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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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청동기 시대 돌무덤. 고인돌은 지석묘(支石墓)라고도 하는데, 청동기 시대 대표적인 무덤 형식 중 하나이다. 고인돌이라는 명칭은 큰 돌을 괴고 있다는 뜻의 괸돌[고임돌, 지석(支石)]에서 유래하였으며, 보통 큰 돌을 이용하여 돌상자 모양의 무덤방을 만든 후 무덤방 위에 큰 덮개돌을 올려놓은 형태를 하고 있다. 이러한 고인돌은 일반적인 무덤으로서의 역할 외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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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국화리에 있는 섬. 『한국의 섬』에 따르면, 국화도가 경기도 화성시로 속하게 된 재밌는 일화가 있다. 대한제국 말기에 경기도와 충청도의 경계를 설정할 당시에 어업권 확보에 있어 많은 갈등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화도를 기준으로 하여 표주박을 띄워 경기도와 충청남도 중 어느 내륙에 도달하는지를 보고 행정구역을 정하기로 하였는데, 표주박이 가까운 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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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우정면에서 논에 김을 맬 때 부르던 노래. 경기도 화성시에서 논에 김을 맬 때에는 작업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노래를 부르는데, 「김매는 노래」는 호미로 작업을 할 때 부르던 노동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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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서신면·마도면에 걸쳐있는 반도. 남양반도(南陽半島)는 조선 시대 남양도호부에 속하였던 곳이어서 남양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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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있던 역. 동화역(同化驛)은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있던 역으로, 양재도(良才道)에 속하였다. 한양과 과천, 수원, 충청도를 잇는 역로상에 자리하고 있어 지리적 중요성을 가졌다. 임진왜란 시기에 일본군이 동화역이 속한 양재도를 따라 한양으로 북상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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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를 상징하는 시화. 목백일홍은 크기가 5m이다. 잎은 두꺼우며 마주나기하고 타원형이다. 길이는 2.5~7㎝이며 표면에 윤채가 있다. 뒷면 잎맥을 따라 털이 있으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고, 잎자루는 거의 없다. 원뿔모양꽃차례는 가지 끝에 달리며 길이와 폭이 각각 10~20㎝, 3~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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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다양하게 나타난 무관들의 활약과 여러 전투로 형성된 무향으로서의 화성 지역. 화성 지역은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한강 유역을 수호하는 주요 거점 지역이었다. 삼국 시대에는 한강 유역에 대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최적의 요충지로, 조선 시대에는 적군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주목되었다. 그로 인해 화성 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전투들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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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백낙열(白樂烈)[1865~1937]은 1865년 12월 20일 수원군 장안면[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에서 태어났다. 1884년 동학에 입교하였으며, 1894년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수원 접주 고석주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1910년에 천도교 남양교구 금융원이 되었으며, 남양교구 강습소를 설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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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과 유물을 바탕으로 살펴본 백제 시대 화성 지역 문화와 위상. 경기도의 남서쪽에 있는 화성시는 서쪽으로는 서해안과 접하고, 동쪽으로는 내륙의 동탄 지역까지 아우르는 넓은 지역이다. 지형은 대체로 동북쪽이 산세가 높으며, 중앙 지역과 서해안 쪽 일대는 저산성 구릉 지대가 광범위하게 발달하였다. 또한 발안천, 황구지천, 오산천, 자안천 등 여러 수계가 발달하여 있는데, 고대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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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동화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농악. 농악은 원시사회의 풍농과 안택을 비는 제천의식이나 일의 율동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이 점차 집단 생활 속에서 놀이 형태, 축원 형태, 연극 형태로 발전되고 사람들이 이를 즐기게 된 것으로 보인다. 봉담역말농악은 경기농악[웃다리농악]에 속하고 그중에서도 충청도와 연관이 있는 평택농악과 함께 대표적인 경기 남부 농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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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시대부터 초기 철기 시대까지 경기도 화성 지역의 역사. 경기도 화성 지역은 해양 자원과 내륙 자원을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입지 조건을 지니고 있어 일찍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다. 화성 지역 선조들은 이러한 입지 조건을 바탕으로 주변 지역과 교류하여 보편적인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자신들만의 역사와 문화를 이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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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시대부터 초기 철기 시대까지 경기도 화성 지역의 역사. 경기도 화성 지역은 해양 자원과 내륙 자원을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입지 조건을 지니고 있어 일찍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다. 화성 지역 선조들은 이러한 입지 조건을 바탕으로 주변 지역과 교류하여 보편적인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자신들만의 역사와 문화를 이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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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에서 사람이나 물건 따위를 배로 실어나르는 일. 경기도 화성시 일대는 리아스식 해안과 많은 섬 등의 유리한 자연 지리적인 환경으로 인해 선운업이 과거부터 활발하였다. 남부 지방에서 올라 오는 물자는 내륙 유통로인 한강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화성 서부 해역을 거쳐야 했다. 화성의 서부 해역은 하루에 두 번 씩 갯골을 따라 움직이는 조류가 있었는데 화성의 서부 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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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당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고대 신라와 중국 간의 인적·물적 교류. 경기도 서남부에 자리한 화성 지역은 고대부터 남양만을 통해 중국 산둥반도의 등주(登州)나 청도(靑島) 등으로 오갈 수 있는 서해의 관문이었다. 남양만에서 산둥반도로 건너가는 항구는 화량진과 마산포가 대표적이었으며, 연안 항로와 서해 직단 항로가 모두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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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있던 섬. 어섬은 예부터 고기가 많아 어도(漁島)라 불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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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있던 섬. 어섬은 예부터 고기가 많아 어도(漁島)라 불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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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도성과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지방을 연결하던 교통 및 통신 제도. 조선 시대에 화성 지역은 호서·호남 지방에서 한강 이북으로 진출하는 길목에 자리한 교통의 요지였다. 이에 조선에서는 국가의 공적 도로망을 편제하는 과정에서 화성 지역에 4개의 역을 설치하였다. 역에서는 왕명과 공문서의 전달, 사신의 왕래에 따른 영송, 공공 물자 운송에 필요한 말 공급 등의 업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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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상례 시 계원 간의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조직된 상계. 연반계는 상례 시 계원 간의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조직된 상계(喪契)의 하나로, 성원 간 차별 없이 상여를 메는 대동 운상(運喪) 조직이다. 대동 운상 조직인 연반계라는 명칭은 화성을 포함하여 충청도 및 경기도 평택·안성·이천·광주 등의 지역에서 확인된다. 화성시에서는 사촌계라는 명칭도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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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의 산업 분야 중 상품 따위가 생산자에서 소비자, 수요자로 오기까지 여러 단계에서 교환되고 분배되어 그 이동이 원활하게 흐르게끔 중간 역할을 하는 업종. 화성 지역의 유통업은 통일 신라 시대부터 항구를 통한 무역이 이루어졌다. 조선 후기에는 여러 포구를 통해 해운 유통망을 형성하기도 하고 내륙의 시장을 통해 수산물 및 농산물을 유통하였다. 일제 강점기 이후 정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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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화성 지역 일대에서 일제의 만행에 맞서 전개한 무력 항쟁.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 침략을 본격화하였다. 한국인의 자립권과 생존권이 위협에 놓인 상황에서, 한국인들은 자발적으로 무장하여 외세를 쫒고 나라의 자립성을 되찾고자 하였다. 한말 영국 기자 매캔지[Frederic Arthur Mckenzie]는 『자유를 위한 투쟁[The Fight For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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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시대부터 초기 철기 시대까지 통합과 교류를 지향하며 첨단 기술을 발전시킨 화성 지역 선사인의 삶. 화성 지역은 서해안과 내륙 지역을 연결하는 관문이며, 해양 자원과 내륙 자원을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기 좋은 환경이었다. 화성 지역 선사 문화는 이와 같은 환경을 배경으로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 한편으로는 주변 지역과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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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시대부터 초기 철기 시대까지 통합과 교류를 지향하며 첨단 기술을 발전시킨 화성 지역 선사인의 삶. 화성 지역은 서해안과 내륙 지역을 연결하는 관문이며, 해양 자원과 내륙 자원을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기 좋은 환경이었다. 화성 지역 선사 문화는 이와 같은 환경을 배경으로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 한편으로는 주변 지역과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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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을 시조로 하고 이양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함평 이씨 시조는 고려 광종 때 신호위(神虎衛) 대장군을 지내고 함풍군(咸豊君)에 봉하여진 이언(李彦)이다. 중시조는 이언의 11세손으로 조선 세조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경상우병사를 지낸 이종생(李從生)이다. 이종생은 이시애의 난 때 활약하여 정충출기적개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2등에 책록되었고, 이후 함성군(咸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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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 있던 조선 시대 역. 해문역은 조선 시대에 남양도호부 관내에 있는 양재도의 속역이었다. 해문역이 자리한 양재도는 한양과 수원부, 남양부를 연결하는 역로였기 때문에 정조가 화성 또는 현륭원에 행차할 때 주요하게 기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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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현주(洪顯周)[1883~1945]는 경기도 수원군 서신면 송교리[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송교리] 출신이다. 1913년 풍기에서 조직된 광복단(光復團)과 1915년 대구에서 조직된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回復團)이 연합하여 조직된 대한광복회에 1916년에 가입하였다. 홍현주는 충청도 지방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수행하였다. 19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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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기도 화성 지역에 설립된 전문 예인 집단의 자치 조직. 화성재인청은 조선 후기에 설립된 재인(才人)·무부(巫夫)·광대(廣大) 등의 자치 조직이다. 재인청은 신청(神廳)·광대청(廣大廳) 등으로도 불렸으며, 경기도·충청도·전라도의 각 군에 두었다. 각 도에는 도청(都廳)을 두었고, 도청의 우두머리를 대방(大房)이라 불렀다. 대방 아래에는 두 명의 도산주(都山主)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