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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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조가 존속한 918년부터 1392년까지 경기도 화성 지역의 역사. 남양만을 끼고 있는 경기도 화성 지역은 고대 사회 이래로 서해안 교통의 중심지였다. 고려 시대에는중국과의 교역 통로로서의 기능도 있었지만, 조세를 운반하는 조운(漕運)의 중요 통로였고, 수시로 자행된 왜구의 침탈을 막기 위한 방어 거점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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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집단. 조선 초기 본관(本貫) 제도의 정착과 행정 구역 개편은 화성 지역 성씨 집단 정착에 영향을 미쳤다. 조선 시대 화성 지역은 수원도호부와 남양도호부가 관할하였다. 조선 전기 수원과 남양 지역에 정착한 성씨는 『세종실록지리지』[1454]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이들은 수원·남양을 비롯하여 속현인 쌍부·영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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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남양 서씨는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남양부의 토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시조는 신라 문무왕 때 당나라에서 건너와 당성(唐城)[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에 정착하였다고 하는 서간(徐趕)이다. 벼슬은 태사(太師)에 올랐으며, 남양군(南陽君)에 봉하여졌다고 한다. 남양 서씨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효자 정려(旌閭)를 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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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화성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남양도호부(南陽都護府)는 조선 시대 지방 행정 구역으로,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마도면·비봉면·송산면·서신면 등을 관할하였다. 읍치는 남양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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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편찬된 경기도 남양부의 읍지. 『남양부읍지』는 남양도호부의 군정을 관할하던 친군총어영(親軍摠禦營)과 경리청(經理廳)이 존속하던 시기인 1891년에서 1894년 사이에 편찬된 지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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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편찬된 경기도 남양부의 읍지. 『남양부읍지』는 남양도호부의 군정을 관할하던 친군총어영(親軍摠禦營)과 경리청(經理廳)이 존속하던 시기인 1891년에서 1894년 사이에 편찬된 지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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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에 잇는 개항기 관립 경로당. 남양풍화당은 '남양풍화당기로회(南陽風化堂耆老會)'라는 현판을 건 일종의 관립 경로당이라 할 수 있다. 기로소(耆老所)란 연로한 고위 문신의 친목 및 예우를 위해 설치한 관서로, 나이 70세 되면 '기'(耆), 80세가 되면 '노'(老)'라 하였다. 기로회는 지방의 원로들을 위한 사교 모임 내지 지방 기로소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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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에 잇는 개항기 관립 경로당. 남양풍화당은 '남양풍화당기로회(南陽風化堂耆老會)'라는 현판을 건 일종의 관립 경로당이라 할 수 있다. 기로소(耆老所)란 연로한 고위 문신의 친목 및 예우를 위해 설치한 관서로, 나이 70세 되면 '기'(耆), 80세가 되면 '노'(老)'라 하였다. 기로회는 지방의 원로들을 위한 사교 모임 내지 지방 기로소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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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당성군(唐城郡)은 5세기 후반에 고구려가 백제로부터 한강 유역을 빼앗은 후,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일대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기 위해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이다. 다만,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고구려 당시부터 당성군이란 명칭을 사용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당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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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다양하게 나타난 무관들의 활약과 여러 전투로 형성된 무향으로서의 화성 지역. 화성 지역은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한강 유역을 수호하는 주요 거점 지역이었다. 삼국 시대에는 한강 유역에 대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최적의 요충지로, 조선 시대에는 적군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주목되었다. 그로 인해 화성 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전투들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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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 주민들의 생활 속에서 형성되어 전승되고 있는 전통 생활양식과 문화. 민속은 세시풍속, 일생의례 뿐만 아니라 의식주와 같은 생활양식, 환경에 적응한 기술 전승과 농업, 어업, 염엄 등의 생업활동 등 공동체가 전승해 온 생활문화, 전통문화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따라서 민속이라는 언어 속에는 포괄적이며 다양하고 한 두 문장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함의가 담겨져 있다.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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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같은 성과 본관을 가지고 살아 온 성씨. 한국의 성씨 집단은 성씨와 본관으로 자신을 나타낸다. 각 성씨 집단은 부계 혈연을 의미하는 성씨와 공간적 기원지라 일컬어지는 본관을 통해 다른 성씨 집단과 차별성을 갖는다. 성과 본관이 속한 가문을 나타낸다면, 이름은 동성동본의 성씨 내에서 종적 혈연관계를 나타내는 항렬과 개인을 구별하는 자(字)로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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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화성시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고문서. 경기도 화성 지역에 풍양 조씨가 세거하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이전으로 추정되며, 매송면 원리와 송라리, 야목리 들목과 당곡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이중 야목리 들목일대에 사는 풍양 조씨를 '들목에 사는 조씨'라 하여 들목 조씨로 부르고 있다. 들목 조씨들은 조계팽의 묘를 남양부 북쪽 소교촌 수작리에 쓰면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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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경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수원 백씨의 시조는 백우경(白宇經), 중시조는 백창직(白昌稷)이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화성 지역의 내성(來姓)으로 기록되어 있다. 시조인 백우경은 신라 때 당나라에서 귀화한 인물로, 좌복야(左僕射), 대사도(大司徒) 등을 역임하였다고 한다. 중시조인 백창직은 신라 경명왕 대에 중랑장(中郎將)을 지냈다. 시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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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송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수원 이씨 시조인 이자송(李子松)은 고려 후기 순위부(巡衛府) 상만호(上萬戶),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 등을 지낸 문신으로, 본래 청양(靑陽)[지금의 충청남도 청양군] 사람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1362년(공민왕 11)에 전법판서(典法判書)로 원나라에 있었는데, 덕흥군(德興君)의 변란 때 가담하지 않은 공으로 밀직부사(密直副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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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화성시의 역사. 화성시의 역사는 발굴 조사된 유적과 문헌 기록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유적은 태안 지역, 봉담 지역, 향남 지역 및 길성리 토성 주변 지역, 서해안에 접한 우정읍-장안면 일대, 마도면-서신면 지역, 오산-동탄 지역 등에서 다수 조사되었다. 이러한 유적들을 통해 선사 시대 이래 사람들의 거주 양태와 정치 세력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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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의 산업 분야 중 상품 따위가 생산자에서 소비자, 수요자로 오기까지 여러 단계에서 교환되고 분배되어 그 이동이 원활하게 흐르게끔 중간 역할을 하는 업종. 화성 지역의 유통업은 통일 신라 시대부터 항구를 통한 무역이 이루어졌다. 조선 후기에는 여러 포구를 통해 해운 유통망을 형성하기도 하고 내륙의 시장을 통해 수산물 및 농산물을 유통하였다. 일제 강점기 이후 정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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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기도 화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신백(信伯), 호는 신곡(薪谷),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증조는 지중추부사 윤우신(尹又新), 조부는 교리 윤섬(尹暹), 부친은 현감 윤형갑(尹衡甲)이다. 모친은 창원 황씨(昌原黃氏)로, 관찰사 황치경(黃致敬)의 딸이다. 동생이 삼학사(三學士)의 윤집(尹集)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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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윤계의 행적을 새긴 비. 윤계선생순절비는 조선 후기 문신 윤계(尹棨)[1603~1636]의 행적을 기록한 비이다. 윤계의 본관은 남원(南原)이고, 호는 신곡(薪谷)이다. 1636년(인조 14) 남양도호부에 부사로 파견되어 공무를 시작하였는데, 겨울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침략 소식을 들은 윤계는 전열을 다듬어 청군과 맞서고자 하였으나,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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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윤계의 행적을 새긴 비. 윤계선생순절비는 조선 후기 문신 윤계(尹棨)[1603~1636]의 행적을 기록한 비이다. 윤계의 본관은 남원(南原)이고, 호는 신곡(薪谷)이다. 1636년(인조 14) 남양도호부에 부사로 파견되어 공무를 시작하였는데, 겨울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침략 소식을 들은 윤계는 전열을 다듬어 청군과 맞서고자 하였으나,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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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에 선영과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수지(綏之), 호는 쌍계(雙溪),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남양부의 쌍부[현 화성시 우정읍·장안면 일대]에 거주하였던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의 6대손이다. 증조부는 옥천군수를 지낸 이봉조(李鳳朝), 조부는 경기감사를 역임한 이정신(李正臣), 아버지는 병조판서를 지낸 이철보(李喆輔)이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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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시행된 지방 방위 체제. 조선 초기의 방위 체제는 북방 국경 지대와 남방 연해 지대를 방어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북방 지역에는 군익도(軍翼道) 체제가 시행되고 있었고, 남방 지역에는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연해의 요충지에 진을 설치하였다. 반면 내륙 지역에는 이렇다 할 군사 조직이 없는 상황이었다. 경기도의 경우 단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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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제작된 전국 군현의 모습을 회화식으로 그린 화성 지역 지도. 『1872년 지방지도』는 1872년(고종 9) 전국의 통치 체제를 강화하는 정책에 따라 화성의 관방 및 행정 체제를 지리적 환경과 같이 채색으로 묘사하여 중앙에 보고한 자료이다. 화성 지역의 행정 및 군사 시설 등이 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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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제작된 『팔도군현지도』에 수록된 화성 지역 지도. 『팔도군현지도』는 정조대 전후 전국을 좌표로 구획하여 지방 행정 구역을 파악하게 한 지도이다. 화성 지역은 수원과 남양에 포함되어 있으며 방격에 따라 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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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제작된 『팔도군현지도』에 수록된 화성 지역 지도. 『팔도군현지도』는 정조대 전후 전국을 좌표로 구획하여 지방 행정 구역을 파악하게 한 지도이다. 화성 지역은 수원과 남양에 포함되어 있으며 방격에 따라 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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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에 남아있는 경기도에서 유일한 기로회의 후신. 기로회는 지역 내 유교적 예속을 규율하며 모범을 실천해온, 조선 후기 향약 전통을 잇고 있는 지역 은퇴 관료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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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화성 지역이 남양부와 수원부에 묘사되어 있는 전국 지도. 해동지도는 화성 지역의 옛 읍치와 주변 지역 연계망 등을 보여주는 그림 지도이다. 각 도 별로 작성되어 화성 지역은 경기도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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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화성 지역이 남양부와 수원부에 묘사되어 있는 전국 지도. 해동지도는 화성 지역의 옛 읍치와 주변 지역 연계망 등을 보여주는 그림 지도이다. 각 도 별로 작성되어 화성 지역은 경기도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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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 있던 조선 시대 역. 해문역은 조선 시대에 남양도호부 관내에 있는 양재도의 속역이었다. 해문역이 자리한 양재도는 한양과 수원부, 남양부를 연결하는 역로였기 때문에 정조가 화성 또는 현륭원에 행차할 때 주요하게 기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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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에 속하는 법정읍. 향남읍은 화성시의 남부에 위치한다. 북쪽으로 팔탄면과 정남면, 동쪽으로 양감면, 남쪽으로 양감면과 평택시, 서쪽으로 팔탄면과 장안면에 접한다. 평리, 발안리, 제암리, 상신리, 구문천리, 하길리, 화리현리, 상두리, 백토리, 길성리, 요리, 수직리, 갈천리, 증거리, 송곡리, 동오리, 관리, 도이리, 행정리, 방축리, 장짐리의 21개 법정리를 관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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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조선 전기 학자.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여경(餘慶), 호는 소총(篠䕺)·광진자(狂眞子)이다. 아버지는 남양부(南陽府)의 향리(鄕吏) 홍순치(洪順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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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을 본관으로 하는 남양 홍씨의 시조. 남양 홍씨 당홍계(唐洪系)의 시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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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 최초로 설립된 남양교회와 수촌교회의 역사와 역할. 남양교회의 시작은 경기연회가 제공하는 감리교회주소록에 따르면 1897년 4월 7일로 기재되어 있다. 향토사학자 홍승길에 따르면 남양감리교회는 1899년에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으며, 복정채는 신학월보에서 1900년 4월부터 예배를 드렸다고 기록한다. 홍승길에 따르면 "1899년에 남양교회는 존스 선교사가 제물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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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 최초로 설립된 남양교회와 수촌교회의 역사와 역할. 남양교회의 시작은 경기연회가 제공하는 감리교회주소록에 따르면 1897년 4월 7일로 기재되어 있다. 향토사학자 홍승길에 따르면 남양감리교회는 1899년에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으며, 복정채는 신학월보에서 1900년 4월부터 예배를 드렸다고 기록한다. 홍승길에 따르면 "1899년에 남양교회는 존스 선교사가 제물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