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가야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276
한자 星山伽倻
이칭/별칭 벽진가야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가야
집필자 김세기

[정의]

초기 국가 시대 성주 지역에 있던 가야 여러 나라 중 하나.

[개설]

성산가야(星山伽耶)는 고대 시기 성주 지역에 있었던 가야 여러 나라 중 하나인데, 일명 벽진가야(碧珍伽耶)라고도 한다.

[고대 정치체 성산가야]

성주 지역은 『삼국유사(三國遺事)』 ‘오가야조(五伽耶條)’에 다섯 가야의 하나인 성산가야 지역으로 기록된 이래 성산가야의 옛땅으로 알려져 왔고, 또 성주 지역에 분포한 고분군을 성산가야의 고분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더 이상의 내용은 없고,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성주의 역사와 관련한 구체적인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삼국사기』「지리지(地理志)」에 “성산군(星山郡)은 본래 일리군(一利郡)이었는데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개명한 것이며, 오늘날의 성주군 지역에 해당된다.”는 내용이 보일 뿐이다. 그 외의 사정을 알 수 있는 사료가 없어 성산가야에 대한 사정은 더 이상 상세하게 알 수 없다.

그런데 성주 지역에는 삼국 시대 고분군 외에 청동기 시대 묘제인 고인돌[지석묘]이 하천 변이나 구릉지 여러 곳에 분포하고 있다. 또 원삼국 시대의 목관묘 유적도 있어 선사 시대부터 삼국 시대에 이르기까지 성주 지역에는 일찍부터 정치 세력이 형성되었고, 진한(辰韓)·변한(弁韓) 소국의 하나로 발전되었던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성주의 중심지에 자리한 성주읍 성산리의 고분들은 성산가야 최고 지배층의 분묘라고 인식하여 왔던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이래 성산동 고분들이 발굴 조사되면서 묘제와 출토 유물의 성격이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다른 가야 지역과 달리 신라식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러한 고분 자료를 중심으로 학계에서는 성산가야의 실체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특히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성산가야는 진한·변한 시기에 진한과 변한의 어느 하나에 고정되지 않고 필요에 따라 바뀌는 유동적인 상태였고, 그래서 일시적으로 가야권에 속한 때가 있었다고 이해된다. 또한 성산가야로 불리게 된 계기는 후삼국 시대 성주 지역 호족 세력의 정치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며, 4세기 후반 이른 시기에 신라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성산가야의 존재 형태는 이른 시기부터 가야 문화권에 속하여 가야로 존재하다가 5세기에 완전히 신라 문화권으로 흡수되었던 가야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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