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16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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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之産 |
영어음역 | Jeong Jisan |
영어의미역 | Jeong Jisan |
이칭/별칭 | 언평(彦平),포신(逋臣),포옹(逋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고순영 |
[정의]
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효자.
[가계]
본관은 진주. 자는 언평(彦平), 호는 포신(逋臣) 또는 포옹(逋翁)이다. 생부는 홍주목사 정효안(鄭孝安)이며, 어머니는 진주유씨이다. 우의정을 지낸 종숙(從叔) 정분이 후사 없이 죽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정효안이 자신의 장남인 정지산을 정분의 계자로 입양시켰다.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학문이 깊어 이름을 떨치더니 1445년(세종 27)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450년(문종 원년) 호조정랑에 임명되는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때 양부인 정분이 죽자 벼슬을 버리고 공주 동혈(同穴)에 들어갔다. 세조가 정지산의 재주를 아껴 몇 번이나 불렀으나 끝까지 나가지 않았으며, 단종이 비명에 죽자 옛 임금을 사모하여 1459년(세조 5) 김시습과 함께, 단종 및 단종을 위해 죽은 충신들의 넋을 동학사 초혼각에 제향하였다.
그 뒤의 행적은 자세히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 삼남 정세구의 사마시 합격 기록에는 사헌부감찰로 되어 있다. 산채를 캐고 물고기를 잡아 숙모전의 제향을 받들면서 「채미가(採薇歌)」와 「자규사(子規詞)」를 지어 읊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조 때에 동학서원에 배향되었으며, 1904년 초혼각이 숙모전으로 사액되면서 동무(東廡) 위차 20에 배향되었다. 이듬해인 1905년에 자헌대부내부대신(資憲大夫內部大臣)으로 증직됨과 동시에 충신·효자로서 정려가 내려졌다. 1982년 정분의 충과 정지산의 효를 기린다는 의미의 충효사가 지어져 그들을 배향하고 있으며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유형 제18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