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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914
한자 李基淳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웅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2년연표보기 - 이기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8년 - 이기순 중문면사무소 서기 재직
활동 시기/일시 1941년 - 이기순 일본의 지원병제도를 반대하는 의사를 교인에게 설파
활동 시기/일시 1941년 - 이기순 체포됨
몰년 시기/일시 1942년연표보기 - 이기순 광주교도소에서 옥사
추모 시기/일시 1995년 - 이기순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이기순 출생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면
성격 항일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중문면사무소 서기

[정의]

서귀포시 중문동 출신의 항일운동가.

[가계]

이기순[1902~1942]은 1902년 제주 좌면[중문면] 중문리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고부(古阜)이다.

[활동 사항]

이기순은 일찍이 천주교 신도가 되어 1938년에는 중문면사무소 서기로 재직하면서 천주교 홍로성당 신도회장을 맡아 아일랜드 출신인 홍로본당 주재 스위니 오거스틴(Sweeny Augustine)[서신부] 신부와 신앙을 통한 교분이 대단히 두터웠다.

중일전쟁 때에는 일본이 전황을 항상 과대 선전하는 데 불만을 가지고 신도들에게 일제의 불공정 전황보도를 비난하는 설교도 하면서 은연중 항일의식을 고취시켜나갔고,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여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통해 조선인 강제 모병제를 실시 하려 하자 이를 강하게 반대하는 의사를 전 교인에게 전하며, 신앙으로 더욱 뭉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런 사실이 일제에 적발되어 1941년 사상범예비검속 때 강성건((姜成健)을 비롯한 35명의 천주교도와 함께 체포되었다. 일본 경찰은 특히 그가 사진기를 가지고 있어서 일본 해군 폭격기지인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 주변에서 군사 시설을 촬영해 서양신부들에게 넘겼다는 혐의를 들어 「국방보안법과 군사기밀보호법」위반을 적용하였다. 이기순은 재판을 받던 도중 1942년 8월 21일 광주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이기순은 1995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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