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
○ 민원(閔愿) : 자는 흥중(興仲)이요, 호는 석계(石溪)이며 본관이 여흥(驪興)이니 판서(判書) 민심언(閔審言)의 후손이다. 문과에 올라 직장(直長)이 되었다. 성품이 강직하면서 행실은 방정했으며 목표하는 것은 높으면서 뜻은 넓었다. 충주(忠州) 음성(陰城)으로부터 옮겨와 진주의 옥봉(玉峰)에 살았다. ○ 최원민(崔元敏) : 호는 죽계(竹溪)요, 본관이 삭녕(朔寧)이니 사간(司...
-
○ 이윤현(李胤玄) : 자는 시로(時老)요, 호는 영모당(永慕堂)이니 매월당(梅月堂) 이하생(李賀生)의 증손이다. 18세 때에 부친을 모시고 산간 마을에서 천연두를 피하더니 갑자기 어느 날에 도적이 들어와 부친을 해치려고 했다. 윤현이 몸으로 날개처럼 덮어서 겨우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온몸에 부상을 입고 이어 병을 얻어 의원을 찾아 약을 구하여 8년을 견디다 마침내 천수를 마쳤...
-
○ 전주최씨(全州崔氏) : 열부(烈婦). 최운개(崔云凱)의 딸이요, 승사랑(承仕郞) 진양(晉陽) 정승업(鄭承業)의 아내다. 임진년에 난리가 났다는 말을 듣고 항상 칼을 차고 스스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만일 불행한 일을 만나게 되면 나는 반드시 이것으로써 죽음을 결단할 것”이라고 했다. 해를 넘겨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과연 왜적이 이웃 마을을 핍박하여 거의 모두 죽기에...
-
○ 하륜(河崙) : 고려 말에 과거에 합격해 중앙과 지방에 역임하고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재질이 있었다. 태종(太宗)을 도와 정사좌명공신(定社佐命功臣)이 되고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으로 봉했으며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고 시호를 문충공(文忠公)이라 했다. 『호정집(浩亭集)』이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와 있다. ○ 하연(河演) : 하윤원(河允源)의 손자이다. 과거에...
-
조선시대 진주목 사천군 장암리에 설치된 조창(漕倉). 경상도는 1403년(태종 3) 조운 영역에서 제외된 뒤로 경강선(京江船)의 주요 활동 지역이었다. 그러나 항로가 험하여 해난사고가 많았고, 사선(私船) 선가(船價)의 지급도 막대하였다. 또 왕권을 확립하려고 여러 제도 개혁을 추구하던 영조는 세곡 운송제의 문제점을 조운 기능의 강화로 해결하려고 관선조운제(官船漕運制)를 복구하고자...
-
서기 전후부터 562년까지 낙동강 유역과 남해안 지역에 존재하였던 소국들의 연맹체. 가야는 자체적인 역사기록을 남기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각종 문헌에 따라 여러 가지로 표기되고 있는데, 가야(伽倻·加耶·伽耶), 가라(加羅·伽羅·迦羅), 가락(駕洛·伽落), 구야(狗耶·拘耶), 임나(任那) 등이 그것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한반도 남쪽에서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 등...
-
각종 섬유를 생산하거나, 실크 등의 섬유를 원료로 쓰는 가공품을 생산하는 산업. 진주지역의 견직공업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인 기록은 없다. 전통적인 기법의 견직생산에 대한 기록은 구한말에 진주 인근의 산청지역에 그 기록이 남아 있으며, 근대식 견직공장이 설립된 것은 1910년대이다. 1920년대에 추겸호가 동양염직소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1930년대에는 일본인 오다나까가 오다나까...
-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에 있는 경상대학교 문천각 소장의 행정문서집. 경상대학교 문천각에 소장되어 있는 호구단자와 준호구철은 김상조가 여러 가문에 잡다하게 널려 있던 자료들을 모아 편철한 것으로 총 6책이다. 제1책에는 남해 거주 남원양씨 가문의 호구단자·준호구 22건(19세기), 곤양·삼가 거주 청주한씨 가문의 호구단자·준호구 6건(19세기), 여수·사천·곤양 거주 남평문씨 가문의...
-
중학교를 졸업하거나 이와 동등한 학력을 가진 자가 진학하는 중등학교. 고등학교의 분류는 교육과정에 따라 일반계와 실업계로 구분되며, 일반계와 실업계를 함께 운영하는 종합고등학교가 있다. 그 외에도 과학고등학교, 외국어고등학교, 예술고등학교 등의 특수한 목적으로 설립되어 운영되는 특수목적고가 있으며, 수업연한은 3년으로 규정되어 있다. 고등학교 교육의 목적과 관련하여, 중견국민의 개...
-
918년 왕건(王建)의 건국 이래 1392년 이성계(李成桂)의 조선에 멸망할 때까지 34대 474년 간 존속한 왕조. 진주는 통일신라 말부터 후백제를 거치면서 강주(康州)로 불리다가 940년(태조 23)에 진주로 개칭되었고, 983년(성종 2)에 전국에 12목을 설치할 때 진주목이 되었다. 이에 앞서 광종 때에는 진주향교가 창설되어 진주의 학동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고려...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있었다고 하는 변한(弁韓) 12개 소국 중 하나. 삼한 중 변한에 있었던 12개 소국은 지금의 경상남도 전역과 경상북도 일부 지역에 산재하고 있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중 고순시국의 위치를 진주 지역으로 비정했던 이병도의 견해와는 달리 정인보는 경상북도 상주군 함창 지역으로, 천관우는 경상남도 사천 지역으로 각각 비정했다. 대체로 낙동강 본류를 중심으...
-
자동차·기차·배·비행기 등을 이용하여 사람이 오고 가거나 짐을 실어 나르는 일. 진주시는 동쪽으로 마산시 및 함안군과 접해 있고, 서쪽으로 하동군, 남쪽으로 사천시 및 고성군, 북쪽으로는 산청군 및 의령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경상남도 서부 지역의 중심 도시이다. 역사적으로 진주시는 경상남도 서부 지역의 문화·정치·경제의 중심지이고, 교통의 결절지이다. 진주시는 영남과 호남을 연결...
-
·장재(長財) : ‘부자마을’이라는 뜻에서 장재실이라고 불린다.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장지(長智)라고도 불렀는데, 서기(瑞氣)로운 징조가 비친다, 선하고 신비함이 많다는 뜻이 있는 지초 지(芝)로 바꾸어 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0년에 마을 이름을 바꾸면서 마을 총의에 의하여 다시 옛날 이름인 장재실로 부르게 되었다. ·천금산(千金山) : 장재마을을 감싸...
-
경상남도 진주시 두문리에 있는 재래시장. 시장이 소재하고 있는 금곡면이라는 행정지명을 따서 금곡시장이라 하였다. 1962년 12월 28일에 개설되었다. 대지는 1,653㎡이며, 건물구조는 목조스레트와 함석으로 되어 있다. 건물면적은 270㎡이다. 매장면적 270㎡에 5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거래 품목은 산지부산물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두문리 632-4번지에 있다. 진주...
-
조선 전기 진주에서 조직된 영남 사림들의 친목단체. 섭리에 순응하고 이상적인 도학(道學)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사림파의 친목단체로 조직되었다. 지배층의 솔선수범과 근검절약을 신조로 삼았다. 1489년(성종 20), 진주목사 경임, 김해도호부사 이손(李蓀)[1439~1520], 창원도호부사 이영분(李永賁), 전 진주목 교수 김일손(金馹孫)[1464~1498], 조위(曺偉) 등을 비롯,...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울주(蔚州). 자는 성원(聲遠), 호는 백암(白巖). 찰방 김추(金樞)의 아들이다. 1536년(중종 31)에 태어나 1558년(명종 13) 생원이 되고, 1570년 식년문과 갑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도사(都事)를 거쳐 풍기군수를 지냈다. 재능과 학식이 뛰어나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벼슬을 내놓고 향리에 돌아가서 날마다 시골 자제들과 더불어 강학하며 후진...
-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면오(勉吾). 목천(木川) 출생으로 아버지는 지평 김충갑(金忠甲)이다.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하여 군기시에 입사하였으며, 1581년에는 부평부사가 되었으나 구황(救荒)에 전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1583년 이탕개(尼湯介)의 난 때 도순찰사 정언신(鄭彦信)의 막하 장수로 출정하여 공을 세웠다. 그 뒤 훈련원판관이...
-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남쪽의 통일신라[676~935]와 북쪽의 발해[698~926]가 양립하던 시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후 당나라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676년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이후 935년까지 대동강과 원산만 이남의 영토를 다스리게 된다. 한편, 통일신라 북방에는 698년 고구려의 장수 출신인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이끌고 중국 길림성 돈화시 동모산을...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내촌리에 있었던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내촌리 641-10번지 일대에 있었던 유적으로, 진양호의 서편 안말과 마당재를 잇는 농로 좌우의 낮은 야산과 구릉상의 대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남강댐 2차 보강공사에 따라 유적의 일부가 수몰됨에 따라 1997년~1998년까지 한양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21기의 유구가 발굴·조사되었다. 조사된 유구는...
-
사람이나 차들이 편히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비교적 큰 길. 진주는 역사적으로 서부 경상남도의 문화·정치·경제의 중심지이고, 도로 교통의 결절지이다. 진주시는 영남과 호남을 연결하는 동서 방향으로 남해고속국도와 남북을 연결하는 통영~대전 간 고속국도가 교차하고 있고, 2번 일반국도·3번 일반국도·33번 일반국도가 통과하는 영남과 호남 간 그리고 중부 지역과 남부 지역 간의 교통 요충...
-
(1)소문리와 소촌역 문산읍의 소문리는 조선시대에 소촌역(召村驛)이 있었던 곳이다. 『여지도서』의 경상도 진주목 역원조(驛院條)에 의하면, 역의 책임자로 본래 역승(驛丞)이 있었으나 나중에 찰방(察訪)을 두었다고 한다. 찰방은 조선시대 각 도의 관찰사에 소속되어 도로의 역참(驛站)을 관할하던 종6품의 관직자로, 일정한 구간의 간선도로를 단위로 찰방 또는 역승을 두어 이를...
-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남산리 남쪽에 위치한 보잠산 좌측 봉우리에 있는 산성. 축조 기법은 테뫼식으로 고려시대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축성(石築城)이다. 보잠산성은 보령산성(寶嶺山城)으로도 불리는데, 문헌기록에는 나타나지 않는 무명 산성으로서 산성이 위치한 보잠산의 명칭을 따라 보잠산성으로 불린다. 보잠산성에 대한 조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문헌기록에서도 보이지 않아...
-
승려가 불상을 모셔놓고 불법을 수행하고 설하는 장소. 사찰은 순수 우리말로 ‘절’이라고 한다. 절은 불상과 당탑을 모시고 승려들이 거주하면서 불도를 수행하고 교법을 가르쳐 펴는 기능을 가진 집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절은 고구려의 불교 도입 이듬해인 373년(소수림왕 3), 평양에 세워진 이불란사(伊弗蘭寺)와 성문사(省門寺)이다. 신라의 경우에는 아도가 선산지방에서 최초의 포교활동을...
-
경상남도 진주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삼을 삼으면서 부르는 노래. 삼베일은 전국적으로 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경상남도 서부 지역의 고성, 진주, 하동, 산청, 함양, 거창, 합천 등지는 지금도 삼베 일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만큼 부녀자들이 입에서 입으로 삼베일 소리를 전승시켜 오늘날도 불리어지고 있다. 거창 지역에서는 삼베일 소리를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
-
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생산자로부터 재화를 구입하여 ‘최종 소비자 또는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할 자’에게 재화를 판매하는 사업. 경제상의 여러 현상에 대해서 상업이라는 말이 사용되지만 그 개념이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상업은 경제발전단계에 조응하여 변화·발전하여 온 사회적·역사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개념에 대한 완전한 정립은 명확하지...
-
조선 말기의 의병장. 경상남도 양산(梁山) 출생으로, 원래 의원으로서 고향에서 의업(醫業)에 종사하다가 1907년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이 체결되어 군대가 해산되고, 고종이 양위(讓位)하는 등의 사태가 벌어진 직후인 1907년 12월 임진강·한탄강 유역에서 활동 중이던 의병장 허위(許蔿) 휘하에 들어갔다. 1907년 12월 허위로부터 영남으로 내려가 의병을 일으키라는 명을 받고 해...
-
경상남도 진주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유흥요. 이 노래는 부녀자들이 심심하거나 유흥의 분위기가 있을 때 부르는 노래로서 일명 ‘쌍금 쌍금 쌍가락지’라고도 한다. 노래를 부르는 시간과 장소가 특정되어 있지는 않으나 대개 여흥을 즐기는 때에 이 노래를 부른다. 정확하게 언제 이 노래가 발생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오랜 세월 동안 부녀자들의 입을 통하여 구비 전승하였으며, 진주를 중심으로...
-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위치한 사찰. 연화사는 원래 경남 고성군 개천면 북평리 연화산 기슭에 자리한 옥천사의 포교당이었다. 옥천사의 규모가 점점 커지자 신도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더 필요해졌다. 그래서 이종천 스님에 의해 1923년 1월 대지 720평 규모로 고성 옥천사 포교당인 진주 연화사가 창건되었다. 1949년에는 옥천사에서 통도사 말사로 이속되어 통도사 포교당으로 이름...
-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두문리 부근을 지나는 하천. 고성군 영오면에서 발원된 영오천과 고성군 대가면에서 발원된 영천이 진주시 금곡면 두문교에서 만나 문산읍과 진주시를 거쳐 금산면 속사리 속사교 아래에서 남강에 합류한다. 현재 지방2급 하천으로 지정되어 있다. 진주목 영선현에 속하였을 때에는 영선천(永善川)이라 불렸다. 『국역 진양지』에는 “물의 근원이 둘이 있으니, 하나는 고성 혼...
-
1909년 10월 15일 경상남도 진주군 진주면 성내1동에서 우리나라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지방신문. 당시 우리나라 사람이 발행한 신문으로『황성신문(皇城新聞)』·『뎨국신문』·『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만세보(萬歲報)』·『대한민보(大韓民報)』 등이 있었으나 이는 모두 서울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발행한 중앙지였다. 나라의 기운이 일본의 침략으로 기울어지면서 직접 총칼을...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시조는 남민(南敏)으로, 본명은 김충(金忠)이다. 김충은 원래 당(唐)나라 사람이었는데, 신라에 귀화하여 경덕왕으로부터 여남(汝南)에서 왔다고 하여 남씨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남민의 7대손 남진용(南鎭勇)의 세 아들 중 맏아들 남홍보(南洪甫)는 영양, 둘째 남군보(南君甫)는 의령, 막내 남광보(南匡甫)는 고성에 각각 관적(貫籍)하여 각 파...
-
나라가 외침을 받아 위급할 때 민중이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조직하는 자위군. 의병의 전통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비롯되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외침을 많이 받아 고려·조선 시대까지 중요한 순간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의병이 일어났다. 특히 조선 말기의 의병은 항일 독립군의 모태가 되었다. 의병의 역사에서 가장 탁월한 활동을 보여준 것은 임진왜란·병자호란 양란의 의병과 조선 말기의 의병...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옥오(玉吾), 호는 운당(雲塘). 기국이 웅위(雄威)하고 용모가 수려하였다. 어릴 때부터 도량이 커서 『소학(小學)』과 사서(四書)를 힘써 공부하여 유학에 정통하였다. 특히『대학(大學)』의 「성의(誠意)」편을 몸소 실천하여 체득하려 노력하였으며, 실제로 효우(孝友)가 지극하여 부모를 섬김과 형제를 사랑하는 데 도(道)를 다하였다. 부모...
-
조선 말기의 의병장.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성숙(性叔), 호는 후은(後隱). 경상북도 영천 출신. 고려삼중대광 개국원훈 이총언을 시조로 한 벽진이씨(碧珍李氏)의 후손이며, 이정봉(李禎鳳)의 아들이다. 1907년 조선 군대의 강제해산 이후 전국 각지의 의병봉기가 확대될 무렵, 경상남도 산청에서 의병을 일으켜 박동의(朴東儀)를 의병장으로 하고 이학로는 부장(副將)이 되어 의병활동...
-
1910년 국권강탈 이후 1945년 광복에 이르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식민통치 시기.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정책은 사회·경제적 수탈뿐만 아니라 한국민족 말살정책을 강행하는 악랄한 정책을 집행하였다. 한편 일제강점기에 설치한 교통·통신시설은 비록 그것이 근대적인 시설이었다 하더라도 설치목적과 그 기능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그리고 대륙침략의 병참기지화에만 있었다. 이러한 식민지정책에...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홍보(弘甫), 호는 삼도(三島). 아버지는 임희중(任希重)이다. 1576년(선조 9) 별시문과에 급제, 진보현감(眞寶縣監)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 현감 박광전(朴光前), 능성현령 김익복(金益福), 진사 문위세(文緯世) 등과 보성에서 1000여 명의 의병을 일으켰다. 당시 와병중이던 박광전 대신 의병장으...
-
1592년에서 1598년 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일어난 전쟁. 1587년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내부의 정치적 분란을 해소하고, 국제교역상의 불리를 타파하기 위해 중국 침입을 통한 체제 변혁전쟁을 구상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에 가도입명(假道入明)을 요구하면서 1592년 4월 13일 부산포 상륙을 시발로 하여 조선 침략을 시작하였다. 조선은 관군과...
-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인조대왕이 능양군(綾陽君)으로 있을 때 고성에 있는 심부원군을 만나러 장안산을 지날 때 산세가 수려하여 산중의 암자에서 국난을 타개하기 위한 기도를 올리게 되었다. 그 후 동네의 명칭을 임금이 머물던 곳이라 하여 장안리라 하였다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진주군 이반성면 후촌동(後村洞), 반덕동(反德洞), 사령동(沙寧洞),...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전개된 각 정당들의 정치활동. 오늘날의 민주정치는 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정치이다. 대의제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 역시 정당이 존재하며, 국민과 정치를 연결시키는 매개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거가 정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어 정당의 역할이 중시된다. 정당의 일차적인 목적은 선거에 후보자를 내세워 당선시킴으로써 정치권...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1392년(태조 1) 진주를 진양이라 하고 태조현비의 내향이므로 목을 높여서 진양대도호부라 개칭, 진양대도호부사를 두었다. 1402년(태종 2) 진양을 진주로 고치고 대도호부를 목으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의 대대적 개편 때 진주는 목으로서 정3품의 목사가 배치되고, 그 아래 판관(종5품)과 교수(종6품...
-
조선 중기의 무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한 뒤 1592년(선조 25) 고성현령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을 맞았다. 왜군이 진주성을 포위, 공격해오자 목사 김시민(金時敏)을 중심으로 왜적에 대항하였다. 이 때 조응도는 고성의 가장(假將)으로서 진주 복병장(伏兵將) 권유경(權惟敬)과 함께 5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남쪽 문을 지켰다. 십자(十字) 횃불을 들고 남강(南江) 밖 재 위에 벌려...
-
절대(絶對)의 초인간적인 신을 숭배하여 선악을 권계하고 행복을 얻고자 하는 행위.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스스로 한계를 갖는 유한한 존재라는 자각에서 기인한다. 특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사후세계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전지전능(全知全能)하다고 믿는 절대자에게 의탁하여 현세에서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추구하고, 사후세계에서는 구원을 희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
진주시 판문동에 있는, 남강을 가로지르는 댐과 남강댐에 의해 생긴 인공호수. 진주를 흐르는 남강의 근원은 둘이다. 하나는 지리산 북쪽에서 나오는데 경호강이라 부르며, 다른 하나는 지리산 남쪽에서 나오는데 덕천강으로 부른다. 이 두 강이 진주 시내 서쪽 광탄(光灘)[너우니]에서 합류하여 동남쪽으로 흐른다. 이곳에 제방을 쌓고 사천만으로 방수로를 뚫어 남강 하류의 홍수를 방지하자는 주...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제말(諸沫)·제홍록(諸弘祿)의 공을 기념하는 사적비. 제말[?~1592]은 경상남도 고성 출신의 의병장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웅천·김해·정암 등지에서 큰 공을 세워 성주목사에 임명되었다. 그 뒤 전투에서 전사하였는데, 정조 때 병조판서에 추대되었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제홍록[1558~1597]은 제말의 조카로서, 1581년 무과에...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 야외무대에서 매년 열리는 전통 문화 축제. 진주 탈춤 한마당은 진주 지역의 전통 무형 문화유산인 진주 오광대 탈놀음의 원형을 재현하기 위한 목적뿐 아니라, 국내외 여러 탈춤 집단과의 교류를 통해 전통 문화를 계승·보존·홍보하려는 데 목적을 둔 진주 지역의 전통 문화 축제이다. 1996년 진주 상호 저축 은행이 세운 삼광 문화 연구 재단에서 지난날 팔도를 누비며...
-
경상남도 진주시 초전동에 있는 농산물 도매시장. 농산물의 유통구조 개선과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질서 확립을 통하여 신선한 농산물을 적기에 공급하고 적정가격을 유지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를 동시에 보호하고 나아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목적으로 개설되었다. 1995년 12월 29일에 진주농산물도매시장 건설 기본계약을 체결하고, 실시설계 용역에 착수하였다. 1996년 7월 15일에는...
-
1894년 동학농민전쟁 당시 진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농민군. 한반도를 둘러싼 청·일간 각축은 마침내 청일전쟁으로 진전되어 일제의 독점적인 지배가 시작되었다. 한편 보수적인 지배층은 심각한 상황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가렴주구에 여념이 없었다. 1894년 9월 진주지역 농민군은 농민적 토지소유와 부패한 탐관오리를 추방하여 ‘농민의, 농민에 의한, 농민을 위한’ 새로운 지배체제와 외세...
-
1895년(고종 32)부터 정부수립 후인 1949년까지의 진주 행정구역 명칭.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거 그동안 시행해오던 8도제(道制)를 폐지하고 전국을 23부(府)로 구분하고, 그 아래에 336군(郡)을 설치하는 획기적인 개편을 단행했다. 그리하여 부에는 관찰사(觀察使)를 두고 군(郡)에는 군수(郡守)를 두었는데, 이때 진주에는 지금의 도격인 진주...
-
경상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시. 진주시는 동쪽으로 창원시와 함안군, 서쪽으로 하동군, 남쪽으로 사천시와 고성군, 북쪽으로 산청군·의령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서부 경상남도의 거점 도시로, 2005년 10월 경상남도의 혁신 도시로 선정되었다. 경위도상으로 동경 127°53′ 52″~128°22′ 21″인 수곡면 원계리 동월마을에서 이반성면 발산리 내동마을까지이며, 북위 35°03′...
-
경상남도 진주시 장대동에 소재하는 시외버스터미널. 서부 경상남도의 중심지인 진주의 교통체계 혁신을 위하여 1974년 11월 준공하였다.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리모델링 하여 새롭게 단장하였다. 진주시 중심부의 장대동 96-1번지[남강로 712]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 남강이 2차선도로를 사이로 접해 있고, 논개로를 통하여 마산·부산 방면, 남명로를 통하여 산청·...
-
조선 중기 17세기 초에 이루어진 진주의 사찬(私撰) 지리지. 지리지는 수록된 공간 범위에 따라 전국지인 여지(輿誌)와 지방지인 읍지(邑誌)로 나눌 수 있다. 또 지리지를 편찬한 주체에 따라 국가기관에서 만든 관찬(官撰) 지리지와 개인이 편찬한 사찬 지리지로 나누어진다. 전국 단위의 지리지로는 『동국여지승람』이 대표적이다. 조선 중기 이후 활발하게 편찬된 읍지는 전국 지리지인 『동...
-
진주지역에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나라 고유의 타악 합주 음악. 옛날부터 진주는 서부 경상남도의 중심지로서 문화·교통·행정·교육·산업이 집중되어 있던 곳이다. 도시를 이루고 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고, 닷새마다 큰 장이 서면서 신명난 놀이판도 벌어졌다. 서부 경상남도에서 제일 큰 목사골 진주장(晋州場)이 설 때면 각 지방의 농악패 우두머리나 농악잽이 명인들이 팔려 와서 장...
-
사도(使徒) 베드로의 후계자로서의 교황을 세계교회의 최고 지도자로 받들고 그 통솔 밑에 있는 그리스도교의 교파.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소개된 것은 18세기 말엽이다. 당시 중국을 왕래하던 조선 사신들을 통해 시작된 중국의 선교사들과의 접촉으로 이루어졌다. 천주교의 정착은 직접적인 선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들은 실학운동에도 자극...
-
경상남도 진주 출신으로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을 지낸 스님. 진주제일보통학교와 진주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하였다. 1902년 10월 20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생하였다. 1927년 고성 옥천사(玉泉寺)에서 남규영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득도하였다. 1955년에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을 역임하였고, 1956년에 조계종 종회의장을 거쳤으며, 1966년에 조계종 통합종단 2대 종정을 지냈다. 19...
-
진주시의 옛 지명 진주는 가야 지역으로 거열성(居列城)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라는 삼국통일 과정에서 문무왕 3년(663) 2월에 거열성을 공취하여 거열주(居列州)라고 하였다. 신문왕 5년(685) 봄에 처음으로 9주를 정비하면서 거열주를 높여 청주(菁州)라 하고 대아찬 복세(福世)로 하여금 청주총관을 삼았다. 「삼국사기지리지」와 「고려사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등의 강주(...
-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의병장 최강의 공적을 기리는 비.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최강(崔堈)[1559~1614]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한 전적비로 1975년 후손 최정온(崔正蘊)과 최진모(崔震模)가 건립기금을 모아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 뒤벼리 입구에 선학산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남강과 촉석루를 바라보며 서향으로 있다. 사각형의 시멘트 기초 위에 화강암 장대석 기단을 쌓...
-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삭녕(朔寧). 고려 명종 때의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최천로(崔天老)를 시조로 하고, 최유가(崔瑜價)를 중시조로 하는 삭녕최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사설서(司設署) 영(令)을 지낸 최수명(崔守明)이고, 어머니는 숙인(淑人) 진강정씨(晉康鄭氏)이며, 부인은 숙인(淑人) 서흥김씨(瑞興金氏)이다. 1349년(고려 충정왕 1)에 태어나 1374년(...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함안이씨(咸安李氏)의 시조(始祖) 이상(李尙)은 위위시주부동정(衛慰寺主簿同正)을 지낸 원조(遠祖) 이원서(李元敍)의 후손으로 고려 때 광록대부(光祿大夫)에 오르고 파산군(巴山君)에 봉해졌다. 그 후 문헌의 실전(失傳)으로 선계(先系)를 상고(詳考)할 수 없으므로 후손들은 선조(先祖)들의 세거지(世居地)인 함안(咸安)을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