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산지 간의 통로 역할을 하는 고도가 낮은 지대. 고개는 산을 넘어가는 능선부로 주로 이동 통로로서 이용된다. 일반적으로 큰 고개에는 치(峙)나 령(嶺)이 쓰이고 작은 경우는 고개·재·현 등이 쓰인다. 문헌에 나오는 화성시의 고개에는 앞고개, 성목재, 길마재, 서낭당고개, 노루고개, 한고개, 석고개, 삼봉고개, 아흔아홉고개 등이 있다....
-
경기도 화성 지역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있던 역. 동화역(同化驛)은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있던 역으로, 양재도(良才道)에 속하였다. 한양과 과천, 수원, 충청도를 잇는 역로상에 자리하고 있어 지리적 중요성을 가졌다. 임진왜란 시기에 일본군이 동화역이 속한 양재도를 따라 한양으로 북상하기도 하였다....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에서 채록된 마산포에 관련한 이야기. 「마산포 이야기」는 과거 마산포에서 벌어진 역사적·군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대해 구술한 이야기이다....
-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다양하게 나타난 무관들의 활약과 여러 전투로 형성된 무향으로서의 화성 지역. 화성 지역은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한강 유역을 수호하는 주요 거점 지역이었다. 삼국 시대에는 한강 유역에 대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최적의 요충지로, 조선 시대에는 적군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주목되었다. 그로 인해 화성 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전투들이 다...
-
경기도 화성시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예술 활동의 현황. 화성은 예로부터 하삼도로 이동할 때 거쳐 가는 교통의 요지였고, 서쪽으로는 서해바다가 펼쳐서 있어 물자가 풍요로웠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수도인 한양과 인접한 기전(畿甸)지방에 해당되었다. 풍요로운 물산과 많은 유동 인구는 화성의 문학과 미술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로 작용했다. 1945년 해방 이후 6·25전쟁과 산업화 그리고 민...
-
1636년 12월부터 1637년 1월까지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조선 서북부 및 중부 지역에서 벌어진 청나라와의 전쟁. 1627년 1월에 발생한 정묘호란의 결과, 조선은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고 교역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이후로도 후금은 변경 지방을 침입하여 약탈하는 등 수시로 조선을 도발하였다. 나아가 만주 점령 후 만리장성을 넘어 명나라를 압박하는 과정에서는 형제의 맹약을...
-
1800년 경기도 화성 지역에 거주하던 이옥이 지은 영남 지방 견문록. 봉성현(鳳城縣)은 현재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이다. 『봉성문여』는 이옥이 삼가현(三嘉縣)에 약 4개월간 머무르면서 지역의 유적과 환경 및 물산에 대해서 기록한 책이다....
-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북양리에 살던 한 노인에게 흥선대원군이 충절비를 세워 주었다는 이야기. 「북양리 충절비 이야기」에는 납치되어 압송되어 가던 흥선대원군의 행차를 막아선 남양 북양리 노인에게 내려줬다는 충절비가 등장한다. 그리고 노인이 흥선대원군의 행차를 기다리고 있다가 막아선 지점인 북양리의 느티나무 괴목도 등장한다. 그러나 북양리 최씨 노인의 신원 및 보호수라는 느티나무의 위...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삼존리에 살았던 조선 광해군 때의 권신 유희분과 관련한 이야기. 1981년 9월 3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1-5: 경기도 수원시·화성군편』에 「삼족리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508~509쪽에 걸쳐 수록되어 있다. 「삼족리 이야기」는 1980년 6월 20일 송산면 사강리에서 채록되었으며, 구연자는 김찬모[남, 64세], 조사자는 성기열...
-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왕림리에 있는 삼천병마골에 대한 지명 유래 전설. 삼천병마골은 장안대학교 뒷산과 수원여자대학교 해란캠퍼스 사이에 있는 산골짜기로 왕림휴게소 부근에 해당한다. 경기도 화성시와 수원시에서 사용되는 도로명주소 중 삼천병마로가 있다. 삼천병마로는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동 오동나무 삼거리에서 시작하여 화성시 봉담읍과 팔탄면을 지나 향남읍 상신리까지 이르는 도로이다...
-
이자송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수원 이씨 시조인 이자송(李子松)은 고려 후기 순위부(巡衛府) 상만호(上萬戶),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 등을 지낸 문신으로, 본래 청양(靑陽)[지금의 충청남도 청양군] 사람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1362년(공민왕 11)에 전법판서(典法判書)로 원나라에 있었는데, 덕흥군(德興君)의 변란 때 가담하지 않은 공으로 밀직부사(密直副使)...
-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조암리에 있는 쌍봉산에 관련한 지명유래담. 쌍봉산은 해발 117m의 산으로 조암반도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정상에 오르면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과 장안면이 널리 펼쳐 보이고 멀리 서해가 조망된다. 쌍봉산에는 등산로와 근린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등산로 입구에는 쌍봉산의 유래를 설명하는 화성시의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정상에는 산신당 당집이 있다....
-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화성시의 역사. 화성시의 역사는 발굴 조사된 유적과 문헌 기록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유적은 태안 지역, 봉담 지역, 향남 지역 및 길성리 토성 주변 지역, 서해안에 접한 우정읍-장안면 일대, 마도면-서신면 지역, 오산-동탄 지역 등에서 다수 조사되었다. 이러한 유적들을 통해 선사 시대 이래 사람들의 거주 양태와 정치 세력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여...
-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지역에 있던 조선 시대 해양 방어 기지. 영종포는 조선 초에 수도 한양의 방비와 조운로의 보호를 위해 설치되었다.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에 설치된 화량진과 함께 한강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방어하는 거점 군영이었다....
-
조선 후기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출신의 문신.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경선(景善), 호는 추연(秋淵)·연암(淵庵)이다. 조선의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이자 검교좌정승(檢校左政丞)을 지낸 우인열(禹仁烈)의 7대손으로, 증조부는 우환(禹桓), 조부는 승사랑(承仕郞)을 지낸 우성윤(禹成允)이다. 우성전은 함종현령을 지낸 우언겸(禹彦謙)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 연안 김씨는 김석린(金石...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벌어진 일본과의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벌어진 일본과의 전쟁이다. 보통 1차 전쟁이 일어난 1592년의 간지를 따서 임진왜란이라고 총칭하며, 일본의 2차 침입만을 따로 지칭하는 경우에는 정유재란이라고 부른다. 조선 시대에 화성·수원 지역은 남양도호부와 수원도호부가 관할하였는데...
-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속하는 법정리. 전곡리(前谷里)는 서신면의 북쪽에 위치한다. 북쪽으로 송산면 지화리, 동쪽으로 상안리와 송산면 칠곡리, 남쪽으로 장외리와 광평리, 서쪽으로 안산시와 서해에 접하고 있다. 전곡리의 행정리는 3개이다....
-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字)는 자실(子實), 호(號)는 설정(雪汀)이다. 아버지는 사도시(司䆃寺) 주부(主簿)를 지낸 조경인(曹景仁)이고, 어머니 풍산 심씨(豊山沈氏)는 우의정 심수경(沈守慶)의 딸이다....
-
조선 왕조가 존속한 1392년부터 1863년까지 경기도 화성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화성 지역에는 수원도호부와 남양도호부가 설치되어 있었다. 지금의 행정 구역을 기준으로, 수원도호부는 봉답읍 등의 화성시 동부 지역과 수원시·오산시 일대, 남양도호부는 남양읍을 비롯한 화성시 서부 지역을 관할하였다. 남양도호부는 수원도호부에 비해 인구가 적고 위상은 낮았지만, 남양만 일대의 해안 방...
-
조선 시대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시행된 지방 방위 체제. 조선 초기의 방위 체제는 북방 국경 지대와 남방 연해 지대를 방어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북방 지역에는 군익도(軍翼道) 체제가 시행되고 있었고, 남방 지역에는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연해의 요충지에 진을 설치하였다. 반면 내륙 지역에는 이렇다 할 군사 조직이 없는 상황이었다. 경기도의 경우 단 한...
-
경기도 화성 지역에 있던 조선 시대 역. 해문역은 조선 시대에 남양도호부 관내에 있는 양재도의 속역이었다. 해문역이 자리한 양재도는 한양과 수원부, 남양부를 연결하는 역로였기 때문에 정조가 화성 또는 현륭원에 행차할 때 주요하게 기능하였다....
-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에 속하는 법정리. 해창리(海倉里)는 팔탄면의 남부 끝에 위치한다. 북쪽은 매곡리와 화당리, 동남쪽은 향남읍 상신리, 서쪽은 장안면 수촌리와 맞닿아있다. 해창리의 행정리는 2개이다. 자연마을로 새미래미[삼암(三岩)], 창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