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0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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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無形遺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집필자 | 민정희 |
[정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 전승되는 문화재.
[개설]
무형 유산은 음악·연극·무용·공예 기술 및 놀이 등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 전승되는 문화재 전반을 가리킨다. 서산 지역의 무형 유산은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 고양동에 전해 오는 「서산박첨지놀이」와 심화영류 승무(僧舞), 그리고 고수관(高壽寬) 명창 등이 대표적이다.
[「서산박첨지놀이」]
「서산박첨지놀이」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마을 단위의 민속 인형극이다. 놀이는 물론 탈·풍물 등의 예술적 가치도 높아 2000년 1월 11일 충청남도 무형 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다. 「서산박첨지놀이」의 ‘박’은 바가지로 인형을 만든 것에 연유하였고, ‘첨지’는 벼슬 이름이다. 일제 강점기 강원도에서 들어온 남사당패의 유영춘이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에 정착한 것이 계기가 되었고, 탑곡리 마을의 주연산에 의해 전승되면서 추석놀이로 정착하였다.
「서산박첨지놀이」는 총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막은 박첨지가 재산을 분배하고 유람을 떠나는 내용이다. 박첨지는 집에 부인을 두고 팔도 유람을 하다가 첩을 얻었는데, 이 사실이 박첨지의 동생과 본부인, 그리고 처남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박첨지는 가족들로부터 질책을 받고 부인과 첩에게 재산을 분배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첩에게 더 많은 재산을 주자 주변 사람들이 박첨지를 조롱하였다. 이후 박첨지는 유람을 떠난다. 이처럼 제1막은 처첩제로 인한 가부장적 가족 제도의 모순을 보여 주고 있다.
제2막은 평양감사가 민생을 살피지 않는 것을 풍자한다. 극에 등장하는 평양감사는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백성들을 수탈하고 부역에 시달리게 하는 등 부패한 관리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 결국 평양감사는 사냥에서 잡은 꿩고기를 잘못 먹고 체하여 죽는다. 이때 평양감사의 상여가 나가는데, 그 아들들도 체통을 지키지 못하는 모습을 희화화하며, 이를 통해 지배층의 부패와 횡포를 풍자한다.
제3막은 공중사라는 절을 건립하여 중생이 평안해지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극의 마무리 부분으로, 맹인을 비롯한 불우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서로를 감싸 안으며 모든 중생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한다. 첫째 마당과 둘째 마당에서 전개된 갈등을 해소하고 보는 이들의 애환을 녹여 주는 부분이다.
한편 「서산박첨지놀이」가 남사당의 「꼭두각시놀음」과 유사하다는 견해도 있으나, 대사나 곡조가 한층 소박할 뿐만 아니라 서산 지역 특유의 짙은 향토성을 보인다. 현재 예능 보유자는 김동익이며, 1954년 발족된 서산박첨지놀이보존회에서 전승하고 있다.
[심화영류 승무]
승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속춤 가운데 하나이다. 본래부터 지역에 따라 각기 양식과 구성을 달리하며 각 고장의 광대나 판소리꾼에 의해 춰져 왔으나,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다. 충청남도에서는 심화영(沈嬅英)이 승무의 맥을 이어 가고 있다. 심화영은 중고제(中高制)의 명인으로 이름을 날린 심정순의 딸이다. 심화영의 승무는 염불-자진염불-타령-자진타령-굿거리-법고-굿거리의 순서로 진행되며, 연희 시간은 20여 분 정도이다.
승무의 구성 중에서 염불은 승려가 되기 전에 참선을 하며 마음을 비우고 수행하는 내용이며, 자진염불은 승려가 되어서 기뻐하는 내용, 타령은 승려가 도를 닦으며 기도드리는 내용, 자진타령은 승려가 바깥세상에 유혹을 받는 내용, 굿거리는 승려가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속세로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일반 승무가 거의 무대화되면서 움직임이 커지고 기교가 들어가 춤이 많이 변형되었지만, 심화영의 승무는 꾸밈이 없고 1930년대 춤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서산 지역의 승무는 2000년 1월 11일 충청남도 무형 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었으며, 예능 보유자는 심화영이다. 무형 문화재 지정 이후 심화영 승무보존회가 결성되었다. 한편 심화영은 2009년 11월에 별세하였으며, 춤은 외손녀 이애리에게 전승되었다.
[고수관 명창]
1940년 정노식이 지은 『조선창극사』에 의하면 고수관은 순조·헌종·철종 3대에 걸쳐 활동한 인물로, 서산시 해미면 초록리 출신이다. 조선 후기 8대 판소리 명창 중 한 명으로 『춘향가(春香歌)』 중 「사랑가」에 능하였다. 명창 염계달(廉季達)의 소리를 많이 본받았고, 성음(聲音)이 맑고 섬세하였다. 특히 딴 목청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였는데, 이를 소리판에 따라 즉흥적으로 변조하여 부르는 임기응변에 능하였다. 이러한 소리 특징 때문에 ‘딴청일수’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한편 고수관은 소리판에서 갑자기 한시(漢詩)를 지어 내는 특기로 유명하였는데, 이처럼 재치 있는 고수관의 면모는 깊고 해박한 견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더늠으로 유명한 「자진사랑가」가 전하며, 오늘날까지 많은 명창들이 부르고 있다.