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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5444
한자 同志
이칭/별칭 동지가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유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창작|발표 시기/일시 1985년 12월~1986년 2월연표보기 - 「동지」 창작
성격 민중가요
작곡가 박철환
작사자 박철환

[정의]

1985년과 1986년 사이에 전남대학교 전기공학과에 재학 중이던 박철환이 학생운동의 현장인 집회나 시위에서 부르기 위하여 만든 민중가요.

[개설]

박철환에게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에 시민군으로 활동하였던 형과 전남대학교 총여학생회 회장으로 활동하는 누나가 있었기 때문에 5.18민주화운동은 박철환에게 먼 역사가 아니었다. 1985년 전남대학교에 입학한 박철환은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에 합류하게 되었다. 박철환은 독서 클럽으로 위장한 '황토'에 들어가 『역사란 무엇인가』, 『철학이야기』, 『페다고지』등 이른바 사회과학 서적을 읽으며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1985년도 전라남도 광주에는 5.18민주화운동 진상 규명으로 많은 시위가 있었다. 박철환도 시위에 참여하며 여러 민중가요를 불렀다. 자신도 현장에서 부를 수 있는 민중가요를 작곡하고 싶었던 박철환은 1학년 겨울방학 동안에 기타를 치면서 선율을 만들고 가사을 붙여 「동지」를 완성하였다.

[공연 상황]

한 번 불리기 시작한 「동지」전남대학교 내에서 빠르게 확산되었다. 1986년 전남대학교를 방문하였던 숙명여자대학교 학생들이 「동지」를 듣고 악보를 부탁하면서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1987년 대학을 떠나 농민운동에 투신한 박철환은 전국의 농민운동 현장을 다니면서 자신이 만든 노래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익명이 안전한 시대였기 때문에 「동지」는 30여 년간 작자 미상인 채로 불리고 있었는데, 현장에서 가끔은 자신이 만든 곡이라고 말하여도 믿지 않았다고 한다. 2015년 5.18기념재단이 노래 수집 과정 중 「동지」의 작사가와 작곡가가 박철환이라는 사실을 공식 확인하였다.

[구성]

A-B-C[22마디], 변형된 세 도막 형식이다.

[내용]

「동지」의 가사

1.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에도

부딪혀 오는 거센 억압에도

우리는 반드시 모이었다 마주 보았다

살을 에는 밤 고통받는 밤

차디찬 새벽 서리 맞으며 우린 맞섰다.

사랑 영원한 사랑 변치 않을 동지여

사랑 영원한 사랑 너는 나의 동지

2.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도 우리가 먼저 죽는다 해도

그 뜻은 반드시 이루리라 승리하리라

통일되는 날 해방되는 날

희망찬 내일 위해 싸우며 우린 맞섰다

투쟁 영원한 투쟁 변치 않을 동지여

투쟁 영원한 투쟁 너는 나의 동지

[의의와 평가]

혼자서는 겁나는 혁명, 투쟁, 시위도 뜻을 같이하는 동지가 있으면 힘이 난다. 「동지」는 농민운동, 교육운동,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서로에게 위안을 주고 힘을 주는 대표적인 노래가 되었다. 특히 가사에서 치열함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데, 음악적으로는 깡총 리듬이 많이 사용되었고 4/4박자의 행진곡풍이라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사에서 느낄 수 있는 치열성이 있는데, 이는 실제 학생운동의 현장에 있었고 후에 농민운동에 투신할 정도로 헌신적인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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