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7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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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龜晉 |
영어공식명칭 | Jeong Guji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문다성 |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광주 지역 출신으로 사헌부집의, 형조참의, 강원도관찰사, 이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정구진(鄭龜晉)의 본관은 광주(光州)이고, 할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 정신호(鄭臣扈)이다.
정구진은 1382년(우왕 8) 생원시에 장원으로 입격하고 곧이어 문과에 급제하여 출사하였다. 1394년(태조 3) 2월 문하부기거주(門下府起居注)에 재직하던 중, 공양왕(恭讓王)의 세 부자(父子) 등 왕씨 인물들을 제거하는 일을 주청하였다가 대간과 형조의 탄핵을 받았다. 이후 장령(掌令) 등의 관직을 거쳐 1409년(태종 9)에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에 임명되었다. 이 당시 재산 분쟁인 최수미(崔須彌) 사건을 올바르게 처리하지 못한 것으로 우사간대부(右司諫大夫) 유겸(柳謙)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423년(세종 5)에 좌사간(左司諫)과 형조참의(刑曹參議)를 지냈으며, 1425년(세종 7) 강원도관찰사(江原道觀察使)로 부임하였다. 1426년(세종 8년)에 이조참의(吏曹參議)가 되었다. 정구진은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정구진은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