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1041
한자 聖堂
영어공식명칭 Roman Catholic Church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주용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함양성당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함양로 1165[교산리 977-6]지도보기
안의선교성당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허삼둘길 3[금천리 195-1]지도보기
개념용어(일반)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내에 있는 천주교인들의 전례 및 집회장소.

[함양 지역 공소의 변천]

1839년 기해박해 때, 충청도 연산에 살던 교우들이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서하면의 산록에 5~6세대가 피하여 집단거주하면서 천주교 교우촌을 이루었다. 이곳의 교우들은 이후 전라북도 장수지방에 피난하였던 최양업(토마), 리우빌(lieuville), 보두네, 블량백, 두세정 등의 신부들 순방전교에 지도를 받았다. 1883년에 대운암 공소 및 터골 공소로 명명되어 신앙을 지켜왔고 1889년에는 대운암 공소 신자들은 이웃 마을 터골과 옥환으로 옮겨가 터골 공소[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운곡리 기동부락]로 합치게 되었다. 1894년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300여 명에 달하는 많은 교우들이 함양 지역으로 넘어왔고 그중에 일부는 함양 지역에서 정착하였다. 1901년 이래 설립된 능경 공소[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경백리 평촌마을]를 비롯한 대맛 공소[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대덕리 죽장부락, 1909년], 마평 공소[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광평리], 안의면 음전 공소[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춘전리 음전부락], 백전면 섭자리 공소, 서하면의 옥고리실 공소, 수동면 용수막 공소는 전라북도 진안군의 어은동 성당 관할하에서 신앙생활을 영위하였다.

[함양 지역 성당의 변천]

교세가 계속적으로 성장하게 되자 일제 강점기인 1911년 5월에 설립된 대구교구에서는 1913년 4월 26일 이상화(발토로메오) 신부를 주임신부로 함양본당[원교성당]이 설립하게 되었다. 신도 회장은 최학조가 맡았다. 이전에 대맛 공소에서 매입하였던 학교 건물을 개조해서 임시성당으로 사용하며 전교활동을 하였다. 정식 건물은 1938년에 5대 박재수(朴在秀) 주임신부 때 신축공사를 착공하였고 1940년에 완공되었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함양 읍내에 ‘소화 유치원’을 개설하여 지역 아동 교육에 힘썼다. 1965년에는 그동안의 교세 확장으로 함양성당의 관할이던 산청지역을 분리하여 본당으로 승격시키기도 하였다. 하지만 원교성당은 읍내와 떨어져 있다는 지리적 여건으로 발전에 한계가 있었다. 그리하여 1970년에 14대 김석좌 주임신부가 교산리에 최학주 회장이 헌납하였던 대지에 성전을 지어 이주하였다. 함양본당은 대구교구 신설 후 첫 본당이다. 안의선교본당은 안의공소에서 시작되었는데 21대 이창섭 주임신부 때 안의공소가 신축되었다. 2008년 9월에는 안의공소의 사제관 건립을 위한 기공식이 있었다. 그 후에 2009년 1월에 안의공소는 함양성당에서 분리되어 안의선교성당으로 개편되었으며 안의성당과 인근 거창군의 위천성당을 관할하고 있다.

[현황]

2018년 기준 경상남도 함양군 내에는 함양읍에 함양성당, 안의면안의선교성당 2곳이 설립되어 있고 주임신부가 1명씩 파견되어 있다. 함양성당에는 5개의 공소가 있으며 안의선교성당은 거창군 위천공소를 담당하고 있다. 함양성당의 신자 수는 2018년 기준 2,537명이고, 안의선교성당은 신자 수가 511명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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