충청도를 다스리는 입법·사법·행정의 수장으로, 충주목에 거주하며 백성을 다스렸다. 음성은 충주목 관할하의 현이기에 관찰사가 가끔 들르던 길목으로, 음성의 백성에게 각별한 정성을 기울인 수령을 기념하기 위해 송덕비나 불망비를 세우곤 하였다. 심의신 영세불망비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에서 충주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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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에서 전통시대에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해 지극한 정성을 다한 부녀자. 열녀란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한 부녀자로 일반적으로 열녀와 열부(烈婦)를 통칭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충효열 관념이 삼강오륜(三綱五倫)이라는 형태로 정치적·사회적 규범으로 체계화되면서 열녀는 사회적인 중요성을 강화해갔다.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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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오병선의 선정비. 오병선(吳秉善)은 1860년(철종 11) 순강원수봉관(順康園守奉官)을 거쳐 음성현감에 부임, 1870년(고종 7) 서산군수(瑞山郡守)로 자리를 옮겼다. 1873년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에 부임했다. 선정비는 1866년(고종 3)에 세워졌고, 현재 음성향교 앞에 다른 비석군들과 함께 있다. 상단이 둥글게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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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응용(應龍)·응기(應祈). 옹몽진은 순창옹씨 시조이다. 원래 옹몽진의 선조는 고려 때 교목세신(喬木世臣)의 거족이었으나 조선 개국에 반대하여 이성계의 미움을 받아 서인이 되었다. 옹몽진은 음성향교지기를 지내다가 1553년(명종 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56년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67년 판관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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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 운곡서원 입구에 세워진 조선시대 하마비. 하마비는 그 앞을 지날 때에 신분의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내용을 새긴 석비(石碑)이다. 주로 관아(官衙), 향교(鄕校), 서원(書院), 사우(祠宇) 등의 입구나 능묘(陵墓) 앞에 세워져 경의를 표하도록 하였다. 음성군에는 운곡서원(雲谷書院) 외 음성향교(陰城鄕校), 지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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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우리나라에 유교가 언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유교 경전의 교육과 사서(史書) 편찬 등이 이루어졌음을 볼 때 이때 이미 유교가 문화적 요소로서 중요하게 인식되었음은 분명하다. 불교가 성행하였던 고려시대에도 국가 이념과 체제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유교의 이념은 상당히 중요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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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동안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양사상을 지배하여 온 유교는 인(仁)으로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며 정치학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 이후 고려를 거치면서 조선왕조로 들어와 국가 지배 이념으로 기능하기도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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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통일신라 또는 고려 전기의 모전석탑. 음성 오층모전석탑은 원래 읍성읍 읍내리 교동 음성향교 앞 도로 건너편에 있었던 폐사지에 있었다. 그러다가 1946년에 수봉초등학교 교정으로 옮겨졌다. 그 후 1995년 현재의 위치인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향토자료전시관 서쪽 광장에 자리 잡게 되었다. 단층으로 되어 있는 기단은 2매석으로, 사각형의 지대를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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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의 중북부에 위치한 군. 동쪽으로는 충청북도 충주시, 서쪽으로는 경기도 안성시와 충청북도 진천군, 남쪽으로는 충청북도 괴산군과 충청북도 증평군, 북쪽으로는 경기도 이천시와 각각 접하고 있어 경기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룬다. 음성군의 동쪽 끝은 소이면 문등리로 동경 127° 48′ 42′′, 서쪽 끝은 대소면 내산리로 동경 127° 48′ 50′′, 남쪽 끝은 원남면 문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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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속하는 행정구역. 본래 음성군 동도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근서면과 남면의 일부, 충주군 맹동면·사이포면의 일부를 병합하여 음성면으로 개칭되었다. 1956년 음성면이 음성읍으로 승격되었다. 동쪽에 가섭산[710m]과 수정산이 솟아 있으며, 서쪽에는 소속리산[432m], 남쪽에는 사향산[342m], 북쪽에는 부용산[644m]이 있어 사방이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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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지방 국립 교육 기관. 조선시대 음성 지역의 지방교육을 담당했던 음성향교는 1560년(명종 14) 지금의 음성읍 석인리에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1647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대성전 정위에는 공자(孔子)를 모시고, 양편에는 4성(四聖), 곧 안자(顔子)·증자(曾子)·자사(子思)·맹자(孟子)를 배향하고, 동벽과 서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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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대성전에서 제향하는 의례. 음성향교 주관으로 매년 봄(음력 2월 초정일)과 가을(음력 8월 초정일)에 음성군 유림회원과 음성군 관내 기관장, 각급 학교 학생들이 참여하여 음성향교 대성전에 모신 중국 선현 19위와 한국 선현 18위에 지내는 유교제례이다. 대성전 정위에 공자를 모시고 그 양편에 안자, 증자, 자사, 맹자와 공자의 10제자인 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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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조선시대 하마비(下馬碑). 음성향교 하마비는 그 앞을 지날 때에 신분의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말을 새긴 석비(石碑)이다. 주로 관아(官衙), 향교(鄕校), 서원(書院), 사우(祠宇) 등의 입구나 능묘(陵墓) 앞에 세워져 경의(敬意)를 표할 수 있게 한 비석이다. 음성군에는 음성향교(陰城鄕校),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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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신라 경덕왕 16)에서 1895년(고종 32)까지 충청북도 음성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음성은 잉홀(仍忽)·설성(雪城)·잉근내(仍劤內)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음성현의 지명으로는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의 향교말과 감원역에서 유래한 역말 등이 남아 있고 음성향교가 아직 현존하고 있지만 음성현시대의 유적과 유물 등은 거의 사라졌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확대된 영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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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에 속하는 법정리. 음성군청이 들어서 있어 읍내가 되었다. 본래 음성군 동도면(東道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읍상리(邑上里)·읍하리(邑下里)·역촌(驛村)과 평촌(平村)·남촌(南村)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읍내리가 되었다. 1956년 7월 8일 음성면이 읍성읍으로 승격되었다. 동쪽에 수정산[393m]이 있으며, 수정산 위에는 향교말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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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주목사 이국헌의 선정비. 이국헌(李國憲)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문숙(文叔)이다. 부친은 이여연(李汝淵)이다. 1660년(현종 1) 증광시(增廣試)에 생원 3등 45위로 입격하였다. 1676년(숙종 2) 호조정랑(戶曹正郞), 문의현령(文義縣令), 부사과(副司果), 이듬해 금산군수(錦山郡守)를 역임했다. 1683년(숙종 9)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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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이세근의 선정비. 이세근의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성진(聖珍)으로 이지걸(李志傑)의 아들이다. 1697년(숙종 23) 문과정시 을과 2위로 합격하였다. 1699년 지평(持平)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과거 파방(罷榜)에 대한 상소로 말미암아 음성현감으로 좌천되었다. 1707년(숙종 33) 정언, 교리, 수찬 등 청요직(淸要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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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이숭운의 선정비. 이숭운의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사진(士鎭), 호는 존암(存庵)으로 서울 태생이다. 부친은 성균관사성 이수덕(李壽德)이다. 1759년(영조 35) 식년시 진사 3등 30위로 입격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년) 만녕전참봉(萬寧殿參奉)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현릉참봉, 1781년(정조 5)에 음성현감으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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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조선 후기의 음성현감 이연긍의 선정비. 이연긍은 1858년(철종 9) 현륭원참봉(顯隆園參奉)을 거쳐 1865년(고종 2) 음성현감에 부임했다. 1866년에는 안산군수(安山郡守)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1867년 4월 공충도암행어사(公忠道暗行御史) 홍철주(洪澈周)가 올린 글에 음성현감 재직 때 백성들의 송사를 공평하게 처리하고 이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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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음성현감 이원긍의 선정비. 이원긍 선정비는 이원긍 청백애민선정비(李源兢 淸白愛民善政碑)라고도 하며, 1927년에 세워졌다. 이원긍은 1874년(고종 11)에 음성현감이었는데,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리(公履), 호는 취당(取堂)으로 괴산 출신이다. 이두진(李斗鎭)의 아들이며, 조선 말기 3대 국학자의 하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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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이종청의 선정비. 이종청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일(仲一)로, 서울 태생이다. 부친은 승정원우승지(承政院右承旨) 이위달(李渭達)이다. 1837년(헌종 3) 식년시 진사(進士) 3등 27위로 입격하였다. 1844년(헌종 10) 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으로, 이듬해 음성현감에 부임하였다. 선정비는 1849년(헌종 15)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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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음성현감 이철응의 선정비. 이철응은 조선 고종 때 음성현감을 지냈다. 그 외의 자세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선정비는 1885년(고종 22)에 세워졌고, 현재 음성향교 앞에 다른 비석군들과 함께 있다. 1단 비석으로 비신(碑身)의 총 높이는 114㎝이며, 앞면의 폭은 42㎝, 측면의 두께는 16㎝이다. 비신 앞면에는 ‘현감이후철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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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음성군수 이해용의 기념비. 이해용 기념비는 1929년에 세워졌고, 현재 음성향교 앞에 다른 비석군들과 함께 있다. 전체 높이는 182㎝이며 비신(碑身)은 높이가 129㎝, 앞면의 폭 50㎝, 측면의 두께가 22㎝이다. 가첨석(加檐石)은 높이 53㎝이며 앞면의 폭은 79㎝, 측면의 두께가 58㎝이다. 비석 앞면에는 ‘군수이후해용청덕기념비(郡守李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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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인상의 효자비. 정인상의 본관은 초계(草溪)이며, 호는 위은(渭隱)이다. 어려서부터 효심이 극진하였다. 정인상은 새로운 음식이 생기면 먼저 어른에게 드렸고 아침, 저녁에는 반드시 문안을 올리는 등의 효행을 하였다. 8대에 걸친 조상의 묘소를 치산하고 비석을 세우기도 하였다. 또한 후진 양성을 위하여 일옥도장을 세우고 후세를 교육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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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유림지도자. 위은(渭隱) 정인상(鄭寅尙)의 맏아들로 자는 성윤(聖倫), 호는 구봉(九奉)이다. 정조헌은 재주가 뛰어나고 영특하여 3세 때 천자문(千字文)을 통달하고 20세까지 도장제(道莊齊)에서 한학(漢學)을 깊이 연구하였다. 그 후 가사에 종사하면서 마을 이장직을 23년간 맡아 주민복지에 헌신하였으며 한약방을 경영하면서 30여 년 동안 연말마다 전국 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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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유학자 정조헌(鄭祖憲)을 기리는 비. 음성향교 전교(典校)였던 정조헌(鄭祖憲)의 본관은 초계이며, 자는 성륜(聖倫)이고, 호는 구봉(九峯)이다. 시조 광유후(光儒候)의 31세손이고 효자 위은 정인상(鄭寅尙)의 아들로, 어머니는 효부 현풍곽씨이다. 정조헌은 평생 윤리와 도덕을 몸소 실천하고 유도(儒道) 진흥에 심신을 바쳤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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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정현석의 선정비. 정현석은 철종 대의 음성현감이었으며, 자세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비문으로 보아 음성현감 재직 때 선정을 베풀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정비는 1860년(철종 11)에 세워졌고, 현재 음성향교 앞에 다른 비석군들과 함께 있다. 총 높이는 129㎝이며 비신과 개석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신(碑身)은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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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소여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족지골은 음성읍에서 서북쪽으로 약 5㎞ 떨어진 소여1리의 남쪽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자연 마을이다. 서북쪽으로는 같은 소여1리의 자연 마을인 산양재가 있고, 동쪽으로는 신천1리의 자연 마을인 냇말이 있다. 음성읍 읍내리의 음성향교 뒷산이 옥녀봉인데, 이 옥녀봉에 비유하여 옥녀의 족집게에 해당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족지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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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 지천서원 입구에 세워진 하마비(下馬碑). 하마비는 그 앞에서는 신분의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석비(石碑)이다. 주로 관아(官衙), 향교(鄕校), 서원(書院), 사우(祠宇) 등의 입구나 능묘(陵墓) 앞에 세워 경의(敬意)를 표하게 하였다. 음성군에는 지천서원(知川書院), 음성향교(陰城鄕校), 운곡서원(雲谷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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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초징명의 선정비. 선정비는 1868년(고종 5)에 세워졌고, 현재 음성향교 앞에 다른 비석군들과 함께 있다. 총 높이는 127㎝이며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91㎝, 앞면 45㎝, 측면 18㎝이고, 개석(蓋石)은 높이 91㎝, 앞면 45㎝, 측면 18㎝이다. 비신 앞면에는 ‘현감초후징명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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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신천리에 있는 산. 품자산은 산의 세 봉우리가 品(품)자 모양이라서 붙여진 이름이고 품자산의 다른 명칭인 정자산은 오리정(梧里亭)이라는 정자가 있어서 유래된 이름이다. 신천리 석명동 돌명이는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뒤에 있는 옥녀봉의 거울에 해당된다고 한다. 돌고개(석현 또는 분티)는 주막거리에서 초천리 풋내(초촌)로 가는 고개로 돌이 많다는 데서 유래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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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 있는 현풍곽씨의 효열 행적을 기리는 비. 1969년 성균관 유림에서 추천하여 정인상의 아들인 정조헌이 1978년 건립한 비각인 상모각(常慕閣) 안에 시아버지인 효자 정일옥의 효자비, 정규영 효자비, 남편인 정인상 효자비와 함께 놓여 있다. 비 앞면에는 ‘효부유인현풍곽씨기적비(孝婦孺人玄風郭氏紀蹟碑)’라고 쓰여 있다. 현풍곽씨의 효열 사실은 『한국효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