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1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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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濱李氏 |
영어공식명칭 | Habin Yi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감병훈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이거(李琚)를 시조로 하고 이선동(李善仝)의 후손들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개설]
하빈 이씨(河濱李氏)는 이거를 시조로 하고, 이선동의 후손들을 입향조로 하는 성씨이다. 이선동이 금릉군(金陵郡) 노동(老洞)[현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에 세거한 이후, 그의 후손들이 성주, 김천, 장암, 용암, 귀성, 대덕, 대방, 광명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연원]
하빈 이씨의 시조는 이거이다. 그는 1174년(명종 4)에 발생한 조위총(趙位寵)의 난이 일어났을 때, 무신정권에 반대하고자 서경유수군(西京留守軍) 측에 가담하여 정중부(鄭仲夫)[1106~1179] 및 이의방(李義方)[?~1174]과 싸웠다. 훗날 무신정권이 무너진 후 재조명되어 복권(復權)을 받고 하빈군(河濱君)에 봉해졌다. 이에 후손들이 하빈을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전하고 있다.
[입향 경위]
하빈 이씨는 전국에 18개의 분파를 두고 있는데, 그중에서 성주 지역에 정착한 파는 김산파(金山派)이다. 김산파의 파조인 이선동은 세종 때 남해현령(南海縣令)을 제수 받았다. 이후에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분개하여 고향인 금릉으로 낙향하여 절개를 지켰다. 그의 후손들이 성주, 장암, 용암, 귀성, 대덕 등 인근 각지로 이주하면서 가세(家世)를 넓혀 나갔는데, 11세손 이의필(李儀泌), 14세손 이득암(李得堷)·이득지(李得地), 17세손 이태항(李泰恒), 이태하(李泰夏)[1658~1721] 등이 크게 문명을 떨쳤다.
[현황]
2015년 인구통계에 의하면 경상북도 성주군 내에 75명이 세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