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5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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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伏農樂 |
영어음역 | Yongbok Nongak |
영어의미역 | Farmer's Music and Dance of Yongbok Village |
이칭/별칭 | 두레 풍물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대룡2리 |
집필자 | 이석호 |
소멸 | 1970년대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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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장소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대룡2리 |
성격 | 풍물놀이 |
노는 시기 | 연중 |
관련 의례 행사 | 두레|지신밟기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대룡2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풍물놀이.
[개설]
용복농악은 김천시 대항면 대룡2리 용복마을에서 두레의 전형을 잘 나타내고 있는 민속놀이이다. 이를 ‘두레 풍물’이라고도 한다. 김천시 대항면 대룡2리 용복마을은 예부터 논농사가 발달한 지역으로 벼농사와 관련된 농경 문화가 잘 전승되어 온 마을이다. 용복농악의 대표적인 사례가 이웃한 신평마을과의 줄다리기로 매년 정월 대보름을 전후한 시기에 전 동민이 참가해 줄을 당기고 이때 응원을 겸해 풍물을 울렸던 것이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용복농악은 농기, 꽹과리, 장구, 북, 징, 소고 등이 필요하며 정월 대보름과 단오, 마을 잔치 때 마을 입구나 농가, 줄다리기 장소인 강변 등에서 주로 행해졌다.
[놀이 방법]
풍물패의 구성은 농기, 꽹과리, 장구, 북, 징, 소고 그리고 포수, 총각, 처녀 등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어느 지역이나 그러하듯이 마을 사람들 전원이 풍물에 참여하며, 풍물을 치는 사람은 상쇠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일정한 담당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용복농악은 다른 지역보다 소고놀이가 발달하여 정월 보름이나 기예를 보여 주기 위하여 판굿을 벌이는 날이면 12발 상모를 돌렸다고 한다. 복장은 삼색 띠에 바지저고리를 입었으며, 농기는 ‘농자천하지대본’이라 쓴 깃발을 길게 늘어뜨려 풍물패를 인도하는 위치에 선다. 풍물은 음력 정월에 날을 정하여 ‘마당밟기’를 하는데 다른 지역에서 행하는 ‘지신밟기’와 같은 것이다.
풍물을 치는 날은 이른 새벽에 종을 울려 마을 회관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한다. 이때 용복마을 뿐만 아니라 왕대, 신평, 세송, 죽전 등 이웃 마을 사람들도 다 모여든다. 그 이유는 용복마을이 인근 마을까지 합쳐서 중심이 되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인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유지들이 낸 찬조금으로 술을 한잔씩 마신 후 풍물패의 장단에 맞추어서 한판 신나게 논다. 이후 각 마을의 깃발을 앞세우고 마을별로 패를 지어서 마당밟기를 할 장소로 이동하는데 굿가락은 질매구로서 느린 듯 하면서 어깨춤이 절로 나는 가락이다.
장소에 도착해서는 먼저 깃발을 꽂고 풍물을 한 번 허드러지게 친다. 한 집의 일이 끝나고 다음 집으로 옮겨 갈 때에도 예외 없이 풍물과 깃발을 앞세우고 이동한다. 마당밟기가 끝나고 날이 어두워지면 깃발과 풍물을 앞세운 각 마을 풍물패는 아침에 모였던 자리로 돌아온다. 일찍 돌아온 마을은 풍물을 계속 치면서 놀고 있거나 휴식을 취하면서 다른 마을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현황]
일제 강점기 초까지 김천시 대항면 지역을 대표하며 전승되던 용복농악은 1930년대 말 일제가 군중이 모이는 것을 경계하여 이 마을의 줄다리기를 금지시킨 후 풍물도 함께 쇠퇴하기 시작했다.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다가 1970년대 이후 공식적인 마을 풍물은 자취를 감추었다. 현재 확인이 가능한 용복농악의 마지막 풍물 단원은 상쇠 안태근, 종쇠 김택구, 장고 이안수, 징 조현목, 북 김경상, 소고 이재수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