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곡사
-
○ 양역(梁嶧) : 호는 운곡(雲谷)이요, 본관이 남원(南原)이니 대사간(大司諫) 양사귀(梁思貴)의 셋째 아들이다. 기유년(세종 11년, 1429)에 사마시에 합격해 연일진병마첨절제사(延日鎭兵馬僉節制使)를 지냈다.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공손하고 검소한데다가 뜻이 멀고 행실이 높아서 안과 밖에서 추중(推重)되었다. 단성(丹城)으로부터 진주 운곡(雲谷)에 옮겨와서 살았다. ○ 하공효(河...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금호지(琴湖池)과 청곡사(靑谷寺)의 유래에 관한 전설. 금호지는 신라 때 축조된 못으로 둘레가 5㎞이고, 수심이 깊은 곳은 12m이고, 아랫동네 250㏊에 농삿물을 대주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 준다. 사물이나 지명의 기원담은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는데 그 기원은 대개 상서로운 동물로 인한 유래, 또는 천지 창조나 뛰어난 장수에서 유래된 기원담이 주종을...
-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 미륵암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시대의 석불. 가좌동 석불입상은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 개양역 뒤편의 얕은 구릉을 사이에 둔 골의 미륵암 내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가좌동 석불입상은 청곡사(靑谷寺)에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청곡사가 소실되어 미륵암으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이 자리에는 원래 삼곡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옛날 건물을 철거하고 미륵암이라는 새로운 절을...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칡이 많아 치랏 혹은 갈전이라 이름한 데서 유래된다. 진주군 조동면의 지역으로서 고려 후기 우왕 12년(1386)경부터 있던 마을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조동면(槽洞面) 호암동(虎岩洞), 갈전동(葛田洞), 속사동(束沙洞)의 각 일부를 갈전리(葛田里)라 하였다. 갈전리의 동쪽은 월아산 두 봉우리 중의 하나인 장군대로 해...
-
인간의 다양한 생활을 수용하기 위한 구축물의 총칭. 건축의 범위와 종류는 매우 광범위하다. 역사적인 건축물에 속하는 궁궐건축이나 관아, 서원건축, 각종 정자 구조물을 비롯하여, 불교에 관련된 사찰이나 탑, 부도, 그리고 현대적인 건축물인 고층 구조물이나, 도로 및 교량까지도 포함된다. 또한 재료에 따라서도 나무나, 돌, 흙, 벽돌, 콘크리트 등을 이용한 구조물 등이 있다. 진주시에...
-
경치가 빼어나 구경하기 좋은 명소. 진주는 자연환경적으로 남강이 굽이쳐 흐르고, 역사적으로 사천·남해·산청·함양·거창·합천·의령 등 경상남도 서부지방의 전통적 문화 중심지로서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서부 경상남도의 중심인 진주시는 남해고속국도, 통영~대전간 고속국도, 경전선 철도, 사천공항 등이 입지한 교통의 요충지로서 역사적으로 경제·사회·문화·교육의 중심권을 형성하고 있다. 진주...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용아리 월아산 중턱에 있는 옹달샘. 예로부터 진주에서는 여름에 가뭄이 들면 월아산 중턱에 있는 옹달샘의 물을 길어다가 기우제를 지냈다. 기우제를 진주 지역에서는 무제라고 하므로, 무제를 지내는 샘이라는 뜻에서 무제새미라고 부르게 되었다. 진주시 금산면에 있는 월아산은 1986년에 도시 자연공원으로 지정된 산이며, 산세가 험하지 않고 완만하다. 월아산 정상은...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용아리 월아산 중턱에 있는 옹달샘. 월아산 중턱에 위치한 산질 샘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들이 와서 공을 드리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또한 이 옹달샘은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평안을 위하여 동제를 지내는 장소였다. 월아산은 남쪽과 북쪽의 두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남쪽 봉우리는 장군대, 북쪽 봉우리는 달임산이라 불린다. 월...
-
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부에 위치한 면(面). 조선 전기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금산리(琴山里)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속사리에 있는 금선봉(琴仙峰)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금산리(琴山里), 대여촌리(代如村里), 월아미리(月牙彌里), 조동리(槽洞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대여촌리과 월아미리는 금산리에 합하여 금산리(琴...
-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전통사찰. 878년(헌강왕 4)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했으며, 1603년(선조 36)에 계형대사가 중건하였다. 1946년 창담 스님이 수도장의 조건을 구비하고, 시설을 개수하여 1962년에 청곡사 암자에서 해인사 말사로 등록하였으며, 1963년에 철웅 스님이 대웅전을, 1970년에는 법령 스님이 요사채를 각각 보수하...
-
현실의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 부처가 되는 것을 궁극적 이상으로 삼는 종교. (1) 삼국시대의 불교 : 삼국 중 불교를 제일 먼저 수용한 나라는 고구려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372년(소수림왕 2) 6월에 전진(前秦) 왕 부견(苻堅)이 사신과 중 순도(順道)를 파견하여 불상과 경문을 보내왔다고 하였다. 『삼국유사』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있다. 이때 도입한 고구려불교의 특징은...
-
승려가 불상을 모셔놓고 불법을 수행하고 설하는 장소. 사찰은 순수 우리말로 ‘절’이라고 한다. 절은 불상과 당탑을 모시고 승려들이 거주하면서 불도를 수행하고 교법을 가르쳐 펴는 기능을 가진 집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절은 고구려의 불교 도입 이듬해인 373년(소수림왕 3), 평양에 세워진 이불란사(伊弗蘭寺)와 성문사(省門寺)이다. 신라의 경우에는 아도가 선산지방에서 최초의 포교활동을...
-
육지의 표면이 주위의 땅보다 높이 솟은 부분. 산지의 고도는 일정한 기준은 없으나 일반적으로 수백m 이상의 것을 말하며, 그 이하의 것은 구릉(丘陵)이라 한다. 진주시 산지를 분류해 보면 동부 지역은 오봉산(524.7m)·방어산(530m)·깃대봉(520.6m) 등이 연결되어 산맥을 형성하고 있고, 서부 지역은 덕천강을 경계로 하동군과 경계를 접하고 있으며, 경호강과 남강으로 이어지...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용아리와 진성면 중촌리·하촌리의 경계에 있는 산. 일명 달음산이라고도 한다. 월아산은 남강을 허리에 두르고 있으며, 달음산고개(질매재)를 연결 고리로 주봉인 남쪽의 장군대산(482m)과 북쪽의 국사봉(해발 471m)이 이어져 있다. 월아산은 구릉을 이루고 있지만 숲이 아름다운 산으로 산세가 험하지 않아 가족 단위의 주말 산행이나 한나절 산행으로 적합하며, 장...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 조동에 있는 숲. 조동(槽洞)은 조선 후기 조동면의 중심이 되는, 갈전리에서 으뜸가는 마을이었다. 마을 지형이 말구시(구유) 형국이라 하여 이름 지어진 곳이다. 조동숲은 1386년부터 형성된 조동마을에 1588년(선조 21)경에 조동마을의 질병과 방풍을 예방하고,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마을 입구, 즉 조동의 서쪽에 조성한 숲이다. 2,180평 규모에...
-
절대(絶對)의 초인간적인 신을 숭배하여 선악을 권계하고 행복을 얻고자 하는 행위.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스스로 한계를 갖는 유한한 존재라는 자각에서 기인한다. 특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사후세계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전지전능(全知全能)하다고 믿는 절대자에게 의탁하여 현세에서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추구하고, 사후세계에서는 구원을 희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
진주지역에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 조선 초기에 진주에는 강씨·하씨·정씨로부터 인물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이성계는 진주 사정을 잘 아는 무학대사(無學大師)를 시켜 이곳의 지리를 살피게 하였다. 무학대사가 내려와 진주성에서 대봉산(大鳳山) 쪽을 바라보니 천하의 명당 자리였다. 대봉산은 “큰 봉황새가 사는 뫼”란 뜻인데, 무학대사는 이 산이 있기 때문에 진주에서 인물이 많이...
-
경상남도 진주시 청곡사 소재의 불법을 수호하는 신상. 청곡사의 금강역사상은 업경전(業鏡殿) 안에 있는데, 중생이 생전에 쌓은 업(業)을 심판하는 명부시왕(冥府十王)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 2구의 금강역사상은 크기가 약간 다르다. 왼쪽은 총 높이 210㎝, 어깨너비 80㎝, 대좌 너비 92㎝이고, 오른쪽은 총 높이 220㎝, 어깨 너비 75㎝, 대좌 너비 85㎝이다. 대형 통나무에...
-
경상남도 진주시 월아산에 위치한 청곡사의 대웅전. 청곡사는 879년(헌강왕 5)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다. 1380년(우왕 6) 실상사의 상총대사(尙總大師)가 중수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1602년(선조 35) 계행대사(戒行大師)와 극명대사(克明大師)가 다시 중건하였고, 1612년(광해군 4) 다시 대웅전을 비롯하여 사찰 전체를 중수하였다. 조선 말기 포우대사(布雨...
-
경상남도 진주시 청곡사의 제석천상과 대범천상. 제석천과 대범천은 원래 브라만 또는 힌두교의 신상(神像)이다. 대승불교 이후 불법을 지키는 신상이라 여겨져 사천왕상 등과 더불어 불교미술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으며, 『삼국유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조각상이 아닌 그림으로 그려졌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탱화에서 주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으나 조각상으로는 청곡사의 것이 유일하...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 청곡사 업경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목조 지장보살 삼존상과 시왕상. 진주 청곡사 목조 지장보살 삼존상 및 십왕상 일괄은 불상의 내부에서 발견된 조성 발원문과 「진양 동월 아산 청곡사 불상 개금 시왕 개채기(晉陽東月牙山靑谷寺佛像改金十王改彩記)」에 1657년(효종 8) 제작된 후 1750년(영조 26) 개금과 개채되었다고 나와 있다. 2010년 12월 21...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갈전지의 청곡사 대웅전 좌측에 위치한 석탑. 전체적인 양식에 있어서는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의 일반양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그러나 기단부의 간략화라든지 탑신과 지붕돌[옥개석]이 축소된 점, 그리고 전체적인 조각수법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이르러 청곡사가 중건될 당시 아울러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청곡사에 남아 있는 유물 중에는 가장 시대가 앞선...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의 청곡사에 있는 업경전(業鏡殿). 청곡사 대웅전 옆에 있으며, 명부전(冥府殿) 또는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불린다. 879년(헌강왕 5)에 도선국사에 의해 세워진 청곡사는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었고 광해군 때 다시 세워졌다. 이후 조선 말기 포우대사(布雨大師)가 다시 대웅전을 비롯하여 사찰 부속건물들을 중수하였다. 청곡사 업경전도 청곡사를 세울 당시 대...
-
경상남도 진주시 강남동에 있는 기차역. 1923년 12월 1일 삼랑진과 진주를 오가는 열차가 처음으로 개통될 때 개시한 이 역은 1925년 6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56년 역사를 새로 건설하였고, 1968년 2월 7일 순천까지의 철로가 개통되었다. 1970년 4월 1일 진주에서 서울 사이에 순환열차가 처음으로 운행되었고, 1993년 3월 1일 서울까지의 새마을호...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 청곡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괘불함. 평소 괘불함에는 청곡사 영산회 괘불탱을 넣어 보관하다가 괘불재를 올리는 등 필요할 때 괘불탱을 꺼내어 사용한다. 잠시 통도사의 성보박물관에 위탁보관하였으나 2008년 5월 12일 청곡사 내 불교문화박물관이 완성되어 현재는 청곡사에서 보관하고 있다. 청곡사 괘불을 보관하기 위하여 1722년 괘불과 함께 조성되었다. 괘...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 청곡사에 있는 영산회상도. 영산회상이란 석가모니가 인도에 있는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한 법회모임을 말하는데, 시대가 지나면서 영산회상은 석가의 설법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영산회상도는 보통 대웅전이나 영산전의 뒤편에 봉안된다. 영산회상을 이 땅에 실현하려는 강한 신앙심을 표현한 것으로, 1750년(영조 26) 청곡사 대웅전의 후불탱화로 제...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 월아산에 있는 사찰.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진주를 지나갈 때, 푸른 학이 남강변에서 월아산으로 날아와 앉았다. 도선국사가 둘러보니 월아산에 성스러운 기운이 충만하여 이곳에 절터를 잡았다고 한다.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禁山面) 갈전리(葛田里)에 위치한다. 879년(헌강왕 5) 연기조사인 도선국사가 월아산에 청곡사를 창건하였다. 1380년(우왕 6)에...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 청곡사에 있는 괘불.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인 영산회상도를 그린 괘불이다. 1722년(경종 2)에 승려화가인 의겸(義謙) 등에 의해 제작되었다. 길이 10.4m, 폭 6.4m 크기의 괘불로, 본존불인 석가를 중심으로 양옆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화면 중심에 꽉 차게 석가불을 배치하였으며,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게 상체는 짧지만 당당하고 우...
-
조선 중기의 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청곡사를 다녀가면서 지은 시문을 새긴 비. 1533년 이황이 8도 명소를 두루 살피다가 금산 소재 청곡사에 휴양차 다녀가면서 시를 남겼다. 1829년 경에 종사랑 돈녕원 도계 이희영(李禧榮)이 금호지의 동쪽 주변에 돌을 쌓아서 축대(금호대)를 축조하고, 여기에 시비를 세워 기념하였다. 1869년 이희영이 죽은 후에 그 아들 이수용이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