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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840
한자 洪達漢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지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66년연표보기 - 홍달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44년 - 홍달한 효자 정표 받음
활동 시기/일시 1746년 - 홍달한 통정대부 교지 받음
몰년 시기/일시 1749년연표보기 - 홍달한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49년 - 홍달한 정려비 건립
정려비 홍달한 정려비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남자

[정의]

조선 후기 제주도 서귀포 지역의 효자.

[개설]

홍달한(洪達漢)은 정의현 고성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에서 1666년 출생하였고, 편모슬하에서 자랐으나 효성이 지극하고 나라에 대한 충성도 대단했던 효자였다. 성산읍 수산초등학교 뒤쪽에는 효자문 거리라고 불리는 도로가 있는데 홍효자라고 불리는 홍달한과 관련된 거리이다.

[활동 사항]

홍달한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랐는데, 어머니가 병을 앓게 되자 대변을 맛보며 증세를 살펴보고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약에 섞어 먹여서 천수를 누리게 하였다. 어머니가 사망하자 묘소에 집을 짓고 손수 돌을 날라 묘소에 산담을 쌓고 3년간 시묘를 하고 또한 어렸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상도 추복(追服)하였다. 나아가 1720년(숙종 46)에 숙종이 승하했을 때도 북향통곡하며 추모의 정을 다했다고 전해진다. 이와 같은 그의 행적이 조정에 알려지자, 3차례의 걸친 포상이 주어졌다.

[상훈과 추모]

1744년(영조 20) 효자로 정표되었고, 1746년(영조 22)에는 왕명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교지가 내려졌으며 그 후에도 가의대부(嘉義大夫)의 교지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의 관직이 내려졌다. 정려비는 1749년(영조 25) 11월에 세워졌다.

본래 비의 크기는 높이 64cm, 너비 33cm이나 비석 옆의 커다란 암석을 이용하여 앞면에는 ‘충효홍공달한지려(忠孝洪公達漢之閭)’라는 글씨가, 뒷면에는 국한문 혼용으로 홍효자의 생애와 업적이 적혀 있다. 1991년 12월에 남제주군에서 세운 설명문 현판이 있다. 비석은 서귀포시 수산초등학교 후문에서 동북쪽 300m 지점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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