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468
한자 大亭洞-群
영어공식명칭 Menhirs of Daejeong-dong
이칭/별칭 대정동 입석군,오인석,오돌이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대정동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강재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대정동 선돌군 1호 - 경상북도 경산시 대정동 506-5 지도보기
현 소재지 대정동 선돌군 2호 - 경상북도 경산시 대정동 504-2 지도보기
현 소재지 대정동 선돌군 3호 - 경상북도 경산시 대정동 646-1 지도보기
현 소재지 대정동 선돌군 4호 - 경상북도 경산시 대정동 267-1 지도보기
현 소재지 대정동 선돌군 5호 - 경상북도 경산시 대정길 45-6[대정동 665]지도보기
현 소재지 대정동 선돌군 6호 - 경상북도 경산시 대정길5길 8-1[대정동 716]지도보기
성격 선돌
관련 인물 정동구
크기(높이,길이,둘레) 215㎝[1호 높이]|50~100㎝[1호 너비]|40㎝[1호 두께]|350㎝[2호 높이]|80㎝[2호 너비]|50㎝[2호 두께]|210㎝[3호 높이]|80㎝[3호 너비]|40㎝[3호 두께]|350㎝[4호 높이]|80㎝[4호 너비]|50㎝[4호 두께]|185㎝[5호 높이]|58㎝[5호 너비]|42㎝[5호 두께]|110㎝[6호 높이]|115㎝[6호 너비]|20㎝[6호 두께]
관리자 경산시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대정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선돌군.

[개설]

대정동 선돌군경상북도 경산시 대정동 마을 안과 인근 논밭에 산재하여 있는 청동기 시대 신앙 및 의례 유적이다. 모두 6기가 확인되는데, 마을 사람들은 선돌들을 ‘오돌이’ 또는 ‘오인석’ 등으로 부르고 있다. 조선 말에 어질고 효성이 지극하기로 이름난 마을의 동래 정씨(東萊 鄭氏) 오형제를 기리기 위해 정려각을 세우고 선돌에 글을 새긴 데서 연유한 이름이라고 한다.

[건립 경위]

대정동 선돌군은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대정동 일대에 거주하던 청동기 시대 사람들에 의해 신앙의 대상물로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위치]

대정동 선돌군동래 정씨 세거지인 대정동 마을 북편의 하천 변을 따라 분포하며, 마을 주변에서 3기, 마을 동편 들판에서 3기가 확인된다. 선돌군 때문에 예전에는 마을 이름을 ‘선돌’이라고도 불렀다. ‘선돌’이라는 마을 이름은 선돌이 소재한 여러 마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지명이다. 한편, 대정동과 인접한 대평동 일대는 금호강으로 합류하는 남천의 동쪽에 해당하는데, 경산 지역에서도 손꼽히는 큰 들판이 형성된 곳이다.

[형태]

대정동 선돌군에는 모두 6기의 선돌이 있다. 장방형의 화강암을 사용하였으며, 동쪽에서부터 번호를 부여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호[대정동 506-5]는 선돌 가운데 가장 동쪽에 위치한다. 크기는 높이 215㎝, 너비 50~100㎝, 두께 40㎝ 정도이다. 북쪽 면에 ‘오인석(五人石)’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2호[대정동 504-2]는 1호에서 서쪽으로 100m 정도 떨어져 있다. 크기는 높이 350㎝, 너비 80㎝, 두께 50㎝ 정도이다. 북쪽 면에 ‘죽정노인만다(竹亭老人晩茶)’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여기서 '죽정'은 대정동의 옛 이름이다.

3호[대정동 646-1]는 2호에서 서쪽으로 90m 정도 떨어져 있다. 크기는 높이 210㎝, 너비 80㎝, 두께 40㎝ 정도이다. 북쪽 면에 ‘풍락현(豊樂峴)’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4호[대정동 267-1]는 3호에서 서쪽으로 200m 정도 떨어져 있다. 크기는 높이 350㎝, 너비 80㎝, 두께 50㎝ 정도이다. 남쪽 면에 ‘구재정공유허(求齋鄭公遺虛)’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인근에 구재(求齋) 정동구(鄭東龜)의 효자각이 있다.

5호[대정동 665]는 4호에서 서쪽으로 82m 정도 떨어져 있다. 동래 정씨 재실 내에 있으며, 옆에는 당목인 회화나무가 있다. 크기는 높이 185㎝, 너비 58㎝, 두께 42㎝ 정도이다. 형태는 상단보다 하단의 너비가 넓은 사다리꼴이다. 북쪽 면에는 직사각형의 홈을 내고 ‘풍영대(風詠臺)’라는 명문을 새겨 놓았다.

6호[대정동 716]는 원래 3호와 4호 사이에 있었다고 하나 마을 동남편 어귀로 옮겨져 표지석으로 사용되었다. 페인트로 ‘대정 4-H’라고 쓰여 있었는데, 현재는 지워진 상태이다. 크기는 현재 높이 110㎝, 너비 115㎝, 두께 20㎝ 내외이다.

[의의와 평가]

대정동 선돌군은 청동기 시대에 신앙의 대상물로 세워졌으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성격이 변하여 갔다. 선돌은 보통 후대로 가면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동제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개인의 소망을 기원하는 신물로 숭배되기도 하는데, 대정동 선돌군의 경우 정려각과 함께 효자를 기리는 용도로 사용된 점이 주목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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