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
-
산등성이와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을 총칭하는 말. 고개에는 전설과 그 지역의 지명과 관련된 명칭이 붙어 있다. 고개와 관련된 지명은 ‘고개’, ‘재’, ‘티’, ‘치’, ‘개’ 등이 있다. 『진주시사』와 『진양군사』를 중심으로 진주시의 고개를 살펴보면 대략 42곳으로 파악된다. 이들 고개를 위치와 명칭 유래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막고개는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대평마...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외율리·덕곡리·계원리·신기리에 걸쳐 있는 산. 진주시의 서북쪽에 있으며, 산청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진주 시내에서 자동차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광제산의 높이 420m의 산으로, 정상에는 산성터와 절터가 남아 있다. 또한 조선시대 세종 때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는 광제산봉수대의 화구(火口)와 석축 일부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경상남도 기념물 제158...
-
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부에 위치한 면(面). 조선 전기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금산리(琴山里)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속사리에 있는 금선봉(琴仙峰)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금산리(琴山里), 대여촌리(代如村里), 월아미리(月牙彌里), 조동리(槽洞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대여촌리과 월아미리는 금산리에 합하여 금산리(琴...
-
경상남도 진주시 서부에 위치한 면(面). 명석면 신기리에 있는 자운석 또는 운돌의 전설에서 유래한다. 신기리에 자웅(雌雄)을 상징하는 한 쌍의 암석이 있는데 이 돌을 운돌 혹은 울돌이라고 한다. 본 자웅석은 고려 23대 고종18년 오랑캐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집현산의 암석이 석성 축조공사로 힘든 백성들의 고충을 덜어주고자 가던 중 승려로부터 축성이 끝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신에 눈...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기리(新基里)는 임진왜란 때에 정선전씨(旌善全氏)가 처음 들어와서 살았는데, 대단한 부자였다고 한다. 그 뒤를 이어서 진양강씨(晋陽姜氏)와 능성구씨(綾城具氏) 등이 들어와 살면서 새마을 또는 새터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이에 신기(新基)라고 하였다. 1914년 진주군 명석면 동전동(東田洞), 청계동(淸溪洞), 신기동(新基洞)을 합쳐 신기리라...
-
근대의 유학자 성환부의 문집. 성환부(成煥孚)[1870~1947]는 휘(諱)가 환보(煥寶)이고 자는 인술(仁述), 호는 정곡(正谷)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성낙주(成駱柱)와 진양하씨(晋陽河氏) 사이의 여덟 째 자식으로 태어났다. 성품이 공순하고 효성스러웠으며, 가세가 기울어진 이후 농사일을 하면서도 학문을 즐기다 7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장지(葬地)는 신기(新基) 안산(案...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창촌리에 있는 마을. 고려 현종 및 조선시대부터 창고가 소재한 마을이라 하여 창촌이라 불렸다. 중종 때 반성리로 개칭하고, 창고가 있다 하여 ‘창말’이라고도 하였다. 옛날 무실마을이다. 1018년(현종 9)에 진주목 반성현에 의창(義倉)을 두었고, 1419년(세종 1)에 반성창(班城倉)을 두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조계동과 원당면의 외동 일...
-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현종 9년(1018)에 진주목 반성현에 의창(義倉)이 소재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반성창(班城倉)을 두어 창말이라고도 하였다. 이 때 “곳집 창(倉) 자”의 유래로 창촌리라 전해오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진주목 반성현에 속하였고, 조선 중종 때 반성리로 개칭하였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진주군 일반성면 창촌동(倉村洞), 선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