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도요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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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교철(金敎哲)[1880~1955]은 1880년 7월 27일에 태어났다. 1911년 배재학당, 1912년 피어슨 성경학원 등에서 수학하였다. 1914년에 공부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장진의숙을 설립하였으며, 남양교회 담임전도사로 활동하였다. 1919년 4월 3일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일대에 만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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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덕근(金德根)[1889~1958]은 1889년 5월 13일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일대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군중들과 함께 장안·우정면의 면사무소를 파괴하였으며, 인근의 쌍봉산(雙峯山)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화수리(花樹里) 경찰주재소를 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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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덕삼(金德三)[1876~1962]은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출신으로, 1919년 4월 3일 일어난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시작되었다. 시위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안면사무소로 행진하였으며, 이때 김덕삼은 선두에서 장안면사무소를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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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명우(金明友)[1887~1951]는 1887년 1월 14일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일대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만세운동에 참여한 군중들과 함께 장안·우정면의 면사무소를 파괴하였으며, 인근의 쌍봉산(雙峯山)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화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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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명호(金明鎬)[1887~1951]는 1887년 6월 16일 태어났다. 김여근(金汝根)이라고도 불렸다. 김명호는 1919년 4월 3일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長安面水村理)에서 발생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4월 3일의 시위는 수촌리 주민 100여 명이 아침에 밀양산에 모인 뒤, 독립만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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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연방(金然昉)[1881~1919]은 1881년 7월 21일 태어났다. 김연방은 대한제국의 시종원시어(侍從院侍御) 출신으로, 1919년 4월 3일에 화성시 장안면(長安面)과 우정면(雨汀面) 일대의 주민들이 만세시위를 일으키자, 이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에 참여한 군중들은 장안면사무소에 모여 장안면장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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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응식(金應植)[1879~1944]은 1879년 12월 4일 태어났다. 1919년 2월부터 동지들을 모아 독립운동을 하다가, 4월 3일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었다. 시위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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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응오(金應五)[1885~1949]는 1885년 11월 23일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었다. 시위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안면 사무소로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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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종학(金鍾學)[1885~1925]은 1885년 6월 5일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에 일어난 장안·우정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었다. 시위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안면사무소로 행진하였고, 면장 김현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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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김흥삼(金興三)[1882~1938]은 1882년 2월 18일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에 발생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었다. 시위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안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이때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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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김흥식(金興植)[1893~?]은 1883년 12월 22일 태어났다. 김치덕(金致德)으로도 불렸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에 발생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었다. 김흥식은 시위대와 함께 우정면사무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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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일제의 탄압과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개한 민족 해방 운동.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는 한말 일제의 국권 침탈에 대응하기 위해 의병 활동이 일어났다. 1896년 김하락(金河洛)이 일으킨 이천의병에 수원·남양 지역 출신 인물들이 참여하였다. 1907년에는 농민군을 기본으로 하여 경기도 서남 지역의 동학농민운동 잔존 세력, 남양만 일대의 활빈당 세력, 해산 군인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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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백낙열(白樂烈)[1865~1937]은 1865년 12월 20일 수원군 장안면[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에서 태어났다. 1884년 동학에 입교하였으며, 1894년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수원 접주 고석주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1910년에 천도교 남양교구 금융원이 되었으며, 남양교구 강습소를 설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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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백순익(白順益)[1882~1963]은 1882년 9월 16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에 발생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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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에서 4월 사이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 운동. 1919년 3월 1일의 만세 운동은 등불처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중에는 평화적인 시위도 있었지만, 사전 계획에 의해 조직적이고 격렬하게 전개된 만세 운동도 있었다. 화성 지역의 3·1운동은 공세적인 만세 시위 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3·1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시위 운동이다. 시위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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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성호(宋聲浩)[1856~1919]는 1856년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현 화성시 우정읍] 화수리에서 태어났다. 송세진(宋世振)으로도 불렸다. 1919년 4월 3일에 일어난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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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순서(梁順西)[?~1919]는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장안리 출신이다. 1919년 4월 3일 일어난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었다. 양순서 또한 2천여 명의 군중 가운데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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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수산(柳秀山)[1891~1951]은 1891년 11월 20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사곡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사곡리] 442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과 우정면에서는 차희식(車喜植)·차병혁(車炳赫)·차병한(車炳漢)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유수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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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윤영선(尹永善)[1895~1967]은 1895년 3월 16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사무소에 가서 독립만세를 불렀고, 장안면사무소 부근의 쌍봉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우정면사무소로 이동하여 건물을 부수고 서류를 불태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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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이경백(李敬伯)[?~1919]은 1919년 4월 3일에 일어난 우정면(雨汀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시작되었다. 시위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고, 우정면사무소의 집기 및 문서를 파괴하였다. 이어 시위대는 화수리(花樹里) 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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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서 일어난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이경집(李敬集)[1883~1943]은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530번지에서 태어났다. 이정집(李正執)으로도 불렸다. 1919년 3월 28일 송산면사무소 앞에서 홍면옥(洪冕玉) 등이 주동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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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3·1운동을 주동한 독립운동가. 이봉구(李鳳九)[1897~?]는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수촌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735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에서 다수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장안면사무소와 우정면사무소 부근에서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오후 3시 경 우정면사무소에 가서 몽둥이로 면사무소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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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이순모(李順模)[1893~1975]는 1893년 2월 25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수촌리[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69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이봉구(李鳳九)와 함께 몽둥이로 장안면사무소 현관 입구 유리창을 때려 부수고 면사무소의 집기를 가지고 나와 불태웠다. 우정면사무소를 습격하고 군중 2,000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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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이영쇠(李永釗)[1901~?]는 1901년 3월 4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 100번지이다. 1919년 4월 3일 솔선하여 2,000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장안면사무소를 향하여 돌을 던지고 몽둥이로 면사무소의 문을 파괴하였다. 또한 우정면사무소로 몰려가 군중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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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이학서(李鶴西)[1882~1932]는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수촌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1050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기 위하여 장안면사무소로 갔으나, 군중들이 쌍봉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들을 따라갔다. 쌍봉산에서 독립만세를 부른 뒤 우정면사무소로 가서 면사무소를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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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인수만(印壽萬)[1895~1945]은 1895년 5월 5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 417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사무소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난 것을 알고 운동에 참여하기 위하여 갔으나, 면사무소는 이미 불타고 있었다. 다수의 사람들이 쌍봉산으로 올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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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장소진(張韶鎭)[1886~1924]은 1886년 9월 26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에서 태어났다. 장봉래(張鳳來)라고도 불렸다. 장소진은 1919년 4월 3일 차희식(車喜植)·장제덕(張濟悳)과 함께 이영쇠(李永釗) 등에게 ‘오늘 조선의 독립을 목적으로 독립만세를 외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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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장제덕(張濟德)[1882~1937]은 1882년 4월 8일 경기도 수원군 양감면 정문리[현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정문리]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 주곡리[현 경기도 화성시 우정면 주곡리] 53번지이며, 장순명(張順命), 혹은 장순명(張順明)으로도 불렸다. 1919년 4월 3일 차희식(車喜植),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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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정서송(鄭庶松)[1897~1966]은 1897년 1월 3일에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사랑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사랑리] 175번지이다. 정서성(鄭瑞聖), 혹은 정서성(鄭瑞成)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과 우정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군중이 화수리 경찰관주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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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정순영(鄭淳榮)[1868~1944]은 1868년 2월 2일 태어났다. 거주지는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수촌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681번지이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 석포리의 구장직에 있으면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조암 장터에 모인 2,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였고, 장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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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5일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일어난 일제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 1919년 4월 15일 일본군 79연대 소속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와 11명의 보병 및 경관이 함께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의 마을 주민들을 기독교회당에 소집하여 총을 쏘았고, 교회당과 마을에 불을 질렀다. 제암리사건은 기독교 선교사와 미국·영국 총영사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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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5일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일어난 일제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 1919년 4월 15일 일본군 79연대 소속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와 11명의 보병 및 경관이 함께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의 마을 주민들을 기독교회당에 소집하여 총을 쏘았고, 교회당과 마을에 불을 질렀다. 제암리사건은 기독교 선교사와 미국·영국 총영사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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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차병한(車炳漢)[1885~1933]은 1885년 11월 12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 522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이후 전국적인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석포리의 구장으로서 차희식(車喜植)·차병혁(車炳赫)과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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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차병혁(車炳赫)[1889~1967]은 1889년 12월 11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 537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이후 전국적인 만세시위운동이 확산되자, 차희식(車喜植)·차병한(車炳漢)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2일 장안면과 우정면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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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차인범(車仁範)[1901~1922]은 1901년 2월 7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수촌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694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이순모(李順模)·이영쇠(李永釗)·김흥삼(金興三) 등과 장안면사무소와 우정면사무소를 파괴하였다. 또한 화수리 경찰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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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차희식(車喜植)[1884~1938]은 1884년 12월 17일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 주곡리[현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주곡리] 81번지에서 태어났으며, 차봉습(車鳳習), 혹은 차봉습(車奉習)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3월 1일 이후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차희식은 석포리의 구장이었던 차병한(車炳漢), 차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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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최장섭(崔長燮)[1892~1970]은 1892년 12월 5일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 화수리[현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화수리] 103번지에서 태어났다. 최장관(崔長官)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4월 3일 화수리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여 투석전을 벌였고 일본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川端豊太郞]를 처단하였다. 이 사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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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3일 만세 시위꾼들이 대열을 정비하기 위해 모인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에 있는 광장 터.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경기도 화성 우정·장안 지역에서도 만세 시위가 거세게 일어났다. 4월 3일, 주곡리와 석포리, 그리고 수촌리 주민 약 200여 명 정도가 1차 목표지인 어은리 장안면사무소로 향하였다. 시위대는 장안면사무소 건물과 집기류를 파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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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1919년 일어난 3·1운동과 일제의 제암리·고주리 민간인 학살 사건. 1919년 3월 1일의 만세 운동은 들불처럼 전국으로 퍼져 갔다. 그중에는 평화적인 시위도 있었지만, 조직적이고 격렬하게 진행된 시위도 있었다. 화성 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은 전국에서 몇 안 되는 대표적인 공세적 만세 시위 운동으로, 3·1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례이다.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