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암리
-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선리에 통합된 가곡마을과 선동마을의 이름을 따서 행정구역상 가선리라고 하였다. 1914년 3월에 진주군 일반성면의 가곡마을, 선동마을, 창촌마을의 일부를 합쳐 가선리(佳仙里)라 하였다. 1963년 10월 1일에 가곡마을의 일부를 소아(蘇芽)마을로 신설하여 선동, 가곡, 소아 3개 마을이 되었다. 가선리는 전체가 대부분 해발 100m 내외...
-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개암리에 있는 가야 후기의 고분. 1977년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간한 『문화유적총람중권 -경상남도-』에 의해 처음 학계에 알려졌으며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주변에서 회청색 경질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2번 국도를 따라 진주시 일반성면 소재지를 지나면 곧바로 개암리에 이르는데, 마을 안길의 끝에 있는 개암공묘원 입구 표지석을 지나 100m 정도...
-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암리에 속하는 마을 중 하나에 개암나무(고욤나무)가 많아서 개암마을이라 불렸는데, 주변마을과 통합하는 과정에서 이 명칭이 남게 되었다. 한자지명은 음차한 것으로 추정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일반성면의 개암동, 선동, 창촌동과 외진성면의 답천동 일부를 병합하여 개암리(開岩里)라 하였다. 개암리의 북쪽으로 낮은 구릉성...
-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개암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2003년도에 실시한 석탑 주위의 문화유적지표조사에서는 아무런 유구나 유물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개암리 석탑이 발견된 개암리 주변에 절터는 남아있지 않으나 현재 위치하는 개암리의 이름을 따서 개암리 석탑이라 불리고 있다. 1977년에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간한 『문화유적총람중권 -경상남도-』에 의하면 진주시 일반성면...
-
공중의 휴양·놀이 등을 위해 마련한 정원·유원지·동산 등의 시설. 우리나라의 공원은 자연공원법과 도시공원법에 의거하여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자연풍경지(自然風景地)를 보호하고 국민이나 주민의 보건·휴양 및 정서 생활의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경영·관리하는 자연지(自然地) 또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후생적 조경지(造景地)로 정의하는데, 전자를 자연공원, 후자를 도시공원이라고 한다. 자...
-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북쪽으로 반성천이 지나고, 반성천 주변에 사평들이라는 평야가 펼쳐져 있어 답천(沓川)이라고 하였다. 본래 진주군 외진성면의 지역으로 논내실 또는 노천, 답천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일반성면의 채동 일부를 병합하고 답천리(沓川里)라 하여 일반성면에 편입되었다. 답천리의 남쪽은 해발 1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로 이...
-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의 법정리. 대천리 내에 있는 자연마을인 대동(大洞)과 대천리를 흐르는 답천(沓川)을 합하여 대천리로 이름한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에는 진주목의 반성현에 속했다가 동면 가수개리와 정수개리에 속하게 되었고, 조선 말기에는 이반성면과 가수개면으로 되었다. 1914년에 진주군 가수개면 대동·가산동, 외진성면 답천동 각 일부로써 대천리라 하였는데, 현재 대동·오...
-
경상남도 진주시 동쪽에 위치한 면(面). 고려 현종 9년(1018)에 진주목 반성현으로 불리웠고, 이후 조선시대까지 반성현으로 불렸다. 이후 고종 1년(1864)에 반성면이라 하였다가 반성면이 일반성면과 이반성면으로 분리되면서 현재의 지명으로 개칭되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반성현(班城縣)이라 하다가 동면(東面) 반성리(班城里), 비라동리(非羅洞里)라 하였고, 임진왜란...
-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일반성면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경상남도 진주시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문산읍], 15개 면[내동면, 정촌면, 금곡면, 진성면, 일반성면, 이반성면, 사봉면, 지수면, 대곡면, 금산면, 집현면, 미천면, 명석면, 대평면, 수곡면], 16개 행정동[천전동, 성북동, 중앙동, 상봉동, 상대 1동, 상대 2동, 하대 1동, 하대 2동, 상평동, 초장동, 평거동,...
-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현종 9년(1018)에 진주목 반성현에 의창(義倉)이 소재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반성창(班城倉)을 두어 창말이라고도 하였다. 이 때 “곳집 창(倉) 자”의 유래로 창촌리라 전해오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진주목 반성현에 속하였고, 조선 중종 때 반성리로 개칭하였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진주군 일반성면 창촌동(倉村洞), 선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