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34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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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萬津 |
영어음역 | Ha Manji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최판도 |
성격 | 선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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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하결(河潔) |
어머니 | 창녕조씨(昌寧曺氏) |
아내 | 창녕신씨(昌寧辛氏) 신일(辛馹)의 딸 |
출신지 | 진주(晋州) |
성별 | 남 |
생년 | 1546년 |
몰년 | 1609년 |
본관 | 진주(晋州) |
[정의]
조선 전기의 선비.
[가계]
본관은 진주. 문충공의 후손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의 증손이며 하결(河潔)의 아들이다.
[생애]
1546년(명종 1)에 태어나 상주에서 살다가 진주 금곡면 운문(雲門)으로 들어와 하씨 문중 대표로서 세 아들 하분(河濆), 하빈(河濱), 하호(河滸)와 함께 살았다. 어느 날 진주목사 이제신(李濟臣)이 병부(兵符)를 잃어버리고 진사 정대호(鄭大護)와 하만진의 삼부자를 의심하여 중앙으로 압송하였다. 극형에 처하게 되었을 때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가 사간원의 장관으로서 극력으로 변호하여 무혐의로 석방되었다. 후에 이산해의 아들 이경전(李慶全)이 체찰사가 되어 진주에 와서 양가(兩家)의 자손에게 그 연유를 전하였고, 이들은 이경전에 대하여 재생의 은혜로 환영연을 벌여 사례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하만진은 선무랑(宣務郞)으로 천거되었으며, 1609년(광해군 1) 별세하였다.
[묘소]
경상남도 진주시 우봉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