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1754
한자 上方洞 選鑛場
영어공식명칭 Ore Dressing Plant in Sangbangdong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상방동 118-2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동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43년경 - 상방동 선광장 건립 추정
훼철|철거 시기/일시 1945년 - 상방동 선광장 운영 중단
현 소재지 상방동 선광장 - 경상북도 경산시 상방동 118-2 지도보기
성격 산업 시설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상방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선광장.

[개설]

상방동 선광장경상북도 경산시 평산동에 있던 코발트 광산에서 채굴된 코발트 원석을 선광·제련하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지하자원 수탈 현장이다. 평산동 광산에서 채굴된 코발트 원석은 삭도를 통해 상방동 선광장으로 보내진 다음, 코발트로 제련되어 다시 삭도로 경산역까지 운송되어 반출되었다.

[위치]

상방동 선광장경상북도 경산시 상방동 백자산 자락에 있다. 코발트를 채굴하던 평산동 광산과 선광·제련 시설인 상방동 선광장, 코발트 반출의 창구였던 경산역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평산동 광산에서 상방동 선광장까지 거리는 약 2㎞이고, 상방동 선광장에서 경산역까지 거리는 약 1.5㎞이다.

[변천]

상방동 선광장은 1943년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상방동 선광장에 코발트 원석을 공급하였던 평산동 광산은 원래 일본 광업인 니노미야 다이조[二宮泰三]가 금과 은을 채굴하기 위해 1937년 개설한 광산이다. 그런데 1942년 평산동 광산에서 코발트 광맥이 발견되면서 1943년에 코발트 채광·선광·제련 시설을 갖추었다고 한다. 코발트 발견 이후에는 금·은을 대신하여 코발트가 광산의 주요 채광물이 되었다. 코발트는 부식에 강해 태평양전쟁에 필요한 군수 물자를 제조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1945년 광복 직전 광산이 폐광되면서 선광장도 함께 방치되었다.

[형태]

상방동 선광장의 부지는 약 1만여㎡에 달하며, 대형 콘크리트 수조들이 백자산 자락을 따라 계단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선광장 중심 구조물의 중간 부분에는 철제의 높은 엘리베이터 형식 구조물이 있었지만, 현재는 터만 남았다. 수조는 원형 또는 사각형의 형태로 깊이와 너비가 사람 키만 하다. 일부 수조들이 땅에 묻혀 있어 육안으로 정확히 셀 수 없지만, 수십여 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상방동 선광장은 1945년 광복 직전에 코발트 광산이 폐광되면서 함께 방치되었다. 오랜 기간 방치된 결과, 2020년 현재 선광 시설이 훼손될 위험에 놓여 있다. 특히 5개 층 중 1개 층이 완전히 훼손되거나 일부만 남아 있어 보존 조치가 시급하다.

[의의와 평가]

상방동 선광장은 근대기 선광장이 보존된 매우 드문 경우이다. 코발트 선광장의 공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보전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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