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525 |
---|---|
한자 | 旌義邑古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송문기 |
[정의]
1899년(광무 3)경 정의군에서 만든 읍지.
[개설]
1899년(광무 3) 전국 읍지 상송령에 따라 전라도 대정군에서 작성한 읍지이다. 같은 때에 편찬된 『제주(군)읍지(濟州(郡)邑誌)』[규 10797]의 내제(內題)에 “광무 3년 5월 일 읍지” 라고 되어 있어 『대정군고지』와 함께 이때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편찬/간행 경위]
갑오개혁과 광무개혁기(1894~1896)의 지방행정제도의 개편으로 말미암아, 종래의 목부군현(牧府郡縣)은 군(郡)으로 단일화 된다. 정의현은 갑오개혁 때 제주부 관할의 군(郡)으로 되었다가, 광무개혁 때 도제(道制)가 부활하자 전라남도 정의군으로 개편된다. 따라서 『정의읍고지』는 당시 변화된 지방의 실정을 파악하려는 중앙의 의도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광무 연간에 편찬된 읍지는 30일 이내에 작성해 올려야 했기 때문에 이전의 읍지를 요약 정서하는데 그친 것이 대부분이지만 지방의 개편된 행정등급, 새로운 관리조직, 봉급 등의 항목만이 별도로 새롭게 작성된 것도 많다.
[서지적 상황]
1책 8장의 필사본으로 크기는 27.9㎝×17.9㎝이다. 앞장 첫머리에 「정의지도(旌義地圖)」가 부착되어 있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규10798]되어 있다. 한편 이와 동일한 내용을 가진 『호남읍지(湖南邑誌)』[규 12181] 제10책의『정의읍고지』가 있으며, 1973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영인한 『여지도서』의 보유편(전라도)에도 실려있다.
[구성/내용]
목차는 지도(地圖)·방리(坊里)·도로(道路)·건치연혁(建置沿革)·군명(郡名)·형승(形勝)·성곽(城郭)·관직(官職)·산천(山川)·성씨(姓氏)·풍속(風俗)·능침(陵寢)·단묘(壇廟)·공해(公廨)·제언(堤堰)·창고(倉庫)·물산(物産)·교량(橋梁)·역원(驛院)·목장(牧場)·관애(關阨)·봉수(烽燧)·누정(樓亭)·사찰(寺刹)·고적(古蹟)·진보(鎭堡)·인물(人物)·한전(旱田)·수전(水田)·진공(進貢)·조적(糶糴)·전세(田稅)·대동미(大同米)·균세(均稅)·봉름(俸廩)·군병(軍兵)·책판(冊板) 순으로 되어 있다.
제주군과 달리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시읍지(時邑誌) 항목이 없으며, 정조대 읍지인 『제주읍지(濟州邑誌)』(1780~1789) 소재 「정의현지」를 전사(轉寫)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방리 조에 ‘면이 4개에 리가 48개이다’라고 되어 있어 『제주읍지』의 내용을 인용하면서도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관직 조에 ‘현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군수이다. 산마감목관(山馬監牧官)은 지금은 폐지되었다’, 진공 조에 ‘진공으로 바치던 말을 돈으로 대신 한다. 갑오년[갑오개혁]부터 비롯되었다[歲貢黑牛 貢馬則代錢 甲午爲始], 봉름 조에 ’지금은 월급으로 준다[今爲月俸]‘, 균세 조에’ 예전에는 군포(軍布)로 바쳤는데 지금은 동포(洞布)를 바친다‘ 라고 적혀 있어 갑오개혁 이후의 변화상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정의읍고지』는 갑오개혁과 광무개혁기 서귀포시 정의 지역의 변화상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