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9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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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正伯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웅철 |
출생 시기/일시 | 1911년 - 이정백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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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2007년 12월 12일 - 이정백 사망 |
출생지 | 이정백 출생지 - 서귀포시 대정면 가파도 198번지 |
성격 | 항일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학생전위동맹에서 활동 |
[정의]
일제 강점기 학생전위동맹에서 활동한 제주도 서귀포 지역 출신의 항일운동가.
[개설]
1929년 광주학생항일독립운동 이후, 학생전위동맹을 중심으로 광주학생항일운동으로 검거당한 학생의 석방과 나아가서는 ‘조선 독립’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학생들의 시위운동을 전개하고, 여세를 몰아 독립운동을 전국적으로 확대시키려고 서울 시내 각 학교에 격문을 배포하고 동맹휴학 시위운동을 벌였다. 이 일로 각 사상단체와 청년단체의 간부와 학생 등 170여 명이 검거되었다.
[가계]
이정백(李正伯)[1911~2007]은 1911년 1월 15일 대정면 가파도 198번지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고부(古阜)이고, 아버지는 이성두, 어머니는 조씨이다. 형으로는 이화백·이공백·이능백이 있고, 동생으로 이연백이 있다.
[활동사항]
이정백은 고향 마을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회을 김성숙이 세운 신유의숙 2회 졸업생으로 보통학교의 과정을 마쳤다. 신유의숙 재학 중에 김성숙·김한정 두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뒤 상경하여 주경야독으로 중등과정을 가르치던 고학당(苦學堂)에 3학년으로 편입하였다. 서울 유학 이후 신유의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서울 유학 당시 그는 학생전위동맹에 가담하였는데 서울에 유학했던 제주 출신으로 남원 출신 김순희, 구좌면 월정리 출신 중동고등보통학교 학생 김인배(金仁培), 조천면 조천리 출신 양정고등보통학교 학생 송건호(宋建浩), 조천면 북촌리 출신 중앙고등보통학교 학생 부병준(夫秉準)과 구좌면 월정리 출신 경신중학교 학생 김길수(金吉洙) 등이 함께 활동하였다.
이정백은 1932년 학생전위동맹운동에 참여하였던 동지들이 체포될 때 피신하여 체포되지 않았으며 1932년 7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사건에 대하여 판결할 때 기소유예 처분 상태였던 것으로 보아 뒤에 피검되어 복역한 것으로 보여지나, 정확한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후 제주 4·3 사건이 발발할 무렵 사회주의 계열에 경도되었다는 이유로 경찰 등의 오해를 받자 일본으로 건너갔다. 1970년 1월 15일 60세를 기념하며 찍은 사진 옆에 친필로 기록된 거주지는 시마네현 오키군 사이고쵸 미나또마치[島根縣 隱岐郡 西鄕町 港町]라고 기록되어 있다. 노년에 귀국하여 2007년 12월 12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