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재
-
○ 성여신(成汝信) : 자는 공실(公實)이요, 호는 부사(浮査)며, 우윤(右尹) 성두년(成斗年)의 아들이니 가정(嘉靖) 병오년(명종 1년, 1546)에 나서 만력(萬曆) 기유년(광해군 1년, 1609)에 생원과 진사의 두 시험에 합격했다. 일찍이 남명(南冥)과 구암(龜巖)의 두 문하에서 유학하여 경의(敬義)의 지결(旨訣)을 얻어듣고 종신토록 마음에 깊이 새겼다. 서책은 읽지 않은...
-
○ 양역(梁嶧) : 호는 운곡(雲谷)이요, 본관이 남원(南原)이니 대사간(大司諫) 양사귀(梁思貴)의 셋째 아들이다. 기유년(세종 11년, 1429)에 사마시에 합격해 연일진병마첨절제사(延日鎭兵馬僉節制使)를 지냈다.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공손하고 검소한데다가 뜻이 멀고 행실이 높아서 안과 밖에서 추중(推重)되었다. 단성(丹城)으로부터 진주 운곡(雲谷)에 옮겨와서 살았다. ○ 하공효(河...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선비정신에 관한 설화. 남명 조식 설화는 1622년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이 완성한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처음 실렸으며, 전통문화연구회가 2001년에 편찬한 『어우야담』에 국역하여 다시 수록하였다. 남명 조식은 두류산(현 지리산)의 산천재(山天齋)에서 성리학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명망이 높았고, 이에 여러 차...
-
진주지역에 있는 서원. 경상도 지역에 건립된 193개의 서원 중 경상남도 지역은 19개 군에 44개 서원이 건립되었는데, 그 가운데 진주지역에 해당되는 서원은 7개로 경상남도에서 가장 많다. 재실의 수에 있어서도 진주지역에 약 500여개가 분포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현재도 문중에 따라 새로 건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원은 선현을 모시는‘사(祠)’와 제자를 교육하는‘재(齋)’에...
-
조선 전기의 학자 남명 조식의 사상과 학문을 연구하기 위한 기관.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교육자인 조식(曺植)[1501~1572]의 자는 건중(楗仲), 호(號)는 남명(南冥)이다. 경상도 합천(陜川) 출신으로, 벼슬을 하지 않았으나 영남학파의 거두이다. 1990년 8월 설립된 남명학연구소는 남명 조식의 사상과 학문을 연구하기 위한 연구기관이다. 남명학을 중심으로 한국 전통사상을 연구...
-
조선 중기의 학자 최영경(崔永慶)[1529~1590]에 관한 사실을 모아 편찬한 실기(實記). 1700년(숙종 26)에 양천익(梁天翼)이 수우당 최영경에 관한 사실을 모아 정리하여 펴낸 책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고제(高弟)인 최영경이 기축옥사(己丑獄事)에 무고(誣告)되어 옥사한 이후 100여년이 지난 후 선생의 증손 최정석(崔廷奭)이 수우당 선생의 글들이 참화와 병란에...
-
조선 중기 영남사림으로서 남명학파를 이룬 성리학자 조식. 조식(曺植)의 생졸년은 1501(연산군 7)~1572(선조 5)이며, 본관은 창녕, 자는 건중(楗仲)이며, 남명은 그의 호이다. 어떤 위대한 인물이 역사에 출현하는 데에는 역사적 전통과 지리적 특성이 바탕이 된다. 남명 역시 조선 초기 이후 사림파(士林派) 학자들이 형성해온 학문적 연원과,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경상우도(慶尙...
-
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본가는 삼가판현(三嘉板峴)[지금의 경상남도 합천지역]에 있었고, 토동(兎洞)은 외가이다. 아버지는 조언형(曺彦亨)으로 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를 지냈으며 강직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어머니는 인천이씨(仁川李氏)로 충순위(忠順衛) 이국(李菊)의 딸이자 좌의정(左議政) 최윤덕(崔潤德)의 외손녀였다. 조식은 이...
-
조선 중기 17세기 초에 이루어진 진주의 사찬(私撰) 지리지. 지리지는 수록된 공간 범위에 따라 전국지인 여지(輿誌)와 지방지인 읍지(邑誌)로 나눌 수 있다. 또 지리지를 편찬한 주체에 따라 국가기관에서 만든 관찬(官撰) 지리지와 개인이 편찬한 사찬 지리지로 나누어진다. 전국 단위의 지리지로는 『동국여지승람』이 대표적이다. 조선 중기 이후 활발하게 편찬된 읍지는 전국 지리지인 『동...
-
조선 후기의 학자 문상해(文尙海)[1765~1835]의 문집. 문상해는 진주 독천리(禿川里)에서 출생하고, 호를 창해(滄海)라고 했다. 집은 가난하였으나 스스로 육영재(育英齋)를 찾아가 학문에 정진할 만큼 학구열이 높았다. 성격은 온화하면서도 엄격해 친구들에게 신의가 있었으며, 후학들에게는 학문을 권장했고, 벼슬을 하지 않았으나 김면운, 박대순, 이견 등과 교우를 가졌다. 만년에는...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 자는 의윤(義允), 호는 동료(東寮).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경운(河慶運)이며 어머니는 은진임씨(恩津林氏)로 임찬원(林纘源)의 딸이다. 부인은 진양정씨로 정주빈(鄭周贇)의 딸이다. 1830년(순조 30)에 출생하여 8세에 친상을 당하고 15세 때는 조부인 부용담(芙蓉潭) 하필룡(河弼龍)의 상을 당하면서도 법도에 한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