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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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世蕃 |
이칭/별칭 | 백산(白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재형 |
[정의]
조선 전기 제주도 대정현에 유배된 문신.
[가계]
본관은 고부(古阜), 호는 백산(白山). 시조 이경조(李敬祖)의 19세손, 중시조 이정(李精)의 2세손이다.
[활동 사항]
이세번(李世蕃)[1482~1526]은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현량과에 의해 천거되었다.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투옥되자, 의금부도사로 있던 이세번은 동문인 조광조를 비롯한 어진 선비들이 투옥되거나 귀양을 가는 등 화를 입자 스스로 앞장서 영의정 정광필(鄭光弼) 및 태학유생(太學儒生)들과 함께 그들이 무죄함을 탄원하였으나, 오히려 세력을 잡은 훈구파에 의해 조광조의 일당으로 몰려 1520년(중종 15)에 제주도 대정현으로 유배되었다.
이세번은 풍랑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유배인이 들어오는 조천이나 화북포구가 아닌 대정읍 신도포구로 제주도에 들어왔다. 유배로 인해 정치에 환멸에 느낀 이세번은 후학 양성에 여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유배 올 때 경서(經書) 등 많은 책을 가지고 들어와서 대정에 정착하여 후학을 가르쳤다. 대정현 유배 생활 도중 1526년(중종 21) 이세번이 사망하자 아들 이충현이 제주도로 내려와 장례를 치렀는데 이충현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유해를 고산 신물에 안장하였다.
이후 이세번은 인종대에 조광조, 김정 등과 함께 복권되었고 아들 이충현은 제주 교수로 천거되어 제주도에 정착하면서 이세번이 고부 이씨의 입도조가 되어 대정에 집성촌을 형성하게 되었다.
[묘소]
이세번의 묘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신물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