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04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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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弘奇 |
영어음역 | Hong Gi |
영어의미역 | Hong G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윤용혁 |
[정의]
신라 말 고려 초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호족.
[홍기와 공주]
견훤과 궁예가 대결하는 후삼국기, 공주는 양대 세력이 마주하는 접점에 위치하여 있었다. 이 때문에 공주는 때로는 남쪽의 견훤에, 때로는 북쪽의 궁예나 왕건의 세력권에 들었다. 이때 공주의 실제적 지배자는 ‘공주장군’으로 지칭된 홍기(弘奇)였다. 처음에는 견훤에 가까웠으나 중부 지역에서 궁예가 흥기하여 경상도 상주 등지까지 세력을 확대하면서 궁예의 휘하에 있던 이흔암(伊昕巖)이 공주를 습격하자 905년에 공주는 궁예에 귀부하였다.
918년 궁예가 왕위에서 축출되고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자 공주는 다시 후백제 권역으로 넘어갔다. 927년 즉위 10년이 된 고려 태조 왕건은 공주를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태조 17년인 934년 왕건은 충청남도 서부의 요충인 홍주를 장악하였다. 이에 따라 충청남도의 많은 지역이 고려에 붙게 되었는데, 이때 공주도 고려의 세력권에 들게 되었던 것 같다.
웅주라 칭해지던 공주가 ‘공주’로 지명이 바뀌는 것이 946년(태조 23)의 일이었다. 따라서 ‘공주’라는 지명이 그 이전에 ‘공주장군’ 홍기에 의하여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웅주장군’이라 하다가 후대에 ‘공주장군’으로 개필되면서 붙은 것인지도 분명하지는 않다.
여초의 공신 호족들이 새로운 성씨를 갖게 될 때, 홍기 역시 새로운 성명으로 개칭하였을 것이지만, 어떤 성씨를 칭한 것인지 알 수 없다. 15세기의 자료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공주의 토성(土姓)으로 이(李)·정(鄭)·송(宋)·박(朴)·황(黃)·고(高)·임(任) 등 7개 성이 열거되고 있는데, 그 중의 한 성씨일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